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
나는 학비가 비싼 사립대학교에서 애매하게 장학금을 지원받으면 나머지 학비를 감당할 수가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그리고 그 당시에는 어린 마음에 추가적인 비용을 내며 유학원 등의 도움을 받는 게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대학교 지원 시 학비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주립대학교들만 타겟으로 했다.
사실 이 전 글에서도 말했듯이 정보가 많으면 많을수록 미국 유학을 쉽게 갈 수 있는 방법은 많아지기 때문에 그때 더 적극적으로 알아보지 못한 게 약간의 아쉬움으로 남는다(사실 그때의 경험 덕분에 전문가의 힘을 빌리면 일이 훨씬 더 수월해질 수 있다는 걸 깨닫게 되어 지금은 필요할 땐 좀 더 효율적인 일처리를 위해 나보다 몇 발짝 더 앞서 있는 사람들의 힘을 쉽게 빌리는 편이다). 아무튼 그 당시에는 무슨 오기 때문인지, 남의 힘을 빌리지 않고 오롯이 내 힘으로만 해결을 하고 싶었고, 혼자 열심히 네이버, 구글 등의 포탈 검색을 하며 외국인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준 이력이 있는 주립대학교들에 열심히 지원했었다. 원서비도 꽤 비쌌기 때문에 아무 데나 막 지원할 수는 없어 신중에 신중을 기했다.
미국 대학 장학금 제도에는 니드 베이스(Need-based)와 메릿 베이스(Merit-based)가 있다. 전자는 집안의 경제적인 상황에 따라 받을 수 있는 재정보조이고, 후자는 내신, SAT 시험 점수, 과외활동 등 재정상황 외의 것들에 초점을 둔 장학금이다. 사실 그 당시 우리 집의 상태로는 Need-based 장학금에도 충분히 도전해볼 만했지만 모든 걸 혼자 준비하고 있는 내게는 연방정부 재정보조 신청서, CSS profile 등 이런저런 서류를 작성하고 신청하는 일들이 엄청 큰 산으로 느껴졌다. 그래서 시험 점수만 있다면 혼자서도 쉽게 신청할 수 있는 Merit-based 장학금에만 지원을 했는데, 만약 그때로 돌아간다거나, 아주 만약 언젠가 미국 대학원에 가고 싶어 진다면 그때는 좀 더 적극적으로 유학원 등 전문가의 힘을 빌려 더 많은 시도를 해 볼 것 같다.
총 다섯 군데의 학교에 지원했는데, 두 군데로부터 Merit-based 장학금을 제공해주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사실 그때의 어린 나는 협상이고 뭐고까지 생각해볼 만한 사람이 못되었다. 그냥 기쁜 마음으로 둘 중에 더 많은 액수를 제시한 학교에 입학하겠다고 메일을 보내려 했는데, 아빠가 스튜어트 다이아몬드 교수의 <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라는 책을 선물하며 그냥 수락하지 말고 한 번 협상을 시도해 보라고 했다.
책에서 어떤 말들을 했는지 지금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요새도 서점에 가면 특별판이 종종 보이던데, 다시 한번 읽어봐야겠다). 다만 확실한 건 그 책 덕분에, 그리고 옆에서 '시도해봐서 최악의 경우 잃는 건 그냥 그 학교에 못 가는 것뿐이 아니겠냐'라고 독려해주시는 부모님 덕분에 눈 딱 감고 협상을 시도해볼 수 있었다.
둘 중 좀 더 적은 장학금을 제시했던 A 학교에 메일을 보냈다. B 학교에서 제시받은 장학금 금액과 입학 조건들을 명시하며, "나는 이러이러한 이유로 A 학교에 좀 더 가고 싶은데, 현재 상황에서는 아무래도 재정적으로 좀 더 지원해주는 B 학교에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조금 더 나은 옵션을 제시해줄 수 없겠냐. 미래에 이러이러한 방법으로 학교에 반드시 도움이 되겠다"는 식의 내용을 덧붙였다. 열아홉 인생을 살며 부모님 말고 제3자의 누군가와 이런 큰 협상을 처음 해보았기 때문에 메일을 보내고 답장이 오기까지 얼마나 가슴을 졸였는지 모른다. '건방지다고 생각해서 나를 아예 떨어트리면 어쩌지?', '그래서 어쩌라고 하며 답을 안 주면 어떡하지?' 하는 불안한 마음들로 몇 날 며칠을 보냈던 것 같다.
정말 다행히도 며칠 후 학교에서 답장이 왔다. 떨리는 마음으로 열어본 메일에는 B 학교보다 더 높은 장학금 금액에, 학교 Honors Program에도 등록을 해주겠다는 제안이 들어있었다. 드디어 그렇게 꿈꾸던 미국에 가볼 수 있겠구나 하는 마음으로 날아갈 듯 기뻤고, 인생 첫 큰 베팅이 '이게 되네?!' 하는 긍정적인 결과로 돌아오니 큰 용기도 생겼다. 살면서 '이게 될까?' 하고 주저하게 되는 어떤 것들이 생길 때마다 '일단 해봐, 될 수도 있어' 하고 스스로를 달래게 되는 큰 계기가 되어 주었다. 이래서 경험 자산이 무서운가 보다.
별생각 없이 부모님의 제안으로 우연히 해보게 된 그 한 번의 도전이 그 후 학교를 다니며 다른 외부 장학금들에 지원을 해 볼 때도, 학교를 졸업하고 처음 입사를 할 때도,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두 번의 이직을 거치며 새로운 연봉 협상을 할 때도 얼마나 큰 도움이 되었는지 모른다. 입학하고 종종 다른 세 학교에는 협상을 시도해보지 못한 것, 다른 정보들을 더 많이 찾아보지 못했던 것 등의 아쉬움이 남긴 했지만 그래도 시도를 해 봤다는 것 자체에 의의를 두고 후회하는 마음을 갖지는 않으려고 노력했다.
고 정주영 회장이 생전에 이런 말씀을 하셨다고 한다.
이봐, 해보기나 해 봤어?
살면서 눈 딱 감고 내딛는 한 발 한 발이 때때로 생각보다 훨씬 큰 파장을 일으키기도 하니 좀 더 마음을 열고 이것저것 시도해볼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미래의 나에게도 하는 말이다.
지레 겁먹지 말자.
Why no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