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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록 Aug 08. 2022

가만히 있으면 가마니가 된다

중국과는 너무 다른 미국

지난번 처음 중국에 유학 갔을 때의 느낌과 생각을 담은 글을 한 번 올렸었다.

(어서 와, 중국은 처음이지?)


학교 자체에도 한국인이 없었고, 한국 사람들에게 중국 유학이 꽤나 생소했던 시절이라 도시 자체에 한국인이 그다지 많지 않았던 중국에서는 어딜 가나 사람들의 관심과 챙김을 먼저 받을 수 있었다.


2016년 7월, 한국의 사드 배치 결정 이후 분위기가 정말 달라지긴 했지만, 내가 광저우에 살 때만 해도 식당이나 쇼핑몰 같은 데서 '한국인이니, 일본인이니?'를 물어보고 한국인이라고 대답하면 점원들이 정말 살갑게 대해주며 필요 이상의 서비스를 제공해 주기도 했었다 (그 당시, 아마 지금도, 일본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은 중국인들이 많았다). 그리고 한류 열풍 자체가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였기 때문에 학교에서는 한국 드라마, 혹은 게임들 (당시 중국에서 넥슨의 카트라이더가 엄청 유행했었다) 만으로도 대화를 충분히 쉽게 시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미국은 완전 달랐다.

조금이라도 더 외진 곳으로 갔더라면 달랐으려나?


우리 학교는 뉴욕주 버팔로라는 도시에 위치해 있었는데, 뉴욕주는 세계에서 가장 다양한 인종이 모여 사는 곳이다. 사실 뉴욕주의 크기가 한국만 하기 때문에 진정한 멜팅팟인 뉴욕시 즉,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맨해튼과는 비교도 안되긴 하지만, 학비가 저렴한 주립대로 유명한 탓에 대학원생까지 총 3만 명 정도의 학생이 있는 우리 학교에는 한국인만 천 명이 넘게 있었다. 학교 안에 한국 식당이 있을 정도니 말 다했다. 한국인만 이 정도라면, 중국 학생 수는 말하지 않아도 상상이 될 것이다.


그래서 난 처음 입학했을 때 내가 정말 미국에 온 것인지, 아니면 중국에서 다녔던 국제학교의 연장선인지가 꽤나 헷갈렸다. 이 정도로 외국인이 많았던 학교이기에, 나는 더 이상 중국에서처럼 특별한 존재가 아니었다.


가만히 있으면 진짜 가마니가 되는 구조라고 해야 하나.


특히나 성인이 되어 처음 미국에 발을 디딘 나는 다른 유학생 친구들에 비해 유학을 늦게 온 편이었기 때문에, 친구를 원한다면 용기를 내어 한 발짝 먼저 다가가야만 했다. 근데 이 '먼저 다가간다는 것'이 머리로는 잘 알겠는데, 막상 실천을 하려니 참 어려웠다.


쓸데없는 완벽주의가 있었던 나는 문법적으로나 어휘적으로 틀린 문장을 내뱉는 게 챙피해 한 문장을 뱉기 전에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을 엄청 여러 번씩 돌렸다. 그러다 완벽한 문장을 구사할 수 없으면 '에이, 됐어' 하고 말을 삼켜버린 적도 여러 번 있었다. 해가 지날수록 많이 내려놓긴 했는데, 직장에서마저 이 안 좋은 습관을 완벽히 버리지 못했던 점이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언어적 한계도 문제였지만, 나는 본래 성격이나 강점 검사를 할 때마다 'good listener', '경청'과 같은 키워드가 항상 따라다니는 "듣는 사람"이다. 듣는 사람인 내가 길 가다가도 모르는 사람에게 '너 옷 이쁘다', '신발 어디서 샀어?' 등의 스몰 톡을 서슴없이 건네는 활발한 미국인들에게 먼저 말을 걸기란 참 쉽지 않았다. 그 당시에는 그 텐션을 따라가지 못하는 게 마치 나는 이 나라와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전에 블로그에서 한 이웃분이 내게 미국 유학을 가면 좋은 사람과 상대적으로 유학의 메리트가 덜 한 사람의 기준이 무엇인 거 같냐고 여쭤보셨다. 그때 나는 후자의 예로 나를 들었는데, 나 같은 성격의 사람은 미국에 처음 가면 정신적으로 굉장히 힘들 수가 있다. 이런 성격은 유학을 가면 안 된다는 게 아니라, comfort zone을 벗어나기 위해 스스로 많은 고통과 인내의 시간을 견뎌야만 훨씬 더 많은 것을 얻어올 수 있다는 말이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1학년 때 미국인 친구들과 4인실 방에 함께 살지 않았더라면, 난 정말 미국에 발을 들이자마자 바로 가마니가 되었을 수도 있겠다 싶다. 이런 내향적인 성격의 내가 미국에 잘 적응할 수 있던 건 친구들, 교수님들을 비롯해 주위에 수많은 좋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힘들어하는 나를 보며 주위에서 추천해줬던 수잔 케인의 책 <콰이어트>와 사회심리학자 Amy Cuddy의 <Fake it til you make it (될 때까지 그런 척을 하면 실제로 그렇게 된다)> TED 영상도 유학 생활 내내 굉장히 큰 도움이 되어주었다. 



혹시 미국이나 타지에서 당시의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계신 분들이 있다면, 이 영상들을 꼭 한 번씩 보셨으면 좋겠다.

Susan Cain과 Amy Cuddy의 영상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c0KYU2j0TM4

https://www.youtube.com/watch?v=Ks-_Mh1QhM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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