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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류 Feb 04. 2022

마야베 미유키의 세상으로 들어가다 <누군가>

변태가 아니어도 탐정이 될 수 있다



친구들과 함께 책을 읽고 있다.

대학에 있을 때는 커피를 마시다가도, 술을 한잔 하다가도

어느 순간 우리의 곁에는 문학이 있었다.

우리는 부족했지만 문학도들이었고, 연극인이었으며, 열정 넘치는 20대였다.

이제 각자의 길을 걸으면서 서로의 영역이 취향이 삶이 생겨고 굳어져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남아있는 "활자"라는 무엇인가가 아직 우리 곁에 있었다.

그래서 다시 만났다.








친구가 추천한 책은 야베 미유키의 <누군가>였다. 본 소설에 대해서 많은 감상을 가지고 있지 않은 상태였고, 무엇보다도 추리소설에 대한 나의 이해는 어릴 때 읽었던 셜록홈스와 뤼팽에서 멈춰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아주 심심한 문장들로 이루어진 도입 부분은 조금 따분했고, 마치 요람 속에 있는 아기와 같은 알 수 없는 불안감과 평온함이 느껴지는 초반은 기괴했다. 대체 무엇을 찾으려고 하는 것인가, 라는 추리소설에 대해 대단히 무례한 질문을 뿌리고 있을 때쯤. 사건은 터졌다. 급박하지 않은 사건 속에서 주인공은 발을 떼었다.


삶은 미지의 시공간을 거쳐 가는 것이라고 생각다. 인간은 태어난 시점부터 죽는 날까지 우리는 매 순간 새로운 시간과 사건을 만난다. 예상할 수 있는 일보다 예상할 수 없는 일이, 계획한 일보다 계획한 일이 어그러지는 일이 훨씬 많다. 수백, 수천 가지의 가능성 속에서 사람들은 살아가며 또한 그런 사람들이 수 억 명이 살아가고 있기에 우리는 함부로 아무것도 예측할 수가 없고, 기대할 수 없다. 지만 작가가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이러한 단순한 일상 속에서 들이닥치는 사건이 싸고 있는 비밀이었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가 주변의 상황에 대해서 조금 더 면밀한 관심을 가지고 파 들어간다면 누구나 탐정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필자는 이번 소설을 읽으면서 필자의 석사 졸업기가 떠올랐다.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주제를 쥐고 하나하나 사건을 파헤치고, 직접 방문하고, 이야기를 맞춰나가고, 하나의 형태를 완성하기 위해서 고민하고 우연이 닿기를 기대다. 그리고 그 우연이 만나 졌을 때 환희하면서 만난 그 결과에 좌절하기도 했다. 대단히 훌륭한 학자도 아니고, 이 분야에 대해서 명석하지도 않지만, 그냥 하나의 사건을 풀어나가듯 추리하면서 주변의 도움과 조언에 기대어 결국 “발로 뛰어서” 마무리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천재가 아니기에 겪었던 바로 그 발로 찍어 삶을 기록하는 순간을 이 등장인물도 하고 있었다.


탐정물이라고 하면 으레, 루팡이나 홈즈처럼 비상한 머리, 괴상한 성격, 그리고 뛰어난 추리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그들의 이야기는 판타지에 가깝다. 그 판타지를 얼마나 실제 땅바닥에 잘 딛게 하는지, 그래서 얼마나 개연성을 확보하는지가 추리소설 작가의 숙명과 같은 것이다. 하지만 이번 소설의 주인공 사부로는 그렇지 않았다. 사랑하는 아가씨가 재벌가 혼외자였고, 사랑했고, 사랑하고 있으며, 그 덕에 부유하게 살고 있는 대단히 평범한 애처가이다. 이 소설을 주도해나가는 탐정에게는 위험한 버릇도, 나쁜 습관도 없다. 그는 아내를 사랑하고 딸을 사랑하는 평범한 가장이다. 하지만 그는 책임감을 가지게 되었고, 상황을 밖에서 보기 시작했으며 안으로 들어가서 하나하나 뜯어 살피기 시작했다.


이야기가 대단히 화려 하다기보다는 담담했고, 이제는 대학을 갈 준비를 하고 있는 아이코 공주가 어릴 때의 모습이 담겨있었다. 동시대 상을 온전하고 따뜻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이 소설을 마침 발간할 당시에 읽었다면 또 다른 감상이 나왔을 것이다. 시간이 조금 흐른 뒤 읽게 된 내용 속에서 필자는 과거의 그 모습을 기억하고 그 정겹고 따뜻한 필치에 편안하게 소설에 몸을 맡겼다.


사실 사건 자체가 워낙 규모가 작고 등장인물 모두가 소시민이며 심지어는 마무리 부분이 좀 급하고 과장된 부분이 없지 않아 있는 작품이었다. 조금 더 젊어 학교에서 세기의 문단들을 가차 없이 깎아내리던 시기였더라면 나에게 이 소설은 그저 심심풀이로 읽는 재미 정도나 선사하는 소설로 보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의 나는 조금 더 문학지 상주 의자였고 오만방자했으니까. 소담한 삶을 쌓는 방법도, 그것을 문장으로 구현하는 방법도 무척 어렵다는 것을 그때는 알지 못하고 있었다. 소설의 마무리는 마치 데우스 엑스 마키나처럼 - 복선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 너무 과장되게 몰아쳐서 마무리된 느낌이 분명히 있다. 어쩌다가 일이 이렇게 되어버렸을까 하고 몰아닥치는 감상을 막을 길은 없다. 과연 이것이 이 정도의 사건이었나 싶기는 했다. 이 온건하고 따뜻한 스토리에는 조금 더 강하고, 미스터리한 기운이 많은 사건도 어울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대를 머금게 하는 소설이라는 것에는 분명 의심의 여지가 없다. 재미있는 소설이라는 점도 확실하다. 다음이 기대되는 주인공과 등장인물들, 이 작가의 여러 평으로 보건대 분명히 망가지고 스러질 이들의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갈지 무척 궁금했다. 그래서 아마도 곧 다음 책을 넘기게 될 것 같다는 확신도 들었다.








사실 일본 추리소설 작가라면 히가시노 게이고밖에 몰랐던 나에게 새로운 추천이었고, 단 몇 페이지 만에 팬이 되어버렸다. 다음 책을 또 읽고 싶어 지는, 오랜만에 책을 읽으면서 쉬었던 행복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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