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꿈태공 Sep 14. 2023

(다시) 매일 글쓰기_3일 차_제대로 모셔라

큰 일 하실 분이시다.


                                                    SBS 웃찾사, 윤화는 일곱 살





강의 원고를 작성할 때마다 늘, 강의 초입에 어떤 스폿 영상을 써야 하는지가 가장 큰 고민이다.

관련 영상을 찾느라 원고 진도가 안 나가기도 한다.

다행히 공문서 강의와 한글 강의는 관련 영상을 몇 개 돌아가며 잘 써먹고 있긴 하지만,

지출이나 물품 강의는 강의 내용과 관련 있으면서 유머 코드가 적절히 들어가

영상을 보기만 해도 아이스브레이킹이 저절로 되는 영상을 찾기란 정말 하늘의 별따기다.



오늘은 유아교육진흥원에서 유치원 신규임용 관리자, 그중 원장님들을 대상으로 학교회계 직무 강의를 하고 왔다.

영상을 찾다 찾다, 웃찾사 윤화는 일곱 살 영상을 강사 소개 다음에 넣었다.



윤화: 오빠, 우리 유치원에 선생님 새로 오셨어~


민기: 그래? 그런데 왜?


윤화: 아~~~ 나~ 접대해야 되잖아~ (어디론가 전화를 거는 시늉)


윤화: 어, 요구르트 쫙 깔고, 얼굴 되는 애들로 뽀로로춤 좀 연습시키고.


제대로 모셔라, 앞으로 큰 일 하실 분이시다~



이 부분에서 영상 딱! 끊고, 크게 되실 분들을 만나서 영광입니다.라는 멘트로 썰을 풀기 시작했다.

지난주에는 100명이 넘는 신규를 대상으로 강의를 했는데, 오늘은 공립 3명, 사립 4명, 총 7분의 원장님들을 모시고 강의라니.


사실 강의 출발은 그리 순탄치만은 않았다.

처음 강의 요청이 왔을 때, 주저했었다.


우선, 연수원을 벗어나 다른 기관에서 강의를 해야 된다는 부담감이 이유였다.

작년 이맘때쯤 서부교육청에서 물품 강의 요청을 받고 날짜 픽스까지 갔다가

윗 선에서 커트당한 기억이 있어서, 아직은 연수원을 벗어날 깜냥이 되지 않나 보다,

더 열심히 해야겠군 다짐하며 칼을 갈았다.


그리고 올여름, 코칭 과정을 준비하며 내 시간을 만들기 위해 연수원 강의를 줄여 나가던 차에

또 연수원 외의 기관에서 출강 요청이, 대상자가 유치원 신규 원장이라니,

게다가 강의 일정은 또 어떠한가.


핵심인재 한글 강의는 진작부터 9월 첫 주로 픽스되어 있었고, 신규 연수도 있고, 도무지 짬을 내기가 힘들었다.

어렵게 날짜를 정해서 수락을 하고 나니, 또 다른 기관에서 강의 요청이 왔다.

와, 이거는 정말 못하겠다.

조율을 해서 간신히 그 강의는 12월에 하기로 했다.

자신감은 썰물과 함께 쓸려 나가고, 부담감이 밀물에 몸을 싣고 품 안에 달려왔다.



두 번째 이유는, 늘 일반직과 교육감소속근로자를 대상으로 강의를 하다가 첫 교원 대상 강의를 의뢰받았기 때문이다.

학교회계가 내용이 얼마나 방대한데, 그중 예산기초, 업무추진비, 여비, 클린재정을 단 두 시간 만에 강의해야 하다니.

최대한 핵심만 짚어서, 결재자의 입장에서 이 정도는 알았으면 좋겠다 싶은 내용으로 구조를 짰다.


강의 일주일 전, 원고를 보내고 하루살이 삶을 살고 있다가, 글쓰기 강성단을 또 벌려놓고,

강의보다 더 힘든 글쓰기에 맥을 못 추고 있을 때, 쪽지가 왔다.

공립과 사립의 참석 비율이 반반 정도 되니 균형을 맞춰서 강의해 주시면 좋겠다는 내용이다.

나에게만 온 건 아니고, 이번 과정에 출강하는 강사들에게 모두 발송된 내용이다.


"제게는 아직 하루의 시간이 있사옵니다"

열두 척 배도 아니고, 잠자는 시간을 빼고 열두 시간도 채 남지 않았는데 사립 내용을 어떻게 균형 있게 담는단 말인가.

말이 안 되는 짓을 나는 어젯밤 해버렸다.


시교육청 홈페이지에서 사립유치원 재정 지침을 다운로드하고, 분석해서 강의안에 내용을 추가했다.

패들렛에 강의 수정본과 예산편성 기본지침, 사립유치원 재정 지침 파일을 업로드하고, 잠을 청했다.

이렇게까지 했는데 이젠 나도 모르겠다. 에라, 될 대로 되겠지.


오늘 아침, 아이에게는 우산 챙겨 가라고 단단히 당부를 해놓고, 정작 나는 우산을 놓고 아이패드만 들고 나왔다.

버스 시간이 애매해서 택시를 탔기에 망정이지, 버스 시간이 임박했으면 우산을 가지러 갔다가 다음 차를 탈 뻔했다.

백석초는 알지만 유아교육진흥원은 모르시는 기사님과 얘기를 나누다 보니 도착.(유아교육진흥원은 예전 백석초 자리에 2018년 이전해서 운영 중이다.)



연수원이 아닌 곳에서의 강의라서 강의실 환경을 세팅하기 위해 일찍 도착했는데, 강의실에서 낯익은 얼굴이 열~심히 노트북을 만지며 세팅을 하고 있었다.

"어머! 안 그래도 이름 보고 긴가민가했는데, 주무관님 맞았네요~"

"아니, 어쩜 이렇게 강의 이력이 화려해요? 나 자료 보고 깜짝 놀랐잖아요"


예전에 OO초 근무했을 때 병설유치원에 근무하던 선생님이 파견 교사로 그곳에 근무를 하고 있었다.

사람 일 어찌 될지 모른다더니, 여기서 이렇게 만나다니.

이런 얘기~ 저런 얘기~ 신나게 강의하고, 질문에 답변도 하고, AS도 약속하고,

맛있는 점심도 함께 먹고. 새로운 기분으로 사무실에 복귀했다.


예전에 유치원 교육감소속근로자들에게도 들었던 얘기지만, 유치원은 방과 후까지 아이들을 돌봐야 하는 특성상 여러 교육에서 소외되곤 한다.

듣고 싶은 교육이 있어도 아이들 쫓아다니다 보면 신청 기한을 놓치기 일쑤고,

교육 공문 자체를 보지도 못하고 일할 때도 많고,

집합 교육은 더더욱 꿈도 못 꾼다.

지난번 연수는 다행히 녹화본을 연수원 홈페이지에 업로드해서 복습할 수 있도록 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교육이 필요한 때에, 필요한 사람에게, 기막힌 타이밍으로 전달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귀한 일인지를 안다.

그래서 되도록 강의 요청이 오면, 수강 대상자를 파악하고, 그들의 입장에서, 그들에게 정말 필요한 내용이 무엇인가를 늘 고민한다.

그 고민을 멈추고 내 원고를 재활용하는 날, 나는 강사 직을 내려놓으리라.


매번 원고 콘셉트를 정하고, 그에 맞게 디자인을 하고, 같은 내용인데도 수강자에 맞게 편집해서 보내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그래도, 내 강의를 듣고 누군가 한 명이라도 도움이 되고, 늘 같은 일상에 재미를 조금이라도 느낀다면, 난 그걸로 됐다.


신규들도, 8급 승진자들도, 복직자들도, 6급도, 원장도, 내겐 하나 같이 귀한 사람들이다.

부족하지만 제 강의를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좀 더 진심으로 다가가는 강사가 되겠습니다.

시작은 미약하나, 크~게 되실 여러분들을 만나서 영광입니다. 제가 그 시작에 함께 할 수 있어서 큰 기쁨입니다.

저도 더 큰 사람이 되어서, 더 좋은 강의로 다시 만나뵙길 소망합니다.




작가의 이전글 (다시) 매일 글쓰기_2일 차_사람 살리고 오겠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