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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서 Jan 28. 2022

소년만화적 여성과 백지(白紙)의 젠더

여성서사 웹툰 리뷰 | 미애 작가, <어글리후드>

어글리후드 | 미애 글/그림 | 네이버웹툰



네이버웹툰 <어글리후드>


유일신 야마누스가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교회는 권력의 중심이며 시민들은 교회에의 공헌 정도에 따라 계급이 나뉜다. 그런데 사실 이 세계가 신이 아닌 외계인에 의해 지배당하고 있는 것이라면? 세계의 진실을 알고 대항하는 어떤 소녀가 있다. 그의 이름은 엘사, 통칭 ‘어글리후드’. 우연적 사고로 외계인의 강림을 위한 촉매인 성수를 마시게 된 그는 이능력을 얻고 교회세력과 정면으로 부딪치며 싸워 나간다. 네이버에서 연재중인 웹툰 <어글리후드>의 중심 줄거리다.




‘소년만화적 여성’


여성서사라는 개념에 대한 정의는 아직까지 하나로 합의되지 않은 상황이다. 여성서사를 구분 짓는 여러 가지 기준들 중에는 여성 캐릭터들이 서사를 이끌어가는가, 여성 창작자가 만들어낸 작품인가, 작품이 여성주의적 관점에 의해 쓰였는가 등이 있다. <어글리후드>는 상기의 기준에 따라 여성서사 웹툰이라 명명할 수 있겠다.


어글리후드의 스토리 골격은 따지고 보면 ‘소년만화’라고 불리는 것들에 가깝다. 소년만화의 정의 역시 모호하지만, 통상적으로 소년 주인공의 배틀, 경쟁, 모험 등을 통한 성장 서사를 그리고 있는, ‘소년지’에 실린 만화들을 소년만화라고 부른다. <원피스>, <나루토>, <블리치>가 소년만화의 대표적 예시이며 최근에 흥행한 작품 중에는 <귀멸의 칼날>도 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국내 웹툰으로는 <경이로운 소문>, <신의 탑> 등이 소년만화적 서사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왜 ‘소년’만화인가? 모험, 우정, 성장은 만화뿐 아니라 문학, 영화 등 여러 영역에서도 전통적으로 남성들의 전유물이었다. 물론 어린 소녀들에게 많이 읽히는, 소녀 주인공을 내세운 ‘소녀만화’라고 불리는 것들 중에도 모험과 배틀, 성장 서사가 있다. 세일러문, 프리큐어 등의 마법소녀물이 그렇다. 그러나 소년만화와 소녀만화 사이에는 보편적으로 차이가 존재한다. 소년 주인공의 소년만화는 주로 성장 자체에 초점이 맞춰 있다. 사랑은 부차적 요소이거나, 여성 캐릭터들에게 사랑받지만 주인공 자체는 사랑에 관심 없는 서사를 부여하며 오히려 주인공의 위상을 높이기 위한 방식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소녀만화의 경우에는 사랑을 쟁취하는 것이 핵심적인 욕구이자 목표인 경우가 대다수며 그 과정에서 사회적 여성성 및 코르셋을 소녀 독자들이 내면화하도록 유도한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어글리후드>는 배틀, 성장을 주제로 삼는 소녀만화의 지평을 넓힌다. 기존의 ‘소녀만화적’ 특성보다는 ‘소년만화적’ 특성을 지닌 여성 주인공 ‘엘사’를 설정하며, 사랑 혹은 여성성 수행이라는 요소는 제외하고 여성 주인공의 내면적 고뇌와 그가 도달하고자 하는 뚜렷한 목적의식에 초점을 맞춰 극을 진행한다. 여성 향유자, 그중에서도 특히 어린 소녀 향유자들은 좋아하는 남성에게 사랑받기 위하여 꾸미는 여성 캐릭터가 아닌, 여러 가지 고민과 싸움을 통해 내면적 성장과 능력의 성장을 이루는 여성 캐릭터를 바라보며 사회에서 만들어낸 전통적 여성상이 아닌 모험하는 여성, 싸우는 여성, 성장하는 여성이라는 새로운 여성상의 가능성을 맛보고 내재화할 수 있는 것이다.


두 명 이상의 여성이 나오는가, 그들 대화의 주제가 남성이 아닌가 등 터무니없이 보잘 것 없는 근거로 여성차별적 작품을 가려내는 벡델테스트를 기준으로 본다면, <어글리후드>는 그야말로 세상에 다시없을 여성 서사일 것이다. 주인공뿐만 아니라 서사를 이끌어가는 핵심 인물의 자리에 여성들이 수두룩하게 배치되어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에 그치지 않고, <어글리후드>는 사회적 여성성과 남성성의 가치를 뒤바꾸는 데까지 나아간다. 




백지(白紙)의 젠더


<어글리후드>의 남성 캐릭터 '체스터 그린마일'


전통적 젠더개념의 전복이 가장 효과적으로 드러나는 캐릭터는 ‘체스터 그린마일’, 세타시의 추기경이다. 남성인 그는 기존의 소년만화적 서사에서 전형적으로 여성 조연 캐릭터가 수행하던 역할을 수행한다. 최고의 미인이라는 설정, 강력한 능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외모 때문에 높은 자리에 올라간 것이 아니냐며 뒤에서는 은근한 멸시를 받는 모습, 종종 스타킹 신은 다리를 조명하며 각선미를 자랑하는 듯한 ‘서비스컷’적 연출 등이 그것이다.


주인공의 어머니와 아버지 역할도 전복된다. 많은 소년만화에서 아버지는 주인공인 아들에게 다소 무모하게 보이는 모험에 환상을 가지도록 이끌고 또 격려하는 역할을 맡곤 한다. 게다가 자주 아들에게 모험의 꿈을 심고는 죽어 사라져 모험에의 동기를 강화하기까지 한다. 반면 어머니는 위험한 모험에 눈을 빛내는 부자를 못마땅하게 여기며 걱정하고 말리는 역할을 수행한다. 하지만 <어글리후드>에서는 두 가지 역할이 완전히 전복된다. 딸인 ‘엘사’에게 교회세력에 대한 의심을 심고, 관련된 활동을 하다가 세상을 떠난 것은 아버지가 아닌 어머니이며, 아버지는 ‘엘사’의 위험한 모험을 걱정한다. 이런 식으로 <어글리후드>는 사회적으로 구성된 젠더를 해체한다.


<어글리후드>의 탁월성은 이러한 젠더개념의 전복을 작품 속에 그려내는 미애 작가의 역량에서 나온다. <어글리후드>는 이러한 전복 혹은 해체가 이루어졌는지 아닌지 의식하기 어려울 정도로 교묘하고 세련된 방식으로 이야기를 진행한다. <어글리후드>는 ‘재미있다.’


그의 손에서 탄생한 <어글리후드>의 세계는 마치 거대한 백지(白紙)처럼 광활하며 새하얗다. <어글리후드> 세계관의 인물들은 어떤 성별이든 상관없이 그 어떤 캐릭터성도 지닐 수 있다. 작가는 백지와도 같은 젠더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어글리후드>가 소녀 향유자들에게 가져다 줄 긍정적 영향에 기대를 걸며, 작품의 성공적 마무리를 바라본다.






2021년 여름에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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