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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Ju Apr 08. 2022

유학일기 04. 위기가 찾아오다

음악 인생 첫 손목 부상


입학하고 며칠 지나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어제까지는 정말 멀쩡했던 손목이 하루아침에 고장 나있었다. 그때까지 말로만 듣던 손목 부상은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뭐가 잘못됐던 걸까? 나는 지난 며칠 동안 손목을 유독 심하게 혹사시켰었나 곰곰이 되새겨보았다.


원인을 고작 지난 며칠 동안에서 찾아보려고 했던 건 오류였다. 악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시기가 아무리 늦다고 해도, 하루에 몇 시간씩 악기를 잡아왔던 세월이 어느새 6년이었다. 목과 어깨 사이에 악기를 끼우고 한쪽 팔로 지탱하는, 그리고 나머지 한쪽 팔로는 일정한 각도로 쉴새없이 움직이며 활을 긋는, 그 자연스럽지 못한 자세를 하루에 몇 시간씩 유지한다는 것만으로 몸에 크게 무리가 갔던 거다. 그렇게 천천히 스트레스가 누적되어 어느 날 몸이 버틸 수 있는 한계치를 넘어섰고 그 신호가 손목에서 나타난 거다.


지금 생각해 보면, 입학시험을 무사히 마칠 때까지 몸이 버텨준 게 얼마나 큰 다행인지 모른다. 만약에 입시를 준비하던 중 손목 부상이 찾아왔더라면 (몸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치명적이었을 거다. 어쩌면 몸이 버틸 수 없는 상태가 된 건 더 오래전이었을지도 모른다. 입시라는 압박감에 신체가 이를 악물고 버텨준 걸 지도. 그래서 중요한 시험이 끝나고 한 숨 돌릴 여유가 되자마자 몸이 ‘나 아프니까 이제 나도 좀 봐줘’하고 소리를 내준 게 아닐까?


신호는 그전부터 있었다. 뒤셀도르프에서 입시를 준비하며 레슨을 받던 중, 연주하다가 활을 두어 번 떨어뜨렸었다. 처음에는 그저 실수려니 웃어넘겼는데, 두 번째 때는 선생님께서 표정을 굳히셨다.


“너 왜 자꾸 활을 떨어뜨려? 그거 뭔가 굉장히 잘못됐다는 뜻이야.”


손목이 딱히 아팠던 건 아니라 그냥 우연이고 실수라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 당시에는 연습 때 활을 종종 떨어뜨리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게 나쁜 징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었다(물론 활을 떨어뜨리면 활에게는 안 좋겠지만…).  한 학기가 지나고 여름이 되어 한국을 방문했을 때는 곧바로 병원부터 찾았다. 그때 물리치료 선생님께서 ‘엄지손가락에 나도 모르게 순간적으로 힘이 빠져 잡고 있는 것을 쉽게 놓칠 수 있다’라고 하셨는데 그때서야 활을 놓쳤던 일이 좋지 않은 징조였음을 알게 되며 당시 선생님의 굳은 표정이 의미했던 바를 깨달았다.


한국 나이로 19살 때, 아직 독일에 나올 계획이 없었을 때도 한동안 물리치료를 다닌 적이 있었다. 어딘가에 통증이 있어서라기보다는 자세의 균형을 바로잡기 위함이었다. 물리치료 선생님께서는 바이올린 자세를 한 번 잡아보라고 하셨고, (관리를 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분명 아프게 될 거라 예언하셨다(사실 그때도 ‘허리 디스크 초기’, ‘거북목’ 등 종합병원이 되기 직전의 상태였지만 통증도 딱히 없었고, 아직은 관리만 잘하면 괜찮을 거라 하셨다. 그래서 아직은 부상이 먼 얘기라고 생각했던 거다.). 그때까지 내 주변 친구들 중에서는 통증으로 고생한 경우가 없었기 때문에 나는 그저 부상이 ‘자세가 좋지 않고 악기 할 때 힘을 많이 들이는 사람들’에게만 찾아오는 거라 여겼다. 그래서 한 귀로 흘려들었다. 나는 나와 내 주변 친구들 모두 아직은 팔팔한 십 대라는 사실을 간과했던 거다.


앞서 ‘막내가 된 왕언니’ 편에서 말했다시피 대학에서는 모든 한국인들을 통틀어 내가 가장 어렸다. 대학에 들어가면서 20 대와 30대의 세계로 드디어 첫 발을 들인 셈이었다.. 그리고 그 세계는… 종합병원 그 자체였다. 다들 어딘가 아프거나 아팠던 사람들뿐이었다(아니면 더 노력해서 군대를 빼겠다며 더 아프기를 목표로 하는 사람이거나… 물론 실패로 끝날, 그리고 끝난 계획이다. 하하) 어렸을 때부터 몸에 누적되어 온 스트레스가 이십대로 넘어가면서 터져 나오나 보다.


물리치료 선생님께서는, 연습을 한 여섯 달 정도 아예 하지 않으면 거짓말같이 깨끗하게 나을 거라고 하셨다. 독일 의사 선생님들의 의견도 마찬가지였다. 연습을 하지 말라니, 그게 무슨 소리요? 바이올린을 업으로 삼기로 결정한 이래로, 연습을 덜 한 날은 있어도 아예 하지 않은 날은 단 하루도 없었기에, 그때의 나는 ‘연습을 하지 않는 법’을 몰랐다. 같은 과정을 지나 온 언니들이나 교수님께서는 불안하더라도 악기를 무조건 쉬어야 한다고 하셨지만, 그게 처음에는 어찌나 불안했던 지. 지금이라면 얼씨구나 누워서 쉬겠지만 말이다(...). 그래서 한 달 반 동안은 정말 쉬운 곡들만 하거나 자세를 잡아보는 것 정도로 레슨을 진행했다. 연습은 하루에 삼십 분에서 어쩌다 한 번씩 두세 시간까지 했던 것 같다. 다만, 최대한 무리가 안 가는 방향으로.


그렇게 두 달이 지나서야 악기를 다시 잡을 수 있게 되었고, 방학에 한국에서 지내는 세 달 동안 물리치료를 받으며 손목을 느리지만 서서히 고쳐나갔다. 선생님 말씀대로 여섯 달 동안 아예 악기를 잡지 않는 게 정상이 되는 가장 좋은 지름길이겠지만 현실적으로 실행 불가능한 일이니까. 하지만 악기를 잡을 수 있게 되고 난 뒤로도 활 윗부분을 쓸 때마다 엄지손가락을 따라 내려와 손목에서 만나는 지점이 접히며 통증이 생겨서 일 년 간 활 윗부분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했다. 또다시 일 년이 지나 염증이 더 크게 도져 악기를 쉬게 되었을 때까지.


하지만 인생은 새옹지마라던가, 위기가 기회로 바뀌는 순간 또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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