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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Ju Apr 01. 2022

유학 일기 03. 말하지 않아도 다 알 수 있어

언어를 초월하는 우정, 그리고 의사소통 방법



그렇게 나는 '인싸'로 다시 태어나기를 결심했다. 학교에 다니지 않는 지난 4년 동안 결여된 사회성을 이겨낼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만땅이다 못해 이미 흘러넘치고 있었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나오면서 나의 눈에 첫 번째 타깃이 들어왔다. 그는 얀과 마찬가지로 나만 일방적으로 아는 사이였다. 그의 이름은 '슈'로 중국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듯한 여자아이였다. 나는 그를 기숙사 안에서 본 적이 있었다. 같은 기숙사에 사는 게 분명했다.


"저기, 너 기숙사에 살지? 나 너 봤거든."


처음 보는 사람의 말에도 슈는 친절하게 웃으며 대꾸해주었다. 슈는 중국인으로, 나와 같이 바이올린을 전공하는, 그것도 이번에 함께 입학하게 된 친구였다. 하지만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외모와는 다르게 나보다 나이가 여섯 살이나 많았다. 우리는 그 자리에서 핸드폰 번호까지 교환했고, 곧 나이 차를 뛰어넘는 좋은 친구가 되었다. 슈는 그 당시의 나보다는 독일어를 잘했지만, 아직은 서툰 편이었다. 그래서 오히려 서로를 답답해하지 않고 보다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


학기가 시작된 지 3주가 지났을 때는, 비자 문제로 대만에서 뒤늦게 날아온 새로운 친구가 나타났다. 이번에도 나와 같이 바이올린을 전공하는 한 살 어린 여자 친구였다. 토끼(내 글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름은 모두 가명으로, 그들의 실제 이름을 따 만들었다. 그런데 이 친구의 호칭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마땅한 게 없어서, 그냥 실제 별명이기도 한 '토끼'라고 부르겠다)의 독일어는 당시의 내 그것보다도 서툴렀다. 하지만 나도 독일어를 못했었기 때문에 의사소통이 안되어 불편하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우리 중 누구 하나라도 독일어를 특출 나게 잘했더라면 우리는 가까운 친구가 되지 못했을 거다. 한 사람은 답답해하고 다른 한 사람은 그로 인해 미안해하는 불편한 상황이 반복됐을 테니까. 하지만 그 당시의 우리는, 비록 말을 제대로 끝맺지 못하더라도 서로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는 건지 느낄 수 있었다.


독일어를 모국어로 쓰지 않는 자들의 엉터리 독일어를, 원어민들은 유감스럽게도 잘 알아듣지 못했다. 성인이 되어 처음으로 접하고 배운 언어를 이제 막 써먹기 시작한, 같은 처지에 놓여있는 외국인들끼리는 신기하게도 말이 잘 통했다. 같은 과정을 거쳐와서 그런지, 누군가 상황에 맞지 않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문장을 제대로 끝맺지 못해도 어떤 말을 하고 싶었던 걸지 어렴풋이 느껴졌다. 하지만 외국인들과의 대화 경험치가 아직 쌓이지 않은 독일인들에게는 그렇지 않았나 보다.


독일에는 외국인이 정말 많다. 최근 들어 서울에 사는 외국인 수가 많이 늘었다고는 해도, 독일의 '중소'도시 시내에서 외국인이 눈에 띄는 빈도수와는 비교할 수준이 안된다. 서울에 인구가 집중적으로 밀집되어있는 한국과는 달리, 독일의 인구밀도는 그다지 높지 않다. 그 말은 즉슨, 대도시에 사람이 몰려있지 않고 골고루 퍼져있다는 거다. 외국인들은 대부분 대도시에 살지만, 대부분의 독일인들은 대도시나 중소도시 근처의 '마을'에 산다. 분명 독일인 반, 외국인 반이었던 대(혹은 중소)도시로부터 차를 타고 근교 도시(또는 마을)로 10분 정도만  빠져나가도 아시아인 자체가 마을 전체에 한두 가구 정도밖에 없다. 그러니까 결국, 대부분의 독일인들은 대학에 입학하기 전까지 '독일어가 서툰 외국인들'과 대화할 기회가 전무하다는 거다.


독일인들이 '외국인과 대화하는 방법'을 터득해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 또한 흥미롭다. 대학에 입학하기까지 독일어 초보와 대화할 기회를 갖지 못한 독일인 신입생들은 확실히 외국인들과의 대화가 서툴다. 조금만 잘못된 단어를 사용하거나 발음이 정확하지 않으면, 독일어 못한다고 일부러 무안 주려는 게 아니라 정말로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외국인과의 대화 스킬'이 어느 정도 쌓인 고학년 독일인들은 말 그대로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다. 독일어를 잘 못하는 외국인들도, 잘못된 독일어를 잘도 알아듣는다.


슈와 토끼가 잘 알아들었던 내 독일어를 얀은 알아듣지 못했다. 나보다 한 학기 먼저 들어온 선배 중에 독일에서 나고 자란 한국인 선배가 있었는데, 슈와 토끼의 독일어를 알아듣지 못해서 내가 중간에 통역을 해주어야 했다. 나는 잘 알아듣는 독일어를 독일인이 알아듣지 못하고, 내가 말하는 독일어는 비슷한 수준의 외국인만 곧잘 알아듣다 보니, 우리가 배운 독일어가 혹시 엄청나게 엉터리인 건 아닐까? 처음에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아니다. 글과 책으로만 배웠던 언어를 이제 막 입 밖으로 내기 시작했던 때라 그랬을 뿐이다. 언젠가는 꼭 거쳐야 할 과정이었다.


그저 이러한 생각이 들었다. '언어' 사람과 사람이 의사소통하기 위한 매개체가 되기 위해, '완벽' 필요조건이 아니라는.  내가 누군가의 언어를, 그리고 말뜻을 이해하는 데에 필요한 것은, '완벽한 언어 실력' 아니라  사람의 정서를 공유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이라는,  그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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