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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태공 Nov 13. 2023

스트리트 요 파이터

비뇨기과 찾기 힘든 세상

아이와 장거리 여행을 떠날 때면 늘 긴장해야 한다.

아이가 언제, 어느 순간에 갑자기 “화장실 가고 싶어요”를 외칠지 모르기 때문이다.

기저귀를 떼기 전에는 미처 몰랐던, 대환장 파티 타임은 아이가 크고 난 지금도 가끔 벌어지곤 한다.


먹성도 좋고, 물도 많이 마시는 우리 아이는 나를 닮아 방광이 작다.

심할 때는 5분 전에 화장실에 다녀왔는데도 화장실을 또 가기도 한다.

나도 마찬가지다. 평소에 사무실에서는 점심 먹기 전 한 번, 퇴근하기 전 한 번이면 충분한 화장실에

술을 마시면 왜 그리도 자주 가게 되는 것인지.


작년 2월, 신설학교 발령을 받고 OO초에서 임시 사무실을 차리고 근무를 하다 학교에 입주를 했다.

입주 기념으로 실장님, 계장님, 나, 시설주무관님 이렇게 넷이 회식을 했다.

소맥을 미친 듯이 말아 마셨다. 갈비를 구워 안주로 먹으니 술이 술술 들어갔다.

화장실에 여러 번 다녀온 것은 당연지사.

모임을 파하고, 계장님께서 “제가 다들 댁으로 모셔다 드릴게요” 말을 꺼내셨다.

집에서 도보 10분 거리에서 회식을 했으면, 그냥 집으로 왔으면 탈이 없었을 것을,

좋은 직원들과 만나서 너무 행복한 나머지, 나 역시 계장님 차에 올라타고야 말았다.


“실장님 먼저 모셔다 드리고, 시설주무관님 내려드리고, 주무관님은 우리 집으로 가는 길에 내려드려야 되는데 괜찮겠어요?”

이때라도 정신을 차리고 나의 방광을 살폈어야 했거늘, 술이 들어가 흥이 더 많아진 탓에 나는 그만

“술 깰 겸 드라이브하죠 뭐. 계장님 심심하시지 않게 제가 말동무해드릴게요.”

라고 어쭙잖은 선의까지 베풀고야 만다.


OO동까지 가는 차 안에서 한바탕 수다가 벌어졌다.

어, 그런데 출발한 지 5분이 지났을까, 방광이 뇌를 거쳐 신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대충 봐도 시골스러운 그 길 위에 화장실이 있을 리 만무했다.

가까운 지하철 역명을 검색했다.

아뿔싸, 개찰구 안쪽으로 들어가야 화장실이 있다.

오래 봐야 될 나의 동료에게 용기를 냈다.

”저기… 계장님.. 제가 화장실이 갑자기 급해서 그런데 화장실 있을 만한 곳 나오면 잠깐 세워주실 수 있을까요? “



아… 나의 흑역사다.

그러게 술 좀 적당히 마시지 그랬니 30분 전의 나야.

집에 그냥 가지 그랬니 10분 전의 나야.

그때 갔으면 지금쯤 집에서 편히 화장실에 앉아 있을 텐데 으이그…


과거의 나를 향해 온갖 원망이 쏟아졌다.

그런데 초행길에 야간 운행을 해서인지, 아무리 달려도 화장실이 있을 만한 곳이 보이지 않았다.

얼굴이 노랗다 못해 하얗게 질리기 시작했다.

순간 조금씩 싸서 말릴까,라는 미친 생각이 잠시 뇌리를 스쳤다.

그건 정말 미친 짓이라 배에 힘을 꽉 줬다.


순간 <OO전통시장>이라는 표지판이 눈에 들어왔다.

”계장님, 여기 시장이!!! “

다급하게 소리치고는 시장 입구에 정차한 차에서 내렸는데 시간이 늦어서인지 문 연 상가가 없다 ㅠㅠ

천리안과 순간이동능력을 가진 초능력자가 되었다.

불이 켜진 분식집이 보였다.

냅다 들어가 오디션 결승자를 발표하는 mc처럼 크게 소리쳤다.

”사장님 정말 죄송한데 화장실 좀 쓸 수 있을까요? “


사장님께서 가리키시는 손가락을 따라 문을 열고, 2층으로 올라가, 방광 안에 희석된 맥주와 소주를 모두 쏟아냈다.

나의 구원자이신 사장님을 다시 보는 순간, 안도의 한숨과 함께 식은땀이 주르륵 흘렀다.


다행히, 그때 일을 실장님과 시설주무관님은 전혀 기억하지 못하시는 거에 위안을 삼고.

계장님과 술 마실 때마다 그때 일을 떠올리며 웃는다.

웃었으니 됐다. 하마터면 회사 생활 못할 뻔했는데. ㅎㅎㅎ


그 일을 겪은 후, 나는 내가 자주 가는 동선에 있는 건물 주위의 화장실 비번을 메모해 두는 습관이 생겼다.

그 습관 덕분에, 아이는 나와 외출하는 걸 편안해한다.

화장실 말만 하면 엄마가 바로바로 화장실을 데려가서 문을 열어주기 때문이다.

그 순간 아이에게 나는 원더우먼이다.

휴, 엄마 덕분에 살았다. 라며 그때 내가 사장님에게 보였던 미소를 똑같이 보이는 나의 주니어.


선천적으로 작게 태어난 방광을 키울 수는 없는 노릇이니,

크기는 어쩔 수 없더라도, 아이가 나를 닮아 방광이 아파 병원 치료를 받거나,

신장이 아프지만 않아주면 더할 나위 없겠다.

그깟 화장실, 엄마가 백번이고 천 번이고 데려가 줄 테니, 아프지만 말아다오 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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