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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로크무슈 Apr 15. 2022

아이슬란드 - 어째 잘도 오셨네요

(23) 아이슬란드 - 어째 잘도 오셨네요



아이슬란드는 조금 두려웠다. 쉽지 않은 여행지인 데다가,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다녀야 하니 과연 여행을 완전히 즐길 수 있을까 하는 걱정. 잘 어울리지 못하면 어쩌나, 내 사회성을 의심하면서.

(성격 탓은 아니다. 그놈의 MBTI가 뭘로 시작하느냐단정 짓고 싶지 않다)


아이슬란드의 첫 감상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착륙에 가까워져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난이도가 느껴진다. 쉽진 않겠다는 감상. 바람 탓인지 활주로까지 두어 번을 돌아 재진입한다. 그때마다 보이는 풍경이 이 쪽에서는 빙하였다가, 어느 쪽에는 눈발이 날리는 설원, 어느 쪽에는 거무튀튀한 화산지대였다.


착륙하며 볼 수 있는 아이슬란드의 다채로운(?) 모습


저기를 뚫고 간다는 게 믿기지 않지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여행길은 다 뚫려있으니. 저기도 사람 사는 곳이고, 내가 보고 있는 저기는 단지 사람 사는 곳이 아닐 뿐. (사실은 엄청 쫄았다. 다녀온 자의 여유다)


입국심사대를 지나 맞이하는 공항의 모습은 꽤 그 나라의 분위기를 나타낸다. 절차를 마치고 청사로 들어오니 아주 단출하다. 북유럽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느낌이 어째 "여기까지 (잘도) 오셨네요", 정도다. 어쩌면 이게 아이슬란드의 느낌일지도 모르겠다.


약간은 어수선한 입국장



출국날 알고 보니 입국장과 다르게 출국장은 꽤나 화려했다. 아주 모던하고 아늑했다. 이래서 사람은 눈앞에 보이는 걸로만 판단한다며.


화사하고 포근한 출국장




면세 쇼핑장에서 동행자들과 입을 맞춘대로 미리 술을 산다. 시내 리쿼샵에서는 비싸니 공항에서 꼭 사야 한단다. 사실 동행과 이 이상 대화를 길게 하지 않아, 내 취향 껏 맥주만 골랐다. 만나서보니 동행자 친구들은 위스키 쪽에 취향이 있었지만. 고맙게도 다들 뚝딱 비웠다. 둥글둥글한 친구들이라 고맙기도 하고, 또 다 같이 즐기며 마셨으니 됐다.


동행자들은 내일 입국하기로 했다. 내가 하루 일찍 도착한 것이라 오늘은 미리 예약해둔 공항 근처 숙소로 가기로 한다. 해가 짧은지 오후 6시가 되니 완전히 어두워졌다. 분명 숙소 예약 페이지에는 공항 셔틀이 있다고 했는데, 숙소로 전화를 해보니 "그런 서비스는 없어요. 5번 버스를 타면 되는데, 지금은 너무 늦어서 없겠네요. 택시를 타세요"라고 한다. 예약 페이지에는 있다고 하니 몇 년 전에 중단했다며.

아잇 참 택시라니.


공항을 한 바퀴 둘러보다 결국 택시를 탔다. 거의 15분을 운전해 간다. 3만 원이 가뿐하게 넘어간다. 차나 신호가 전혀 없어 주욱 15분 여를 내달렸으니 꽤 거리가 있었을 터, 공항 호텔이라더니 결국 이름뿐이었던 걸로.


적막한 숙소와 라운지


숙소는 꽤 외진 곳에 있었다. 나름 아늑한 분위기였지만 아무도 없었다. 몇 번을 '헬로'하니, 그제야 20대 중반의 여성이 나온다. 투숙객이 아무도 없어 쉬고 있었다는 말과 함께.

표정을 보니 익숙하다. 마치 이렇게 이야기하는 듯하다.


"어째 여기까지 (잘도) 오셨네요."


대충 카드키를 받고 올라가기 전 식사를 할 수 있는지 물었다. 여긴 식당도 없고 호텔에서 판매하는 음식도 없다며, 여전히 이어폰을 낀 채 통화하면서 대답한다. 딱히 말을 길게 섞고 싶지 않아 올라왔다. 저 친구에게는 내가 방해꾼이겠지, 정도의 생각과 함께. 투숙객이 없으니 조용히 할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으로 괜히 힘을 덜 주어 우당탕 캐리어를 계단으로 올렸다.


방 안을 들어오니 북유럽의 느낌이 은근슬쩍 와닿는다. 화이트 톤의 실내, 큰 라디에이터와 히트파이프, 높은 책상이며 선반, 아주 뜨거운 온수.


라디에이터에 널어 놓은 양말도 어째 톤이 맞다.


뜨거운 물에 한 참 몸을 지지고 나오니 노곤 노곤하다. 겨우 7시인데.  


잊고 있던 허기가 적당히 올라온다. 식사할 곳이 없다고 했음에도 믿을 구석이 있었던 것은, 공항에서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작은 펜네 샐러드를 산 까닭이었다. (이날 샐러드를 사온 나 자신을 아주 칭찬했던 기억이 난다) 거기다 지난밤 파리에서 산 치즈를 찍어먹는 막대과자와 고깔 모양의 과자가 그대로 캐리어에 있던 것도 칭찬해.


선견지명으로 사온 샐러드와 킹 중의 킹, 바이킹 맥주.


조합을 보니 어쩔 수 없이 동행자들과 함께 마시기로 한 맥주를 꺼냈다.

냉장고가 시원찮다. 전원을 넣었다 빼도 도저히 작동이 되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좋아 창문을 열어보자. 어마어마한 한기가 실내를 비집고 들어온다. 이거면 되겠다 싶어 창문을 살짝 열어 근처 창틀에 맥주 두 병을 올려놓은 채 짐을 푸니 금세 시원해졌다.


맥주가 없으면 안 되는 조합이니 정말 어쩔 수 없이 마셨던 걸로. 얘들아 먼저 마셔서 미안.


내일은 동행 친구들을 만나는 날이다.

입국장 앞에서 어떤 표정으로 서 있어야 하나, 고민하다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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