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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Ju Jun 14. 2023

유학일기 05. '불운'으로 '행운'을 만들어내는 방법


'전화위복'이라는 속담이 있다. 화가 바뀌어 복이 된다는 뜻이다.

인생을 살면서 누구에게나 안 좋은 일은 주기적으로 찾아오기 마련인데,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이 불운이 훗날의 행운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주기도 한다.



몇 달 전 정말 우연히 유럽의 한 작은 국가에서 진행된 일주일 동안 진행되는 프로젝트에서 고등학교 동창 친구를 만났다.

나는 예고 1학년을 마침과 동시에 고등학교를 자퇴했으니, 그 친구를 만난 것은 꼬박 9년 만인 셈이었다.

일주일간의 대장정이 끝날 무렵의 어느 날 밤 우리는 그동안 밀린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사진: Unsplash의Yan Ming


내 이야기가 아니니 아주 짧게 요약해 보겠다.

친구는 입시에서 운이 잘 따라주지 않은 케이스였다.

누가 봐도 (원래 자신의 실력과 비교했을 때) 아쉬운 학교에 들어갔지만 그래도 열심히 실력을 쌓으며 공부하고 있었는데, 한창 학교에 다니던 중 (인생 친구라고 생각했을 정도로 각별했던) 가장 친한 친구와 사이가 틀어져버린 것이다.

학교에서 그 친구의 얼굴을 보기가 힘들었던 내 친구는 절망적인 시간을 보내던 중 생각지도 않고 있었던 편입시험을 준비했고, 한국에서 세 손가락에 꼽히는 학교에 당당히 합격해 원래 있던 학교를 홀가분한 마음으로 떠났다.



내게도 그런 일이 있었다.

전 화에 언급했었던 손목 부상이 바로 내게 그런 일 중 하나였다.

입학하기가 무섭게 찾아온 손목부상은 20대 초반이었던 내 인생에서 처음 벌어진 일이었다.

그때까지 입시를 준비하면서 나는 친구들 중 항상 가장 나이가 많은 편에 속했었기에 잘 몰랐었지만, 학교에 들어와 막내의 입장에서 선배들의 말을 들어보니 성인이 되며 부상이 찾아오는 것은 아주 일반적인 일이더라.



어쨌든 간에, 20대 초반의 학생에게 처음으로 찾아온 손목 부상은 큰 시련이었다.

당연하게도 독일 의사 선생님들은 하나같이 '연습을 하지 말라'라는 비현실적인 처방을 내리셨다.

악기를 시작한 이래로 덜 연습한 날은 있었어도 악기를 아예 잡지 않고 건너뛴 날은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었는데 오랜 기간 동안 연습을 하지 말라니.


뭐, 그런데 어떡해? 하지 말라면 하지 말아야지.


비자의적으로 첫 학기 때부터 연습을 거의 하지 못하게 된 나는, 학교에서 연습 대신 독일어 공부와 시험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학교에 처음 입학했을 때 나는 독일어 초보였다.

B1(총 여섯 단계로 나뉘는 유럽 어학 수준 기준 중 세 번째 단계)을 이미 딴 상태였지만,

원어민과 실제로 대화해 본 것은 학교에 들어오고 나서가 처음이었기 때문에 A1, A2 단계 수준의 말도 겨우겨우 내뱉는 정도였다.


사진: Unsplash의Payam Tahery


독일 음대의 학사 과정에는 생각보다 이론 수업이 많은데,

그중에는 통과하기 어렵기로 악명 높은 시험들이 존재한다.

전공 불문 독일의 모든 대학에서는 공부하는 동안 한 과목 시험에서 세 번(어떤 학교는 두 번) 불합격하면 퇴학처리가 되고,

다시는 같은 전공으로 독일에서 학업을 시작하지 못하는 무시무시한 규칙이 있다.

그런데 음대에도 꽤 많은 친구들이 세 번째에 겨우겨우 통과하는 난이도 있는 시험들이 있어 마음을 졸이면서 공부한다.



입학하자마자 많은 한국인 선배들이 몇몇 수업에 대한 공포심을 심어주었던 탓에 괜히 겁먹었던 나는 시간이 많은 것을 기회 삼아 미리 틈틈이 공부를 시작했다.

게다가 원래 나에게는 미래의 나에게 해야 할 일들을 미루지 않는 것도 모자라 미래 할 일을 모두 당겨서 미리 해치워버리는 좋은 습관이 있었다.

원래 고학년 때 보게 되어있는 과목들이라 해도 규칙에 위반되지 않는 것들은 모두 다 당겨서 보기로 했고,

그 결과 첫 학기에 있었던 악명 높았던 이론 시험을 모두 한 번에 통과했다.

그 자신감을 밑천 삼아 그다음학기에도 준비한 모든 시험을 또다시 한 번에 통과했다.


사진: Unsplash의Thought Catalog


그러고 나니 3학기 때부터는 시간표가 눈에 띄게 널널해졌다. 대충 계산을 해보니 5학기에도 충분히 졸업이 가능할 것 같았다.

그래서 3학기가 끝날 무렵 언젠가의 전공 레슨 중에 나는 교수님께 6학기 때 조기졸업을 하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교수님은 아주 흔쾌히 그러라고 하셨고, 나는 학교에서는 최초로, 독일 전체에서도 아주 이례적으로 조기졸업에 성공한 사람이 되었다.



사실 손목 부상이 조기졸업에 직접적인 영향을 줬다고 보기도, 간접적으로라도 그것에 영향을 준 유일한 것이라고 보기도 힘들다.

미래의 일을 미리 가져와서 처리하는 성향, '4년 만에 졸업하기만 해도 대단한 것'이라며 본의아니게 나를 살살 자극한 선배들, 부모님께 물려받은 공부 머리, 그리고 손목 부상으로 인해 가장 의욕적으로 학업에 임했을 첫 학기부터 널널해진 일정.

이 모든 것들이 함께 작용해서 생각지 못한 시너지 효과를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내가 졸업할 당시, 조기졸업이 아주 이례적인 일이기는 했지만 대단한 자랑거리로 삼을만한 일은 딱히 아니다.

하지만 누구나 언젠가 한 번은 겪는 '부상'이라는 '불운'이 나름 소소한 '행운'으로 이어지는 데에 충분히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사실, 그것이 내가 전하고 싶은 말이다.

불운이 온다고 하더라도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서 실행한다면 생각지 못한 곳에서 충분히 상승효과로 나타날 수 있다는 것.


사진: Unsplash의Bianca Ackermann


만약  친구가 3  시험 쳤었던 학교에 합격했었다면,

친한 친구와 사이가 틀어지는 일도 없었을 것이고 충분히 만족하면서 학교에 다니고 있었을 테니 굳이 편입 시험을 볼 필요성도 못 느꼈을 것이다.

물론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에서 계속해서 갈고닦은 친구의 부지런함이 가장 큰 역할을 했겠지.

하지만 약간의 '불운'이 시너지를 크게 일으켜 결국 좋은 결과를 가져온 것 같다고,

유럽에서 다시 만난 우리는 '인생은 역시 새옹지마'라며 웃었다.



사실 이 이후에도 나에게는 몇 번의 불운이 찾아오기는 했다. 흥미로운 점은,

이 불운으로 인해 벌어진 일들이 현재 '조기졸업' 보다도 더 커다란 행운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점이다.

이미 몇 가지 작은 행운으로 나타나기는 했지만,

2년 뒤의 나는 이 불운들이 만들어낸 행운의 크기가 더 커졌을 때,

이것에 대해서 더 많은 이야기를 쓸 수 있을 것 같아 이것만은 미래의 나에게 미뤄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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