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행복하면 불안해지는 병

by 헤아림

내 인생에는 늘 공짜가 없었다 무언가 하나를 얻으려면 열 개를 내어주어야 했고, 잠시 숨을 돌릴 만하면 기다렸다는 듯 더 큰 파도가 밀려왔다. 그래서일까. 어느 순간부터 나는 내 삶에 찾아오는 볕을 온전히 즐기기 못하게 되었다.


어쩌다 아이의 컨디션이 좋아 병원비 걱정을 덜고, 가계부에 숨통이 조금 트이는 그런 날. 보통의 사람이라면 안도하며 웃었을 그 순간에 나는 오히려 심장이 조여드는 불안을 느꼈다.


'지금 이렇게 평온해도 되는 걸까? 곧 무슨 일이 터지려고 이러나?"


나에게 행복은 달콤한 보상이 아니라 곧 닥칠 재앙의 전조 증상 같았다. 행복한 순간이 길어질수록 나는 다가올 불행의 크기를 가늠하며 미리 겁을 먹었다. 마치 폭풍우가 치기 직전의 기괴한 고요함을 마주한 동물처럼, 나는 평화 앞에서 가장 예민하게 날을 세웠다.


이것은 일종의 '생존 본능'이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는 것을, 너무 높이 올라가면 떨어질 때 더 아프다는 것을 삶을 통해 뼈저리게 배웠기 때문이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 나는 스스로 행복의 문턱을 낮췄다. 좋은 일이 생겨도 '운이 좋았네'라며 애써 덤덤한 척했고, 기쁜 내식을 하는 것조차 조심스러웠다. 내가 행복해하는 모습을 세상이 눈치채면, 시샘이라도 하듯 다시 소중한 것을 앗아갈 것만 같았다.


불행은 익숙해서 견딜 만했지만, 행복은 낯설어서 두려웠다. 안전벨트를 매지 않고 고속도로를 달리는 기분. 언제 어디서 브레이크가 고장 날지 모른다는 공포. 그 불안 때문에 나는 정작 행복해야 할 순간에도 다음 시련에 대비하느라 마음의 갑옷을 벗지 못했다.


마음 놓고 웃어본 게 언제였을까. 내 안의아이는 여전히 속삭인다. "좋아하지 마, 곧 힘들어질 거야. 미리 마음 단단히 먹어" 행복의 절정에서조차 추락을 준비해야 하는 이 병적인 불안은 오랫동안 결핍과 사투하며 살아온 내가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낸 가장 슬픈 방어기제였다.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