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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영 Dec 07. 2023

거실 냄새가 짙어지는 계절

<겨울의 언어> , 김겨울


겨울이다.


계절의 바뀜을 냄새로 느끼는 편이다.

평일 아침, 아이의 작은 손을 잡고 아파트 1층 공동현관을 나서면 훅, 하고 바깥공기가 코를 지나 폐포까지 가 닿는 느낌이 든다. 겨울 공기는 코끝을 찌릿하게 시리게 하긴 해도 깨끗하고 상쾌한 냄새가 난다.

집 앞은 바람이 자주 강하게 불어 종종걸음으로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집으로 온다. 신을 벗고 3중으로 겹쳐지는 유리 미닫이문을 열면 이번엔 따뜻한 온기가 거실 냄새와 함께 추위로 긴장된 몸을 녹여준다. 하아, 이게 우리 집 냄새구나. 추워서 환기를 게을리하는 계절에는 실내가 따뜻해서 유난히 집 냄새가 강해진다. 전날 저녁 생선이라도 구워 식탁에 올렸다면 그 비릿한 냄새는 아직도 주방 구석 어딘가 나가지 못하고 숨어있는 것 같다.

겨울은 그만큼 예리하고 날카로운 계절이다.

새해에 세우고 꿈꿨던 나의 목표들이 어디쯤 와 있는지 여실히 드러나는 때이다. 작년 이맘때의 나와 크게 달라진 것 없이 곧 나이만 한 살 더 늘어남을 느낄 때이다. 외로운 이에게는 허전한 옆구리가, 삶이 팍팍한 이에게는 살을 에는 추위가 더욱 잔인해지는 계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또 살아가야 하기에 그 모든 것을 잠시라도 잊기 위해 애써 반짝이는 화려한 트리와 행복한 캐럴을 찾는지도 모르겠다.

바깥은 찬바람이 쌩쌩 불고, 실내는 조용하고 따뜻한 이 계절에 <겨울의 언어>를 만났다. 좋아하는 작가 김겨울의 여기저기 흩어져 기고된 글들과 새로 쓴 글들을 모아 만들어진 산문집이다. 따뜻한 실내에서 김겨울의 깊은 내면을 들을 수 있는 호사를 누릴 수 있어 좋았다. 작가의 목소리를 알고 있다는 것은 큰 행운이다. 차분하고 느긋하며 독특한 그녀만의 딕션을 알고 있기에 눈으로 읽은 글은 저절로 소리로 변해 귓속으로 흘러들어 가 한층 더 입체적으로 다가온다.


모든 글이 좋았다. 혼자 있는 조용한 이 시간에 ‘그 모든 김겨울을 읽을 수 있어(추천사 표현을 빌려옴)‘  좋았다. 수일에 걸쳐 그녀의 생각을 깊게 경청하고 공감하고 잠깐 멈추어 생각하는 그때가 다 좋았다.

어린 겨울이 지하철 역에서 아버지에게 ’ 세상의 시작이나 끝 같은 걸 생각하면 이상하게 왜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다 ‘고 고백하는데, 그런 겨울에게 아버지는 ’ 네가 그렇게 태어난 아이라서 그런 거‘라고 답해주어서, 그만 내가 울고 말았다. 마치 그 장면은 나에게 영화처럼 멋있었고 동화 삽화처럼 아름다웠다. 어린 겨울은 감히 말하자면 나와 닮은 점이 조금은 있는 것 같아 달려가 안아주고 싶었다.

우습게도 나는 이 장면을 사춘기에 접어든 딸과 남편에게 설명해 주었지만 전혀 이해받지 못했고 이런 경험은 한두 번이 아닌 데다가 이런 얘기를 친한 친구에게 털어놓기도 부끄러워 이해를 요구해보지도 않았기에 나는 외로운 편이다. 그런 것을 고백했다니 어린 겨울은 대단한 용기를 낸 것이 분명하다. 어린 겨울의 아버지가 나에게 너는 원래 그렇게 태어난 아이라서 그렇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외롭고 추운 겨울에 나는 책으로 다시 한번 위로를 받는다.

​​

‘어떤 계절’ 하면 떠오르는 냄새, 음악, 장소, 추억 등이 있다. 이제 ‘겨울’하면 올해 겨울을 함께 시작한 <겨울의 언어>도 함께 떠올릴 테다. 오랜만에 서점에서 구입해 읽은 책이라 마음껏 책 귀퉁이를 접었고, 붙였던 인덱스 스티커를 떼지 않았다.

다음 겨울 우리 집 거실 냄새가 다시 짙어지는 이 계절이 오면 한 번 더 이곳을 펼쳐 읽어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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