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성희 Mar 08. 2022

신지 않은 신발

엄마는 그 신발을 왜 신지 않았을까


엄마는 뇌졸중으로 쓰러진 후      

다시는 예전의     

신발을 신지 못했다.               


     

지팡이에 의지해 조금씩 걷기 시작했을 때도     

질질 끄는 슬리퍼 정도였다.     

     

왼발 마비가 풀리지 않아     

신고 벗고 하기가 불편해서 슬리퍼도      

거의 신지 않으려 하셨다.     

     

돌아가실 무렵 의식불명인 엄마 발바닥을     

비로소 제대로 볼 수 있었다.     

너무 새카매서 몇 번을 닦아내면서     

많이도 울었다.           



     

2012년부터 엄마의 병원 생활이      

시작되었다.     

썰렁한 빈집을 정리하다 내가 사드린      

신발을 발견했다.     

한 번도 신지 않은 것처럼      

깨끗한 상태였다.     

     

그렇게 좋아하시더니      

왜 신지 않으셨을까.          


     

"엄마, 내가 엄청 좋은 신발 사놨어요.     

다음 주 가지고 갈게 기다려요."     

"그러냐, 고맙다. 화려하고 이쁜 걸로 사 와라.      

친구들한테 자랑허게!"     

     

 유명 등산화 매장에서 최신      

기능성을 갖춘 트레킹화를 사놨다.     

나로선 20만 원 대라는 거금을 들인 거였다.     

진열된 신발 중 젤 비싼 걸로 골랐으니     

든든하고 흐뭇했다.     

     

요즘은 눈 구경하기가 쉽지 않다.     

올겨울에 눈을 밟아 본 기억이 한 번이다.     

그것도 금방 녹아버려서      

아주 잠깐.      

     



십여 년 전만 해도 눈이 많이 왔다.     

수북수북 쌓인 눈이 녹을 틈이 없었다.     

고향에 혼자 계신 엄마가 골목길을      

걸어가다 넘어질까 봐 늘 걱정이었다.     

     

보아시스템을 처음 개발했다는 등산화 전문회사의 신발을 샀다. 

다이얼로 돼 있어서      

신발 끈을 묶을 필요가 없으니 너무 편리해 보였다.      

특히, 신발 바닥에 미끄러짐 방지      

기능이 있어 솔깃했다.     

     

아이스 그립이라는 특수 재질로     

 제작된 신발이어서 바로 내가 찾던 거였다.     

     

매장 직원에게 꼼꼼하게 물어보고      

신개념 기능이라는 말에 혹했지만,      

가격이 세서 무리를 해야 했다.      

               

     

그렇게 마음 써서 사드린 신발인데 겨울 동안 

신지도 않으신 것이다.


나중에 보니 노인회관에서 다른 사람이 자랑하는     

신발을 엄마도 사서 신고 다니셨다.     

가격이 저렴한 털신이었다.     

     

내가 사 드린 신발은 자랑할 만큼 예쁘지도     

편하지도 않았던 것이다.     

기능성에 대해선 남들이 알아주지 않으니     

설명할 흥이 나지 않았을 것이고,     

아울러 신고 싶은 마음도 사라졌던가 보다.     

그런 데다 남자 신발처럼 보였으니.     

     

     



엄마의 신발을 가져와 내가 신고 다녔다.      

불편하고 엄지발가락이 아팠다.   

     

     

기대했던 것만큼 발이 편하지 않으니 나 역시 기피하게 되었다.

     

"기껏 좋은 신발 사줬더니 왜 신발장에     

모셔놨어요?"     

신발을 가져오며 엄마에게 푸념했던 미련한     

딸이었다.     

     

가져온 신발을 볼 때마다 엄마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십 년 넘게 내내 들고 다니다가 작년에서야 버렸다.     

신발 앞면 고무창이 삭아서 갈라졌기 때문이다.     

     

아래 지방 어딘가 눈이 내린다는 소식에,     

눈 쌓인 골목길을 거닐던 엄마의 신발이     

떠오르는 건 왜일까.

작가의 이전글 당신의 손톱이 무서워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