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문학 리뷰 | 제임스 팰런, 《사이코패스 뇌과학자》
요즘 ‘사이코패스’라는 말을 자주 접한다. 유튜브만 봐도 ‘사이코패스의 특징’ ‘사이코패스 구별법’ 등 사이코패스에 대한 이야기가 무수히 쏟아져 나오고, 범죄를 다루는 각종 TV 프로그램에서도 이와 비슷한 내용을 전문가가 설명하는 장면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일상 대화에서도 이기적인 태도로 타인에게 부당한 일을 저지르는 사람들을 흔히 사이코패스 혹은 줄임말로 ‘싸(사)패’라고 호명한다. ‘싸패 같다’는 수식은 연쇄살인범에게도, 범죄자는 아니지만 우리 일상에 포진해 있는 악인에게도, 심지어는 친한 친구에게도 장난식으로 사용되곤 한다.
이렇듯 사이코패스라는 말은 놀라울 정도로 넓은 범위의 인간상을 포괄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서, 그 말에 담긴 의미가 명확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사이코패스는 연쇄살인범도, 학교나 일터에서 마주치는 소소한 악인도, 친한 친구도 될 수 있는 걸까? 짓궂은 언행을 일삼는 친구에게 ‘너 정말 피도 눈물도 없는 범죄자 같다’곤 안 하지만, ‘너 싸패야?’ 하고 장난스럽게 질책할 수 있는 건 어떤 까닭일까?
사이코패스라는 개념이 국내에 소개된 역사는 길지 않다. 2004년 연쇄살인범 유영철이 검거되며 사이코패스라는 개념이 주목받기 시작했으니, 대중이 이 개념을 인지한 지도 끽해야 20년 정도 됐다.
전문가와 언론이 유영철, 강호순 등을 사이코패스라고 일컫자 곧 일반 대중도 사이코패스가 무엇인지 궁금증을 갖기 시작했다. 2000년대 ‘사이코패스 테스트’ 유행도 이러한 흐름 속에 나타난 현상이었을 것이다. 초등학생 시절 친구들과 괴담 이야기하듯 이런저런 사이코패스 테스트를 공유했던 것이 기억난다. 특정 상황을 제시하며 그 상황에 대한 의견을 물은 뒤, 사이코패스는 이렇게 대답한다더라 하는 유형이 대부분이었다. 이를테면 ‘아파트에 사는 당신이 한밤중 창밖을 보다가 살인 현장을 목격했다. 당신과 눈이 마주친 살인범은 당신을 향해 손짓한다. 살인범이 손짓한 이유는 무엇인가?’ 이러한 질문에 사이코패스는 ‘당신이 사는 층수를 알아내 죽이러 가기 위해’라고 답한다는 것. 물론 신뢰도나 타당도가 검증되지 않은 흥미 본위의 카더라식 테스트였다.
이런 얼토당토않은 테스트가 유행했다는 사실은 ‘사이코패스’라는 개념을 대중이 어떻게 인식하고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사이코패스는 인간의 특정 행동 특성을 분석하기 위해 고안된 개념이었지만, 어느새 ‘잔혹한 악인’을 대체하는 말로 자리 잡았다.
제임스 팰런은 세계적으로 저명한 뇌과학자다. 그는 2005년 한 정신과 의사로부터 자신이 수십 년간 모아온 사이코패스 살인마와 일반 살인마의 뇌 스캔 사진 50여 장을 분석해달라는 의뢰를 받는다. 팰런은 분석 결과, 사이코패스 살인마들은 억제, 사회적 행동, 윤리, 도덕성 등에 관여하는 뇌 영역의 기능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것을 발견한다. 그는 이러한 발견에 기반해 사이코패스에 대한 논문을 저술하고, 여러 대학과 연구소로 강연을 다닌다. 이때까지만 해도 팰런에게 있어 사이코패스 범죄자의 뇌는 흥미로운 연구대상에 불과했다.
한편 그는 2005년 알츠하이머 연구도 진행 중이었는데, 알츠하이머 환자와 건강한 피험자를 비교·분석하기 위해 자신과 가족의 뇌를 스캔한다. 그런데 무언가 이상했다. 자신과 가족의 뇌 스캔 사진에서 알츠하이머와 관련된 이상은 발견되지 않았지만, 너무도 익숙한 형태의 뇌 스캔 사진 한 장이 눈에 띈 것이다. 그 사진은 팰런이 지난 연구에서 살펴본 사이코패스 범죄자의 뇌 스캔 사진과 몹시 흡사했다. 그는 처음에는 자신의 실수로 사이코패스 범죄자의 뇌 스캔 사진이 섞여 들어갔다고 생각했지만, 해당 사진의 주인이 누구인지 이름을 확인해 본 뒤 놀라 벙찌고 만다.
평범한 뇌 스캔 사진들 사이에서 발견한 한 장의 사진. 사이코패스 범죄자의 것처럼 보였던 그 사진은 놀랍게도 팰런 자신의 것이었다.
자신의 뇌 프로필이 사이코패스 범죄자와 일치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뒤, 팰런은 자신의 조상 중 살인마가 여럿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에 팰런은 탐구심이 발동한다. 그는 연구를 통해 자신이 공격적 행동과 연관되는 변이 유전자인 전사 유전자(Warrior Gene)를 가지고 있음을 밝혀냈다. 그는 사이코패스 범죄자가 되기에 충분한 요건들을 갖추고 있었던 셈이다.
그러나 팰런은 범죄자가 아니었다. 그는 대학생 때 불장난이나 차량 절도 따위의 (그의 젊은 시절에는 그다지 심각한 일로는 여겨지지 않았던) ‘못된 장난’을 친 이력이 있긴 하지만, 주위 사람들로부터 “평소에는 괜찮은 사람 같은데 이따금씩 하는 짓을 보면 정말로 남들에게 관심이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는 말을 들은 적은 있지만, 그는 타인에게 상해를 입히거나 그러고 싶은 충동을 느끼지 않았다. 그는 “결혼해서 행복하게 사는 세 아이의 아버지이며 직업적으로도 성공한” “지극히 정상적인 사내”였다. 팰런은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특정 뇌 영역에 똑같이 손상을 입었지만 누군가는 연쇄살인마가 되고 누군가는 그렇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지, 전사 유전자를 가졌음에도 자신이 연쇄살인마가 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지.
팰런은 사이코패스 범죄자 사례연구를 샅샅이 살폈고, 사이코패스 범죄자 대부분이 어린 시절 학대를 당했음을 알게 되었다. 청소년 사이코패스 범죄자 35명을 조사한 결과 그중 70%가 어린 시절 내내 심각한 학대를 받았다는 연구 결과를 토대로 성인 사이코패스 범죄자의 90% 이상이 생애 초기부터 학대받았을 것이라고 추론했다.
유전적 결정론을 신봉했던 그는 결국 성장환경이 사이코패스 범죄자를 만드는 주요한 요인 중 하나라는 것을 인정한다. 그는 다정한 어머니와 아버지 아래서 다른 많은 사회구성원과 소통하는 방법을 배우며 자랐다. 그는 사이코패스에 관한 ‘세 다리 의자 이론’을 세운다. “안와전두피질과 편도체를 포함한 전측두엽의 유별난 저기능, 전사 유전자로 대표되는 고위험 변이 유전자 여러 개, 어린 시절 초기의 감정적·신체적·성적 학대”라는 세 가지 다리가 모두 갖춰질 때 사이코패스 범죄자가 탄생한다는 것이다.
팰런은 자신을 ‘사회친화적 사이코패스’라고 부른다. 우리가 일상에서 ‘사이코패스’라는 단어를 연쇄살인범부터 짓궂은 친구까지 여러 인간 군상과 연결 짓는 이유는 사이코패스를 입에 담는 우리 자신도 사이코패스란 무엇인지 잘 모르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사이코패스가 무엇인지 전 학문적으로 통합된 정의는 없다. 정신의학·범죄학 등에서 각계의 기준에 따라, 또 각계의 언어로 사이코패스 개념을 연구하고 판단할 뿐이다. 사이코패스라는 개념이 연구되는 의의를 해치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의 언어 사용에 신중을 기해야 하지 않을까.
인문교양 월간 <유레카> 2024년 1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