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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서 Mar 30. 2024

무궁무진, 게임의 가능성

비문학 리뷰 | 김동현, 《세상을 바꾼 게임들》

김동현 지음 | 북저널리즘 펴냄





가깝고도 먼, ‘게임’


나는 게임이 싫었다. 신이 내게 게임 재능을 내려주지 않은 탓이다. 초등학생 때 <스타크래프트>, <크레이지 아케이드>, <카트라이더>, <알투비트> 등 다양한 게임이 유행했다. 나는 그중 아무것도 안 했다. 못했기 때문이다. 물풍선을 상대에게 맞춰야 하는 <크레이지 아케이드>에서는 내가 쏜 물풍선에 내가 맞아 죽었고, 카트를 몰아 빠르게 달려야 하는 <카트라이더>에서는 시간 내에 골라인에도 도착 못 했다. 리듬게임 <알투비트>에선 한 곡을 다 플레이하기도 전에 게임오버되기 일쑤였다. 다른 사람들과 대전하는 온라인게임 특성상 끊임없이 승패가 갈렸는데, 나는 늘 패자여서 자신감이 뚝 떨어졌다. 


그런데 게임이 싫고 무서우면서도 늘 게임이 궁금했고, 게임하는 사람들을 동경했다. 나는 경험의 공백을 대리만족으로 채웠다. 중학생 무렵부터 온라인 방송인의 게임 플레이 영상을 즐겨봤다. 게임을 직접 하지는 않으면서 언제나 곁에 두고 살았으니, 참 재미난 일이 아닌가. 내게 게임은 베일에 싸인 소개팅 상대 같았다. 까보긴 무섭고 궁금은 하고. 나와 게임 사이엔 한 발짝, 딱 그만큼의 거리가 있었다. 게임은 참으로, 가깝고도 멀었다.     






처음으로 느껴본 ‘게임의 맛’


게임의 세계에 눈을 뜨기 시작한 건 올해(2023년) 초였다. 나는 여느 때처럼 좋아하는 스트리머의 게임 플레이 영상을 보았다. 상당히 재미있어서 도합 열 시간도 넘는 영상을 몰입해 보았는데 마지막 엔딩을 남겨놓고 방송이 끝났다. 후반부 스토리가 궁금하면 직접 게임을 통해 알아보란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잠이나 자려고 침대에 누웠는데 자꾸만 그 게임이 아른댔다. 뒷부분이 너무 궁금해 며칠 밤을 고민하다 결국 게임을 샀다. 올해 나온 포켓몬스터 신작, <포켓몬스터 스칼렛·바이올렛>이었다.


엔딩이 궁금해서 시작한 포켓몬은 정말 ‘미친 듯이’ 재밌었다. 눈 시뻘겋게 뜨고 밤새가며 게임했다. 포켓몬도 깊이 들어가면 고수들의 심오한 세계가 펼쳐지지만, 스토리를 따라가는 것만 목표로 삼으면 전혀 어렵지 않다. 널따란 지역을 달리며 귀여운 포켓몬을 잡았다. 게임 내 캐릭터들과 싸우며 이겼다. 포켓몬 도감을 채우고, 귀여운 옷도 모았다. 처음 느껴보는 종류의 재미였다. 나는 게임이라는 새로운 세계로 홀린 듯 이끌렸다.


그러고나자 새로운 게임이 하고 싶어졌다. 게임이 없으니 허전했다. 닌텐도 대표작 <젤다의 전설: 야생의 숨결>을 시작했고, 내가 제일 좋아하는 캐릭터 ‘도라에몽’이 주인공인 <도라에몽 진구의 목장 이야기>를 사서 100시간 이상 플레이했다. 할인을 노려 <역전재판> 등 유명 시리즈를 차례로 구매했고, <쥬라기 월드> 게임도 샀다. 어떤 건 하다가 관뒀고, 어떤 건 열심히 했다. 게임의 세계를 정신없이 탐닉했다.     







이토록 다양한 ‘게임의 세계’


게임에 대한 공연한 두려움과 어색함이 깨지면서, 게임과 한순간에 친해졌다. 방송에서 본 게임을 사서 플레이하기 시작했다. 요즘엔 할만한 게임이 없나 할인목록을 수시로 본다. 그동안 내 문화생활은 영화, 드라마, 만화, 책이었는데, 여기에 게임이라는 목록 하나가 추가되면서 즐길 수 있는 콘텐츠의 지평이 엄청나게 넓어졌다. 어안이 벙벙할 정도로.


게임을 싫어하는 줄 알았던 내가 실은 게임을 좋아한다는 걸 깨달은 후, 생각해봤다. 가만 되짚어보면, 어렸을 때도 대전게임은 싫어했지만, 학교에서 컴퓨터 방과후 수업을 듣고 나면 선생님이 나눠주었던 게임 CD 속 게임은 좋아했다. 컴퓨터 화면을 마구 깨버리는 <화면 부수기>나, 아기들이 그들만의 올림픽을 벌이는 <컴온베이비> 등 90년대생이라면 다들 알 법한 그런 게임들 말이다. 스마트폰이 나온 뒤론 농장을 가꾸는 모바일 게임 <스머프 빌리지>도 열심히 했던 기억이 난다. 


나는 왜 게임을 싫어한다는 명제 속에 나를 가뒀던 걸까. 아마도 ‘게임’이라는 대중문화에 대한 편협한 이해가 한몫했을 것이다. 우리 사회는 게임이 아동과 청소년에게 유해한 영향을 미친다고 줄기차게 주장해왔는데, 주로 예로 드는 게 <스타크래프트> 같은 전략전술게임이나 <서든어택> 같은 총게임이다. 그래서 왠지 그런 게임들만 ‘진짜’ 게임같이 느꼈던 것 같다. 게임 생태계는 엄청나게 다양한 종으로 구성돼 있는데도. 


게임을 질 낮은 문화로 보는 이들이 과연 게임 따윈 쳐다도 보지 않고 생활할까? 아마 아닐 확률이 높을 것이다. 스마트 기기를 오래 보는 걸 싫어하는 나의 어머니도 한때 모바일 퍼즐 게임 <캔디 크러쉬 사가>에 푹 빠졌던 적 있다. 게임은 다양한 형태로 우리 곁에 둥지를 틀고 있다.     






무궁무진, ‘게임의 가능성’


게임계 주요 역사를 짧고 굵게 정리한 책 《세상을 바꾼 게임들》에서 저자는 게임 산업 규모를 예로 들며 현대사회에서 게임의 위상이 가파른 속도로 높아지고 있다고 언급한다.


2021년 전 세계 게임 산업 규모는 약 205조 원이다. 이는 팬데믹 이전인 2019년 세계 영화 산업 규모(49조)의 네 배가 넘는 수치다. 


요즘 콘텐츠 업계에서는 IP 비즈니스에 주력한다. 고유의 세계관과 캐릭터를 내세운 콘텐츠를 원 소스로, 영상과 텍스트 등 분야를 넘나들며 새로운 콘텐츠를 생산하는 비즈니스다. 웹툰이 영화화되는 것도 IP 비즈니스의 일종이다. 그런 점에서 또 게임이 중요해진다. 게임은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품은 이야기 보따리다. 내가 푹 빠졌던 <포켓몬스터> 시리즈도 그렇다. 비디오게임을 원작으로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캐릭터 사업을 한다. 원작 게임을 기반으로 영화가 나온 경우도 많다. 1960년대 계엄 치하 대만의 역사를 다룬 공포영화 <반교: 디텐션>은 게임과 영화, 모두 좋은 평가를 받았다.  


게임이 돈이 되냐 아니냐를 떠나도, 게임은 복합적이고 정교한 그만의 매력을 갖춘 훌륭한 콘텐츠다. 스토리, 캐릭터, 디자인, 연출, 사운드, 진행 방식 등 수많은 요소가 게임을 이룬다. 영화, 혹은 드라마계에서 인디 창작물이 흥하기 어려운 데 반해, 인디 게임에 대한 주목도가 높은 게임계의 환경 역시 콘텐츠 다양성 제고에 일조한다. 게임은 '그 자체로' 흥미롭다.


이번에 열린 2023 항저우 아시안 게임에서는 e스포츠가 정식 종목으로 채택돼, 프로게이머들이 태극기를 달고 국가대표로서 대회에 참여했다. 대한민국은 총 네 개의 메달을 가져왔다. <스트리트 파이터>(일명 ‘철권’) 부문 금메달리스트 김관우 선수는 인터뷰를 통해 “스트리트 파이터는 해본 분은 아시겠지만 오락실에서 하는 거고, 하러 가면 항상 혼나던 게임이다. 어릴 때 게임을 좀 하셨다면 안 맞아본 분이 없을 것”이라며 “그래도 항상 좋아했고, 옆구리를 맞아가면서도 놓지 않았던 의지와 강한 승리욕으로 지금까지 왔다”고 말했다. ‘나쁜 놀이’ 취급 받던 게임이 새로운 영웅을 탄생시켰다.


<세상을 바꾼 게임들>을 읽다보면 여러 미디어 콘텐츠의 확장을 위한 아이디어나, 사업적 관점에 대한 영감을 얻을 수 있다.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도,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게임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 보자. 





p.s. 이 원고를 업로드하는 2024년 3월, 현재 나는 <리그오브레전드> 프로리그에 미쳐 있다. 이 원고를 쓰는 중에도 나는 내가 불과 몇 개월 뒤 이런 류의 AOS 게임에 흥미를 가질 거라곤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낯선 지역에 발을 디디며 세계는 쉽게 확장된다. 여러분도 게임을 하나 해 보라!





인문교양 월간 <유레카> 2023년 11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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