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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로크무슈 Sep 08. 2024

가능하다면 또 납치해 주세요


스무 살, 젊음, 열정, 사랑... 그 시절에만 어울릴 것 같은 단어들과, 미완성의 매력이 절로 뿜어져 나올 것만 같은 나이. 스무 살을 반추해 보면 저런 단어들과는 조금 거리가 멀었다. 사는 일찍부터 꿈이나 목표에 관심이 없었다. 초등학교 가정통신문에 장래희망을 쓰는 걸 그 어릴 때부터 힘들어했으니까. 삶의 형태에 대해 고민해 본 적이 없으니 매사에 의욕이 없는 게 당연했다. 시험 성적에 맞추어 간 대학에도 애정이 없었고, 수업에만 겨우겨우 형식적으로 참여했었지 끝나 오락실이나 PC방에 가는 게 전부였다. 취업난이다, 청년실업이다, 하는 말들은 나와는 상관없는 초현실이라 여겼다. 가끔 누나와 지난날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들이 종종 있는데, 그럴 때마다 누나는 나를 이렇게 회상한다.


"... 너는 정말 인간이 될까 싶었어."


"군대 가면서 조금씩 사람 되더라 야."


남들 다 간다는 시기에 맞추어 군입대를 했더랬다. 자유의지와 권리를 박탈당한 군생활은 놀랍게도 삶의 주체성을 일깨워주는 계기가 되었다. 결핍을 경험해 보아야 소중함을 깨닫는다고 했던가. 그때부터 조금씩, 어떤 사람이 되고 싶으며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나는 군생활을 함께했던 친구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돌이켜보면 스무 살, 스물한 살의 어린 나이인데도, 하고 싶은 일과 좋아하는 일이 뚜렷한 친구들이었다. 당시 요트 디자인을 하고 싶어 했던 친구는 이탈리아 유학을 다녀온 후 자동차 디자이너가 되었고, 커피프린스에 빠져있던 친구는 게임 개발자를 그만두고 개인 카페를 차렸다. 또 어떤 친구는 감수성이 매우 풍부했었는데, 나는 종종 그 친구와 함께하는 야간 근무나 훈련을 좋아했다. 별이 쏟아지는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나누는 대화가 그렇게 순수하니 좋았다. 비록 철모에 무거운 총이 쥐어져 있긴 했지만, 그동안 살아온 삶을 반성하며 앞으로를 어떻게 살아갈지 그려보곤 했다. 이 친구는 지금 또래 같은 선생님으로 제자들에게 아주 인기가 많은 고등학교 선생님이자, 두 아이의 듬직한 아빠가 되었다. 모두들 신기하게도 각자 생각했던 대로의 삶으로 형태가 갖추어졌다. 눈이 반짝거리던 소년들을 떠올려보면 내게 군대는 마냥 괴롭기만 한 곳은 아니었다.


대학교를 졸업할 때는 미국으로 떠났다. 졸업을 앞두고 1년여 정도를 준비해 나름의 노력에 운이 함께 따라준 덕분인지 미국에서 인턴 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다. 전문직이라 미국에서 착할 수 있었으나, 그러지 않았다. 처음으로 경험해 본 넓은 세상 경감이나 모험심 같은 설렘보다는, 내 존재의 보잘것없음과 박탈감이 대부분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이상하리만치 내 주변에는 잘난 사람들이 많았다. 명문대에 다니거나, 전문직이거나, 재력이 상당하거나, 재능이 뚜렷한 사람들 말이다. 어느 날은 연말파티에 초대를 받았다.(아직도 내가 왜 초대받았는지 모르겠다. 그들은 서로 교회에서 만났다. 는 무교다.) 다들 둘러앉아 새해의 행보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의대에 진학하게 되어 이사를 가게 되었으며, 누군가는 회계사 시험에 합격을 했다며, 누군가는 아버지가 운영하는 회사에서 경영 수업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대화의 차례는 나에게 돌아왔다. 나는 딱히 할 말이 없어서, 아니 할 수 있는 말이 없어서, 다들 좋은 소식을 전해주어 기쁘다며 앞날을 응원한다고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어떤 것이 있었을까. 내 직장 상사인 중국인이 나를 지독하게 괴롭히는 탓에 끓는 물을 그 얼굴에 부어버리고 싶다거나, 차가 없어 그 중국인에게 아부하며 태워달라고 말할 때마다 위장이 쪼그라드는 기분을 알려줄까 싶다가도, 내가 한없이 작아질 것 같아 입을 닫았다. 딱히 저들의 시선에 나 같은 하급 노동자를 신경 쓰는 것 같아 보이진 않았지만, 나는 그날 테이블에 올라왔던 닭고기만 못한 기분이었다. 그 친구들은 약간은 우쭐거리긴 했어도 좋은 사람들이었다. 내가 가여워 보였는지 밥이나 커피도 종종 사줬다. 미안하지만 사실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다. 스쳐 지나간 고마운 친구들이여, 건강하길.


동기부여가 단순한 자격지심으로 끝나지 않았음을 감사하며, 1년을 채 넘기지 못하고 한국행을 결정했다. 지금을 시행착오라 받아들이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 보기로. 여기로 오기까지 도움을 주었던 모든 사람들에게 인사들 돌렸다. 어린 날의 치기처럼 보이기 싫어 그럴듯한 변명도 만들었다.


"돌아가서 공부를 좀 더 해보고 싶어서요."


"어떤 공부?"


"순수학문이요."


"..."


장담한다. 모두들 속으로 고개를 내저었을 거라고.


모은 돈을 털어 차를 빌렸다. 월마트에서 3만 원짜리 텐트와 5천 원짜리 부르스타와 요가매트를 샀다. 그렇게 20일간 혼자서 미국 횡단길에 올랐다. 미국 횡단은 내 인생의 전환점이었다. 많이 울고, 많이 웃었다. 지평선을 따라 그저 내달리기만 했다. 하루는 호수에서, 하루는 사막에서, 어느 날은 은하수와, 어느 날은 소떼와 같이 잠들기도 했다. 트럭커나 호그라이더들과 함께 맥주도 마셨다. 횡단길에서 다짐한 것들 아직까지 내 인생 수칙처럼 지니고 있다.


두 번째 대학 생활을 거쳐 첫 회사에 입사했다. 첫 직장에서 만난 사람들은 지금 현재의 나를 있게 해 준 사람이라 할 수 있을 만큼 영감을 준 사람들이다. 입사 동기이자 경력직 선배였던 C 대리님. 세상에 모르는 것이 없는 똑똑한 사람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더 좋은 회사로 이직하여 떠나갔지만, 그녀는 입버릇처럼 멋진 남자로 늙어야 하는 이유와 방법, 취향과 교양의 중요성을 알려주었는데, 특히 나에게는 여행하는 법과 맥주와 와인을 알려주었다. 이 지면을 빌려 슬쩍 말하자면 두 번째 회사는 그녀의 경쟁사였고, 지금 다니고 있는 대학원 역시 그녀와 같은 대학원이다. 사실 나는 여전히 C 선배의 그림자를 쫓아가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같은 팀의 팀원들과는 취미생활을 함께할 수 있었다. 각자 숨겨온 실력이나 재능이 있다는 것도 놀라웠지만, 장난스럽게 던진 말에 밴드를 만들 정도로 실행력이 있는 사람들이 내 팀원들이었다.


"대리님들, 나 기타 칠 줄 알아요."


"어, 나 드럼칠 줄 아는데?"


"난 건반이랑 바이올린."


"밴드... 해볼래?"


약간은 허무하게 시작한 밴드는 단시간에 규모가 커졌다. 회사 곳곳에 능력자들이 숨어있었던 것이다. 악기와는 거리가 멀 것 같은 인상의 연구원은 베이스의 신이었고, 조용하고 내성적인 주임님은 첫 소절만 불러도 모두가 동작을 멈출 정도로 환상적인 목소리를 갖고 있었다. 보석 같은 사람들이 모여 3년 동안 두 번의 콘서트와 세 번의 무대에 섰다. 지금은 해산하긴 했지만 아직 그 명맥을 이은 동아리가 있다고 하니 괜히 뿌듯했다.


맥주 회사로 이직한 후에는 소셜 플랫폼의 모임장이 되었다. 다양하고 맛있는 맥주를 혼자 마시는 게 늘 아쉬워 결국 모임을 만들어 보기로 한 것이다. 자칫 술을 마시며 노는 로 오해받을까 나름 제대로 준비해 왔다. 섬세하게 준비한 맥주들(나름 큐레이팅했다고 해줬으면 좋겠다)을 시음하며 이해하기 쉽게 알려준다. 영화나 책을 보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도 있다. 최근 네 번째 시즌을 마무리했는데, 한 시즌에 12명 함께 하니 못해도 벌써 48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나를 구심점으로 인연을 맺었다. 이 책을 함께 쓰고 있는 예슬과 용신을 여기서 만났다. 각자 자신의 모임을 이끌고 있는 재능이 반짝반짝한 사람들.


"나, 30대에는 책을 써보는 게 목표야."


"나 책 써봤는데? 써볼래?"


-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지금의 내 모습은 다 주변 사람들 덕분이라고. 내 멱살을 잡고 기타 줄에 손을 얹어준, 기를 쓰고 여행지로 데려가 준, 맛있는 맥주를 마시게 해 준, 내 고민을 전담해 무한응원해 준, 원고 좀 쓰라며 지금도 타박 중인, 내 소중한 사람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보내본다. 나의 작지만 거대한 동지들이여, 감사합니다.


가능하다면 또 납치해 주세요. 가끔 말은 안 들어도 군말 없이 잘해낼 자신이 있어요.




"요즘엔 너만큼 앞가림 잘하는 애가 없더라."


물론 이런 말을 해주는 누나까지 포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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