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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록 Aug 11. 2022

가난한 유학생의 서러움

봄방학과 추수감사절이 제일 싫었어요 

미국 대학에는 여름방학과 겨울방학을 제외하고, 학기 중에 크게 쉬어가는 주가 두 번 정도 있다. 3월 즈음에는 Spring break라고 해서 일주일 정도 방학을 하고, 11월에는 미국의 추수감사절인 Thanksgiving day가 껴 있어 또 일주일 정도 방학을 한다.


이때 보통 미국인 친구들은 가족들을 보러 본가에 많이들 가고, 유학생 친구들은 미국, 캐나다 혹은 멕시코로 여행을 많이들 떠난다. 학비와 생활비를 감당하는 것만으로도 벅찼던 나는 "OO 안 갈래?", "OO 가자! 한 번은 가야지!" 하는 친구들의 여행 제안을 늘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대학원 졸업 때까지 총 열 번의 봄방학과 추수감사절을 겪으면서 단 한 번도 버팔로를 벗어나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한 번쯤 친구들 여행에 따라간다고 드라마틱하게 큰일이 나거나 하진 않았을 것 같은데 그땐 그냥 내 자신이 뱁새라고 생각되어 괜히 황새 따라가다 가랑이 찢어질 일을 만들고 싶지가 않았다. 


입학 후 처음 맞이한 땡스기빙 때는 웃지 못할 해프닝도 있었다. 여행이든, 가족을 보러든 떠날 사람들은 다 떠나고 기숙사에는 나와 비슷한 처지의 한국인 친구들 세 명이 남아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넷 다 미국에서 땡스기빙데이를 처음 겪어봐서 특히나 추수감사절 당일에는 식당이나 마트가 전부 다 닫는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1학년 때라 차도 없었고, 버팔로에는 우버도 내가 졸업할 때쯤에야 들어왔기 때문에 우리의 생활 반경은 기숙사에서 걸어서 30분 이내인 곳들 정도였다. 점심부터 배고파서 넷이 나가서 동네를 싹 돌아봤는데 거짓말처럼 문을 연 곳이 단 한 곳도 없었다. 맥도날드도, 버거킹도, 던킨도너츠도, 심지어 마트까지 전부 다 불이 꺼져 있었다. 대도시였다면 한두 곳쯤은 문을 연 곳이 있었겠지만, 버팔로 사람들은 가족들과의 시간을 제대로 즐기기로 작정한 모양이었다.


하는 수 없이 빈 손으로 돌아와 각자 가지고 있는 식량을 최대한 모아보았다. 너구리 두 개와 깻잎 통조림 하나, 그리고 햇반 하나가 있었다. 넷이 옹기종기 모여 나눠먹고, 다행히 자판기는 작동을 했기 때문에 초코쿠키와 감자칩을 질릴 때까지 뽑아 먹었다. 그래도 미국에 왔으니 블랙프라이데이는 경험해 봐야지 싶어 밤 열 시쯤 넷이서 콜택시 한 대를 불러 아울렛에 갔는데 웬걸, 스타벅스도 식당들도 다 열어있는 게 아닌가. 낮에 너무 부실하게 먹어 쇼핑이고 뭐고 푸드코트에서 이것저것 사 먹는 데에만 집중했던 그날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대학생 때 여행을 못 다녀 본 게 무의식 중에 한이 되었는지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나서는 누구보다 열심히 놀러 다녔다. 회계법인에서 내 첫 직무는 외부감사였는데, 이건 busy season이라 부르는 10월~4월 정도만 바짝 바쁜 업무였다. 여름에는 운 없게 6월 말 혹은 9월 말 법인 감사에 걸리지만 않으면 칼퇴를 할 수 있었고, 특히 내가 다녔던 회사는 Jumpstart Friday라고 해서 5월~9월은 매주 금요일 세 시에 퇴근을 시켜줬었기 때문에 주말에도 알차게 놀러다닐 수 있었다. 1년 차도 연차가 25개였기 때문에 5일씩 몰아 쓰면 여름에 무려 다섯 번이나 여행을 다닐 수 있었고 연말에도 크리스마스와 새해 휴일이 겹쳐 2주 정도씩은 꼭 쉬었기 때문에 (이렇게 보니 휴일 참 많네 미국...) 욜로스럽긴 했지만 덕분에 주니어 연차 때 학생 때의 서러움은 다 털고 한국에 돌아올 수 있었다.


밋밋했던 학생 때의 기억들 때문에 나는 지금 오춘기를 겪고 있는 걸까? 그날의 결핍들이 서른의 내게 열심히 외치고 있는 것만 같다. 경험 좀 더 채워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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