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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침햇살 Jan 11. 2024

영원한 채무자

대신할 수 없는 엄마의 투병

엄마의 투병이 보름을 넘기고 있다.

카랑카랑했던 목소리가 점점 시들어간다. 돌아서면 잊어버리던 지난날들과 달리 이젠 돌아서기도 전에 현실과 망상이 마구 섞여버리곤 한다. 고관절 수술 후 섬망  증상이 심해지신 거다. 젊은 날의 엄마로 돌아가셔서 이웃과 친척들을 만나고, 고추밭을 매고 깨를 심고 , 콩을 터느라 밤새도록 잠 못 는 것 같다. 이미 고인이 되신 분들을 찾는다.*정목이 엄마, 거기 있으면 내 손 좀 잡아줘*,*왜 이렇게 오랜만이냐*. 간병인과 얘기하면서 *해경이 엄마랑 얘기하니 재미있네*,하신다. 과거의 사람들을 하나둘씩 불러낸다.

*요렇게 시퍼런 물을 건넜어. 긍게 그게 요단강이여. 거기를 건너갔어. 아름다운 집들이 주루룩 나래비를 섰어.두드리며 아버지를 찾아다니다가 다섯 번째 집에서 아버지를 만났어. 깜짝 라서 잠에서 깼네. 아마도 내가 죽을랑가벼*,

 침대 아래에 다슬기가 있으니 까먹고 당신도 달라고, 집에 가자고 또 집에 가자고. 다시 집에 가자고. 따뜻한 돌침대에서 자고 싶다고. 가랑잎처럼 푸석거리는 목소리로 쉬었다가

잠시 머물렀다가

말하고 또 얘기하신다. 

소학교 때 배웠던 일어노래도 곧잘 부르시던 총명함이 사라졌다.

나는 아무것도 대신할 수 없다.

집으로 엄마를 모시고 갈 수도,

다슬기국을 사갔으나 드릴 수도,

그렇게 좋아하시는 홍시를 드릴 수도 없다.

병원에서 나오는 영양죽만을 드셔야 한단다.

설사를 사흘째 하고 계시기 때문이란다.

배를 문지르며 *엄마손은 약손*하시던 당신의 운율을 따라 *딸 손은 약손*하면서 문지르아기처럼 헤헤 웃으시며 좋아하신다. 나은 것 같다고 하시다가 또 배가 틀어댄다고 인상을 찌푸리신다.

  눈을 감는다. 기운이 없다고 한쪽으로 기우뚱 쏟아진다.  무엇이든 잘 드시고 소화만 시킬 수 있다면 생기가 돌아올 텐데. 곧 일어나 걸을 수 있을 텐데. 맛있는 것이 하나도 없단다.

병원에 눕혀놓고 우리는 일상으로 돌아와 밥을 먹고 일을 하고, 잠을 잘도 잔다. 지인들을 만나 회식을 하며 웃고 떠든다. 그러나  웃음소리엔 서걱 서걱 죄스러운 마음들이 걸려있다. 영원한 채무자인 우리는 어떻게 해야 가벼워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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