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회사 회식자리에서 어리굴젓을 먹어볼 기회가 있었다. 먹어본 적이 없다 이야기했더니 팀원들이 꽤 놀라는 눈치였는데, 오히려 내가 더 당황했다. 어리굴젓이 동네 김밥집의 어묵볶음처럼 밑반찬으로 나오는 것도 아닌데 이걸 다들 먹어봤다니. 테이블에 올라온 젓갈을 한 젓가락 집어 입에 넣었다. 물컹물컹했다. 맛이 어떠냐며 감상을 기다리는 팀원들의 표정에 실망을 줄까 싶어 맛있다며 환하게 리액션했다. 실제로도 나쁘지 않았다. 회식자리에서는 내가 먹어보지 못한 것들을 먹어볼 기회가 많다. 그럴 때마다 이걸 안 먹어봤냐며 놀리긴 하지만, 그런 의미에서 나는 회식이 싫지만은 않다. 물론 소맥으로 마시는 것만 빼고.
비슷한 순간들이 자주 있다. 난 아직 동대문의 엽기적인 떡볶이도 먹어본 적이 없고, 불닭소스로 볶은 라면도 먹어본 적이 없다. (이 말을 하면 다들 꽤나 놀란다. 불닭라면이 그렇게 유명한 거였나.)
개인적으로 일기를 블로그에 쓰고 있다. 언제 어디서든 사진과 함께 올릴 수 있거니와, 썼던 글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어서 좋다. 무엇보다 그때그때 핸드폰으로 톡톡톡 타이핑만 하면 되니 부담이 없다. 여기에 일기를 쓴 지는 어느새 6년이 다 되었다. 술에 취한 와중에도 뭔가를 써놓기도 한다. 다음 날 기억에 없는 일기에 놀라기도 하지만, 어제의 나를 해석하는 것도 하나의 재미다. 이 정도면 일기 쓰는 것도 습관이라 할 수 있겠다.
어쨌든, 처음이라는 단어가 묘하게 익숙해서 일기에 '처음'이라는 키워드로 검색을 해보았다. 나는 6년 동안 58번의 첫 경험(?)을 했다. 최근 1년 동안 나는 어떤 것들을 처음 해보았을까. 나는 가평에 처음 가보았고, 꽃 화분을 처음으로 선물 받았고, 필름 카메라를 처음 만져보았으며, 처음으로 마음에 드는 이성에게 번호를 물어보기도 했다.(그렇다. 거절당했다.)
아, 평양냉면도 처음 먹어봤다.
평양냉면은 거짓말 같았다.
이게 음식일 리가 없었다. 첫 입에 '거짓말..'을 속으로 연신 내뱉고는 앞사람의 눈치를 살폈다. 역시나 내 첫 반응을 기대하는 눈빛이다. 어떡하지. 솔직히 얘기해야 하나. 걸레 빤 물 같다기엔 너무하니 손 씻은 물정도로 이야기할까. 이것이 내 평양냉면의 첫 감상이었다
"이.. 이게 냉면이에요?"
"야, 딱 세 번만 먹어보자."
평양냉면을 먹어본 적이 없다는 말에 나를 평양냉면 가게로 밀어 넣은(?) 회사 선배는 앞으로 딱 세 번만 먹어보라며, 그 세 번의 자리를 전부 동행해 주었다. 첫 번째는 거짓말 같았고, 두 번째는 여전히 의심이었으며, 세 번째는 체념이었다. 그렇게 평양냉면은 나와는 맞지 않는 음식으로, 그대로 나를 관통해 지나갔다. 애써주신 선배님, 평냉의 매력을 여전히 알지 못해 죄송합니다.
처음 해보는 것들이 모두 나와 꼭 맞는 경험일 순 없다. 그럼에도 내가 해본 적이 없다는 말과 처음이라는 말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내뱉는 것은, 이렇게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어 설레고 기쁘다는 뜻이다. 며칠 전 누군가와의 인터뷰에서 경험의 소스가 다양해 멋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날은 세계여행이나 한 달 살기같이 거창하고 화려한 경험은 아닐지라도 이래저래 이야기할 거리가 있어 스스로도 신기했다. 대부분 처음 해보는 경험에서 오는 당혹스러움과 결과에 대한 감상이었다. 다음에는 어떤 것들을 해보고 싶냐는 이어진 질문에는 고민 없이 번지점프와 해루질, 홍어삼합과 트랙터 운전이라고 대답했다.
이것 보라, 서른다섯이나 되었는데도 여전히 해보지 못한 것들이 잔뜩 있다.
하기야 서른다섯도 처음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