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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은미 Nov 19. 2022

'독하다'는 소리 듣는 기획자가 되려면

[PM 북클럽] <아이디어 불패의 법칙(2020)> 요약 및 정리

서론:

프로토타입이 아니라

프리토타입입니다



  <아이디어 불패의 법칙(2020)>은 2020년 출간된 따끈따끈한 IT 지침서이다. 구글 최초의 엔지니어링 디렉터이자 혁신 전문가인 알베르토 사보이아가 '프리토타입'에 관한 자신의 노하우를 PDF 형식으로 인터넷에서 배포하던 자료를 종합하고 보강하여 책으로 출간한 것이라고 한다.

  부끄럽지만, PM 북클럽 단톡방에서 이 책을 읽기로 선정할 때까지만 해도 어떤 주제를 다루고 있는지를 명확하게 알지는 못했다. 도서관에서 책을 구하고 나서야 "가설 검증 방법론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이군"이라고 깨달았으니 말이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이 책의 제목만 보고 읽고 싶은 책으로 투표했다. 아이디어라는 단어 때문이었다.


  길지 않은 PO 인턴 경험에서 깨달은 건 주니어 기획자는 아이디어의 함정에 빠지기 쉽다는 것이다. 이런저런 아이디어는 퐁퐁 샘솟는데, 그걸 '망하지 않게' 만드는 역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나는 재밌어보이는 아이디어를 제안하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실질적으로 고객과 팀에 도움이 되는 문제 해결을 주도하는 기획자로 성장하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아이디어 불패의 법칙>이 나의 아이디어가 '불패'할 있도록 도와줄 있을 거라 생각했다.






1. 실패라는 야수



아이디어가 실패했다

…책임은 누가 지지?


  개발이 실패한 건 개발자의 책임이고, 디자인이 실패한 건 디자이너의 책임이다. 기획이 실패했다면? 당연히 기획자의 책임이다. 그렇다면 기획의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기획이란 무엇인가?>라는 포스팅에서는 기획이란 특정 이슈나 문제·현상에 대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그 아이디어를 현실로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나도 이에 동의한다. 새로운 무언가를 세상에 선보이려고 할 때는 기획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모든 아이디어가 세상의 관심을 받고 성공에 이르는 것은 아니다. 외면당하고 실패에 봉착하는 아이디어에 대한 책임은 결국 기획자의 몫이다.

  따라서 기획자들은 아이디어의 실패에 대한 책임의 주체가 되는 경험을 숱하게 겪을 수밖에 없다. 실패는 언제나 쓰디쓴 법이다. 저자 알베르토 사보이아는 이 책에서 '실패'를 곧 '야수'라고 표현하면서 줄줄이 성공만을 경험하던 자신의 오만이 절정에 달했을 때 찾아온 실패가 얼마나 뼈아팠는지 고백한다.



  그러나 알베르토 사보이아는 자신의 실패를 들여다보고, 깨달음을 얻고, 그것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기 위해 이 책을 썼다. 한국판의 추천 서문을 작성한 뇌과학자 정재승은 "세상에서 가장 독한 사람은 자신의 실패를 복기해보는 사람이다."라는 문장으로 글을 시작했다. 똑같은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지난 실패를 되돌아보아야 한다. 누구나 알고 있는 명제이지만, 그래서 더더욱 실천하기가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독한 사람들이 '독하다'는 소리를 듣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그렇지만 기획 직무를 업으로 삼거나 지망하는 사람이라면 독한 마음을 먹을 수밖에 없다. 아이디어를 제안하는 것아이디어를 현실로 만들어가는 것이 기획자의 일이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는 가설 검증이 필요하다.

  물론 가설 검증 없이도 기획이 가능하기는 하다. 단, 작은 실패를 여러 반복하고 복기하면서 성공에 가까워지는 것이 훨씬 효율적일 뿐더러 이후의 실패를 방지할 있다. 번에 성공하고자 하는 욕망은 훗날 거대한 재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실패'란 무엇인가?


  <아이디어 불패의 법칙>에서는 '시장 실패'를 "신제품에 투자했지만 시장 결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거나 기대와 상반된 것'"이라고 정의했다. 이와 반대로 '시장 성공'은 결과가 기대와 맞아떨어지거나 이를 능가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큰 실패를 피하는 기획자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일에 착수하기 전 성공 기준을 명확하게 세워둘 필요가 있다.


출처=https://www.facebook.com/437550773728664/posts/830275587789512/


  시장 성공을 이루어내기 위해서는 시장이 제품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경험과 능력이 아무리 대단하더라도 시장에서 외면당하면 시장 성공을 달성했다고 볼 수 없다. 그러나 시장 성공을 달성하기는 쉽지 않다.

  위 이미지는 책에 소개된 성공 방정식이다. 제품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위 요인이 모두 성공적이어야 한다. 그러나 제품이 실패하기 위해서는 위 요인 중 단 하나만 잘못되면 된다. 이처럼 신제품이란 성공할 확률보다 실패할 확률이 훨씬 높을 수밖에 없는 운명을 말그대로 '타고났다'.



  그리고 우리의 제품이 실패할 확률을 비약적으로 끌어올리는 방해 요소 또한 존재한다. 바로 생각랜드이다. 생각랜드는 저자가 정의한 일종의 가상 공간(?)인데, 단순하고 추상적인 상태의 아이디어가 제품으로서의 수명 주기를 시작하는, 즉 근거 없는 즉흥적 판단과 신념, 선호, 예측 등이 난무하는 곳을 가리킨다.

  생각랜드는 믿을 만하고 객관적이고 활용할 만한 데이터가 아니라, 주관되고 편향되어서 잘못된 결론으로 이끌 수밖에 없는 의견들을 양산한다. 생각랜드의 오류로 인해 사람들은 제품을 지나치게 긍정적, 또는 부정적으로 판단하게 된다.


  생각랜드에 한눈이 팔려 없는 시장을 있다고, 있는 시장을 없다고 판단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는 이에 대한 해답으로 프리토타이핑(Pretotyping)을 제시한다. 프리토타이핑은 아이디어가 '될 놈'인지 '안 될 놈'인지 밝혀낼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도구이다. 아이디어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놓인 기획자들에게 있어 업무에서의 뼈아픈 실패를 피하기 위해선 꼭 익혀두고 있어야 할 방법론이기도 하다.

  여기서의 프리토타이핑은 프로토타이핑(Prototyping)과 구분되는 개념이다. 프리토타이핑은 '~인 척하다'라는 뜻의 영단어 'pretend'와 프로토타이핑의 합성어이다. 또, '먼저'라는 뜻의 접두사 'pre-'를 연상시키기도 해 '먼저 온다'와 '~인 척하다'는 의미가 강조된 단어라고 볼 수 있다. 프리토타이핑은 아이디어가 '될 놈'일 가능성이 높은지 판단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프리토타입을 활용하면 생각랜드에서 벗어나 '나만의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다.






2. 아이디어를 가설로 만들기


  아이디어를 제대로 테스트하기 위해서는 사전에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이때 '생각을 명확히 정리하는 것'은 필수적인 과정이다. 아이디어는 막연하고, 부정확하고, 애매모호하고, 여러 해석을 가능하게 할수록 실패할 확률이 높다. 이때 아이디어의 기본 전제와 그에 대한 시장의 호응에 대해 기획자가 어떤 기대를 하고 있는지 짧은 문장으로 표현해보는 시장 호응 가설은 아이디어를 뾰족하게 벼리는 데 도움이 된다. 아래는 책에 소개된 시장 호응 가설의 몇 가지 예시이다.


아이디어 : 치포 스시, 값싼 초밥 푸드트럭, 99센트 참치롤 전문점
시장 호응 가설 : 다른 패스트푸드만큼 빠르고 저렴하게 초밥을 만든다면, 많은 초밥 애호가들이 햄버거나 타코 등 건강하지 않은 음식 대신 우리 초밥을 선택할 것이다.
아이디어 : 웹밴, 식료품 온라인 주문 및 가정 배달 서비스
시장 호응 가설 : 여러 옵션을 고려할 때 수많은 가정이 마트에 가는 대신에 정기적으로 온라인에서 식료품을 구매할 것이다.
아이디어 : 마블 캐릭터 '하워드 덕'을 기초로 한 영화
시장 호응 가설 : 사람들은 오리 캐릭터(도널드 덕, 대피 덕)를 아주 좋아한다. 따라서 하워드 덕이 실사 영화로 나오면 다들 떼 지어 보러 올 것이다. 
아이디어 : 넷플릭스 (스트리밍 서비스를 시작하기 전에 DVD 기반이었던 당초 비즈니스 모델)
시장 호응 가설 : 우편 배송 기반의 DVD 대여 서비스를 월정액 요금제, 반납 지연과태료 무료 정책과 결합하면 많은 사람이 비디오 가게를 이용하는 대신 우리 서비스에 가입할 것이다.


  하지만 위와 같은 시장 호응 가설은 예리한 가설이라고 보기 어렵다. 이를 더더욱 실효성 있게 개선하기 위해서는 X, Y, Z가 필요하다. XYZ가설로 발전시키기, 즉 가설을 수치화하는 것이다. 이때의 수치는 개략적인 추정치여도 된다. 나 역시 숫자와 친한 사람은 아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수치화된 가설'이라는 이야기만 들어도 자신감이 뚝뚝 떨어지곤 했다. 그러나 저자는 "여건이 허락하는 것보다 더 정확한 수치를 사용하려고 하는 것은 오히려 잘못이다"라며 최초 숫자는 근사치조차 못 되어도 무방하다고 말한다.

  X, Y, Z의 최초 값은 단지 출발점일 뿐이며, 몇 번의 테스트를 거치고 나면 정확한 값에 가까워질 수 있다. 오히려 "수치에 대한 감을 잡을 수가 없으니 아예 수치를 배제한 가설을 세우자"는 마음으로 무턱대고 기획을 시작해버리면 생각랜드에 빠질 수밖에 없다. (내가 이 책에서 가장 큰 도움을 받았던 게 바로 이 파트였다. 실무를 시작하기 전에 읽었더라면 정말, 정말, 정말 좋았을 텐데…….)


  X, Y, Z는 과학이나 수학에서 알려지지 않은 변수를 나타낼 때 사용하는 문자이다. 따라서 가설을 검증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이 값들을 아직까지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거나 그 존재를 증명할 수 없는 요소라고 여기고, 자만하지 않는 태도로 시장의 필요를 진지하게 탐구해야 한다.






3. "이걸 만들어야 할까?"


  탄탄한 가설을 수립하는 과정을 마쳤다면, 본격적인 프리토타입으로 넘어갈 수 있다. 책에 따르면 프리토타입의 주된 목적은 다음과 같다.


내가 이걸 사용할까?

언제 어떻게 얼마나 자주 사용할까?

남들이 사줄까?

사람들은 이 제품에 얼마까지 지불하려고 할까?

사람들은 언제 어떻게 얼마나 자주 이걸 사용할까?


  바꿔 말하자면 위 질문에만 제대로 답을 내릴 수 있다면 구태여 높은 완성도를 갖춘 '시제품'을 구현하여 검증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대표적으로 피노키오 프리토타입가짜 문 프리토타입이 있다. 두 방법론 모두 '진짜인 척 하는 가짜' 제품을 내세워 시장 성공 여부를 가성비 있게 판단할 수 있다. 일종의 꼼수라고도 할 수 있는데, 일례로 저자는 스마트 스피커로 '나만의 데이터'를 수집한 경험을 소개했다.



  먼저, 강낭콩 캔을 구해 검은색 종이테이프를 감아서 첨단기술 제품처럼 보이게 했다. 그것에 '할'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할이 정말로 작동한다고 스스로 암시(?)를 걸었다. 할이 실제로 자신의 요청을 수행할 수 있다고 여기고 이런저런 말을 걸었다. 그런 자신의 모습을 기록하면서 저자는 자신이 어디서, 어떻게, 얼마나 자주 스마트 스피커를 이용할지 깨달을 있었다.

  더불어, "볼륨조절 버튼 외에도 '듣지 않기' 버튼이 필요하다", "'작은 소리 모드'가 있으면 좋겠다"와 같은 부가적인 인사이트도 얻을 있었다. 이와 같은 과정을 통저자는 '나라면' 적어도 개의 스마트 스피커는 구입해서 이용할 거라고 확신할 있었던 것이다.






PM의 시선

한 스쿱


  알베르토 사보이아의 강낭콩 캔 실험은 너무나도 재치있으면서도 효과적이었다. 이에 깊은 감명을 받은 나도 나만의 실습을 하나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현재 새롭게 도전해보고 싶은 프로젝트 중 하나를 골라 '될 놈'인지 판단하는 XYZ가설을 세워보기로 했다.


노션에 차곡차곡 쌓아두고 있는, 언젠가는 세상에 빛을 볼 나의 글들


  먼저, 나는 현재 "나의 글을 엮어 독립출판물을 만들고 싶다"는 꿈을 갖고 있다. 이는 매우 모호하고 추상적인, 말그대로 '꿈'에 가깝다. 이를 <아이디어 불패의 법칙>에 소개된 프로세스를 따라 차근차근 예리한 형태로 바꾸어보려고 한다.

  실물 책을 만들기 위해서는 리소스가 많이 필요하다. 원고를 인쇄하고, 발주를 넣고, 북 디자인을 하고, 책방마다 입고 문의를 해야 한다. 그 기간 동안 재고 더미를 쌓아둘 공간이 필요한 것은 덤이다. 그리고 무턱대고 찍어냈다가 판매가 저조하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내가 떠안게 된다. (대학교에서 문예창작 전공 중 숱한 창작 수업에 참가하면서 깨달은 바는 나의 글은 나에게만 재미있을 확률이 아주 아주 높다는 것이다.) "재미삼아 한 번 해보자"기에는 실패했을 경우 감당해야 할 리스크가 적지 않다.


  이때, 최근 유행하는 메일링 서비스로 시장 성공 여부를 가늠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인스타그램 친구 중에는 독립출판 업계에 있는 사람들, 글과 책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 동네책방의 손님과 사장님 등 나의 실험의 대상(?)이 되어줄 훌륭한 사람들이 아주 많다. 따라서 인스타그램 스토리와 게시물로 무료 메일링 서비스를 하겠다고 홍보하면 어떨까 싶다.

  물론 비축해둔 글의 분량은 얇은 책자 한 권도 안 나올 만큼 적다. 그렇다고 정기적으로 메일링을 위해 새 글을 써낼 자신도 없다. 이건 가짜 문 프리토타이핑일 뿐이다. 좀 더 노골적으로 표현하자면 일종의 기만인 셈이다...^^ 실제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어떤 의견과 함께 메일링에 관심을 보이는지를 측정하고 나서는 프리토타이핑이었다며 사실을 고백할 것이다.

  그러나 이는 개괄적인 기획만 나와 있는 지금의 상태로도 시도해볼 수 있는 효과적인 가설 검증 방법이다. 이런 실험을 통해 '나만의 데이터'를 수집하면 독립출판물을 만들어도 좋겠다는(또는 안 되겠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고, 더 나아가 독립출판물이 아닌 다른 형태로 나의 글을 세상에 선보일 가능성을 엿볼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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