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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록 Aug 04. 2022

디스 이즈 아메리카!

어서 와, 미국은 처음이지?

모든 준비를 마치고 한국을 떠나던 무더운 8월의 어느 날, 공항에서 아빠가 눈물을 훔치는 모습을 보았다.


처음 유학을 떠나는 것도 아닌데, 미국이란 나라는 중국보다 훨씬 더 멀게 느껴졌다. 그래서인지 친구들도 공항에 배웅을 나왔는데, 마치 내가 다시는 안 돌아오기라도 할 것처럼 서로 부둥켜안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그날의 순수했던 우리들의 모습은 십여 년이 지난 지금은 하하호호 웃으면서 회상할 수 있는 즐거운 안주거리다.


그렇게 설레는 마음과 슬픈 마음을 반씩 안고 미국 땅에 도착했다. 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입국심사 줄에 서서 벌벌 떨며 미리 준비해 온 말들을 몇 번이고 되뇌어보던 어린 나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대학 1학년은 내게 참 많은 의미가 있었다.


우선 고등학교를 안 다녔기 때문에 학교라는 곳 자체가 굉장히 오랜만이라 너무 설레기도 했고, 중고등학교 때부터 미국에 와 있던 유학생 친구들에 비해서는 꽤나 늦은 나이에 미국이란 나라에 처음 발을 디딘 것이었기 때문에 언어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적응하는 데 꽤나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오늘은 '미국 초보' 내가 freshman year에 우당탕탕 적응하면서 가장 신기했던 세 가지인 수업, 기숙사, 밥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수업


사실 입학하면서 제일 걱정됐던 건 수업이었다. 특히 2학년까진 거의 교양수업만 듣기 때문에 주제도 가지각색이라 내가 모든 수업을 따라갈 수 있을지 걱정이었다. 이런저런 강의들을 실제로 들어보니, 수업은 마치 토플 리스닝 실사판 같았다. 토플(TOEFL)이라는 시험 자체가 모국어가 영어가 아닌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대학에서 수업이 가능한지를 평가하는 시험이기 때문에 리스닝에서 들려주는 지문들은 실제 미국 대학 강의와 굉장히 비슷하다. 토플 점수를 잘 받기 위해 노트 테이킹을 열심히 하면서 지문 이해력을 높였던 경험들이 수업을 따라가는 데 실제로 굉장히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미국 대학 수업을 듣다 보면 페이퍼나 에세이 적을 일이 정말 많은데 그때도 토플과 SAT writing을 공부했던 게 정말 큰 도움이 되었다.


사람마다 다르게 생각할 수 있지만, 나는 확실히 예나 지금이나 친구들의 일상 대화를 알아듣는 것보다는 강의나 뉴스를 알아듣는 게 훨씬 쉽고 편한 것 같다. 혹시 미국 유학을 앞둔 누군가가 이 글을 읽게 된다면, 토플을 단순한 영어능력시험이 아니라 학교 적응을 몇 달은 앞당겨 줄 좋은 도구라고 생각하고 공부했으면 좋겠다.


기숙사 생활


미국 대학에 진학하면 1학년 때 가장 돈이 많이 든다. 내가 다녔던 학교는 가족들이 근처에 살거나, 출퇴근을 하면서 학교에 다니는 사람들을 제외한 신입생은 기숙사 생활이 필수였다. 학교에 적응을 빨리 하게 하려는 취지인데, 많은 학교가 이런 걸로 알고 있다. 학교 기숙사는 외부에 사는 것보다 훨씬 더 비쌌기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1년을 버텼다. 


기숙사는 싱글룸(1인방), 더블룸(2인방), 쿼드룸(4인방)으로 나뉘었는데, 아무래도 비용 차이가 컸기 때문에 나는 쿼드룸에 살게 되었다. 한국에서 온 미국 초보 나와, 백인 한 명, 흑인 한 명, 필리핀계 미국인 한 명 이렇게 인종도 전공도 다른 네 명이 원룸에서 1년 동안 같이 생활을 했다. 정말 조그마한 방 하나에 각 모서리에 침대와 책상이 하나씩 놓인 구조였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다른 넷이 어떻게 다닥다닥 붙어 같이 지낼 수 있었는지 참 신기하다.


화장실도, 주방도 층에 하나씩 있어서 모든 게 공용이었는데, 당시 한창 하이틴 드라마에 빠져 있던 내겐 그런 장면 하나하나가 다 너무 신기했다.


돈 때문에 선택한 쿼드룸이었지만, 결과론적으로 결국엔 덕분에 빠르게 학교에, 그리고 미국이라는 나라에 적응할 수 있었다. 한 가지 아쉬웠던 건, 기숙사 건물이 굉장히 여러 개 있었는데, 쿼드룸은 우리 건물에만 몰려 있었다. 당시 대부분의 한국인 친구들은 싱글룸 혹은 더블룸에 살았었는데 그래서 친구들을 만나려면 항상 버스를 타고 멀리 나가야 했다. 실은 아무도 신경을 안 썼을 텐데, 그땐 어린 마음에 뭔가 기숙사로 꼬리표가 붙는 것 같아 속상해한 적이 많았다. 서른의 내가 스물의 나와 만날 수 있다면, 남의 시선 따위 하나도 신경 쓰지 말고 더 재미있게, 더 즐겁게 즐기고 오라고 얘기해 줄텐데-



하필 내가 입학하던 해에, 학교에서 기숙사 식당을 신축해서 신문에 '미국 대학 다이닝 홀(교내 식당) Top xx' 이런 식으로 자주 실렸었다. 이걸 계기로 하필 내가 입학할 때 학식 인플레이션이 심해졌다.


그 당시에는 2천 불 대 였던 걸로 기억한다


기숙사에 사는 학생들은 meal plan이라는 거에 의무적으로 가입을 해야 했다. 이것도 명분은 마찬가지. 학교에 빨리 적응하게끔 하기 위함이라는데, 솔직히 동의할 수 없다. 학교 배만 불려준 것일 뿐.


다음 주로 롤오버가 안됐기 때문에 돈을 낭비하지 않으려면 일주일에 14끼는 무조건 사 먹어야 했고, 계산해보면 한 끼에 거의 15-16불 정도 하는 큰돈이었다. 기숙사 식당이 규모가 엄청 큰 뷔페였기 때문에 그걸 감안하면 가성비가 좋다고 말할 수 있지만, 매 끼니로 지출하기엔 큰돈이었다. 한 달에 식비만 거의 850불이 든 꼴인데 2학년부터는 식비를 한 달에 2-300불 정도 썼던 걸 생각하면 1학년 땐 억지로 쓴 돈이 정말 많은 것이다.


혹시나 내가 다녔던 학교처럼 신입생에게 밀 플랜이 의무라면, 이런 울며 겨자 먹기 식의 지출을 어느 정도 각오를 하고 가야 한다. 1학년 때는 학교에 적응한다는 핑계로 알바도 하나도 못 했었는데, 힘든 와중에도 손을 내밀어 주신 부모님께 너무 죄송하고 감사하다.


음식 자체에 적응하는 데는 하루도 안 걸렸다. 보통 처음 미국에 가면 음식이 과하게 짜고 달아서 입맛을 적응시키는 데 꽤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나는 이미 중국에서 자극적인 맛에 어느 정도 단련이 됐었기 때문에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당시 제일 충격을 받았던 건 식당 한편에 있는 꽤 큰 비건 코너였다(물론 나는 그냥 지나쳤지만). 햄버거부터 피자, 스테이크까지 두부와 콩고기로 만든 다양한 메뉴들이 매일 바뀌었고, 치즈케이크, 당근케이크 등의 디저트 류도 엄청 다양해서 '이 나라에는 채식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오늘은 학교에 물리적으로 적응한 것들에 대해 이야기해봤는데, 다음 글에서는 친구를 사귀며 든 고민 등 정신적으로 적응하는 과정들에 대해 좀 더 이야기해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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