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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pyboy Jul 03. 2022

서른셋. 나는 나를 세탁 중입니다.

초중고 그리고 대학교 그리고 사회 수많은 계단을 거쳐 올라왔다. 그리고 각 계단마다의 내가 다르다. 어쩔 때는 사춘기 학생같이. 어쩔 때는 다 큰 어른인 것처럼, 또 어쩔 때는 철없이 센척하는 사람으로 남았다. 그렇게 긴 시간 동안 꾸준하지 못했다. 매사에 힘이 들어가 있었고 조금이라도 힘을 빼면 약해 보일까 얕잡아 보일까. 전전긍긍하며 살았다. 그냥 좋다는 말을 할 수 있음에도 아니라고 싫다고 말할 수 있음에도 꾹 눌러 내리며 괜찮다 좋다는 말로 둘러대며 살았다.


이제는 내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희미해지고 있다. 하나 나는 그 불안감을 버리고는 아예 세탁하고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기를 바라고 있다. 그 이전의 나는 없고 새로운 사람으로 수많은 계단에서 마주했던 내 모습이 아니라 새로운 계단 새로운 나로 다시 태어나기를 바라고 또 노력하는 중이다. 우울감에 빠지지 않고 그 어떠한 사람을 부러워하지도 않으며 선망에 대상조차 없는 그런 사람으로 리셋을 시키는 것이다. 그럼 살아가 또 새로운 것에 우울해지고, 새로운 사람을 부러워하고 선망하겠지.


그렇게 그전에 마주했던 나를 이제 두고 새로운 나를 마주할 준비를 하고 있다. 나를 깨끗이 빨아서 잘 마르게 냄새나지 않도록, 아늑하고 따뜻하게 잘 말려주고 있다. 또 새로운 계단을 올라야 하니 그곳에 가서 내 나름대로 애써보려고 하는 것이다. 한번 보인 이미지는 쉽게 바뀌지 않는다. 혹은 너무 좋았던 이미지는 한순간에 무너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제 그런 걱정은 안 하려고 한다. 결국 나다. 이래 봬도 저래뵈도 나는 나일뿐 그 이상을 해내지도 그 이하로 떨어지지도 못한다. 


그냥 잔잔함에 밀려 살아내고 싶다. 거친 파도 같은 삶도 재미있고 흥미로울지 모르지만, 조금은 더 안정적이게 조금은 더 아프지 않고 사랑하고 우정을 만들고, 웃을 수 있기를 바라면서도 또 결국 파도를 그리워하겠지. 나의 이 고리타분한 인생을 실패한 인생이라 치부하며 살겠지만 그럼에도 조금은 잔잔한 사람이 되려고 한다. 무어라 통영할 수 없지만 예전엔 화나고 억울하고 우울한 일 투성이었다면 이제는 조금 그럴 수 있지. 내 감정에 요동치지 않으려 노력한다.


요동치면 요동치는 대로 잔잔하면 잔잔한 대로 흘러가듯 흘러가듯 가다 보면 어딘가에 도착해있지 않을까라는 기대감이다. 속히 다들 인생은 여행이라 하던데, 그저 목적지가 없는 여행인 듯싶다. 그렇게 우연히 기대하지도 않았던 풍경을 맞이하고 그 풍경을 평생을 잊지 못하듯 내 인생도 그럴 수 있겠지. 나를 깨끗이 세탁하다 보면 지난날의 내 감정들이 조금은 녹아 조금은 풀어졌으면 좋겠다. 잘 지워지지 않는 기억조차 깨끗이 행복하게 사랑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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