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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하오천 Oct 28. 2016

꿈이 내 것이 되는 시간

어릴 적 꿈을 잃고 막막하게 살던 어느 남자의 이야기

가끔씩 초조하고 힘든데 대체 뭐가 문제인지 모를 때가 있다. M에게는 일상이 그렇다. 할 일은 많은데 뭐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고 정신이 아득해지는. 그럴 때마다 그는 괜히 손톱을 잘근잘근 물어뜯으며 초조해한다.


“이상하게, 갖고 싶은 것과 이미 갖고 있는 것은 항상 정반대더라.”




M은 한때 촉망받는 사진작가였다. MP4에 카메라가 달려 있던 중학생 시절에 그는 나이에 걸맞지 않게 수준 높은 사진을 찍어서 사람들을 놀라게 했었다. 교실에서 친구들이 다양한 포즈로 자는 모습들만 몰래 찍은 ‘자는 모습 퍼레이드’는 인터넷에서 인기를 얻으며 ‘사진 신동’이라고 불리기까지 했다. 


고2 때 자신의 DSLR을 갖고 나서는 사진에 대한 열망이 더욱 커졌다. 가입한 인터넷 커뮤니티만 해도 수십 개였고, 수업 시간에는 필기 대신 출사 계획을 짰다. 남는 용돈은 사진 잡지를 사는 데 다 썼고, 주말에는 공원에 나가 사진을 찍었다. 당시 열정적인 그의 모습에 나를 포함한 주변 사람들은 머지않은 미래에 저 잡지들 속에서, 혹은 서점의 사진 코너에서 그의 이름을 볼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미래는 아무도 알 수 없는 법. 그는 사진과는 아무 상관없는 여행사 직원이 됐다. 매일 하는 업무는 각기 다른 형식의 신청서를 작성하는 것이었고, 어쩌다 한 번씩 새벽에 일어나 영사관으로 가서 고객의 비자 면접을 돕기도 했다. 매번 다른 사람들을 다른 여행지로 보냈지만, 자신은 늘 같은 자리에 남겨졌다.



나는 졸업과 동시에 베이징에 왔기 때문에 고작 일 년에 몇 번 고향집에 내려갈 때나 그를 만났다. 동급생들에게 노랑머리를 유행시키고 반항기 가득한 얼굴로 한쪽 눈을 찡그리며 멋지게 셔터를 눌러대던 남학생이 이제는 세상에서 가장 평범한 남자가 돼 있었다. 사람들 사이에 섞여 있으면 찾아내기 힘들 정도로 평범한, ‘저기요’라고 부르면 바로 뒤를 돌아볼 것 같은 그런 남자 말이다.


사진에만 빠져 지낸 덕분에 고3 때 그의 성적은 바닥을 쳤다. 그때 난 그에게 이런 충고를 했었다. 어떤 일에 몰두함으로 현재 중요한 일을 등한시하게 된다면, 그 일은 잠시 그만둬야 하는 것이라고. 사진을 잠시 내려놓으라는 내 충고를 그는 결국 받아들이지 않았다. 뒤늦게 현실을 깨닫고 마지막 몇 달을 공부에 매달려 봤으나, 대학에 겨우 들어갈 성적표를 들고 부모님 앞에 무릎을 꿇어야 했다. 


대학이 중요한 이유는 대학 졸업장이 취업을 위한 주요 스펙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건 일종의 영향력 문제이다. 대학에서 어떤 사람들과 어울리느냐에 따라 내 그릇 사이즈가 정해진다. 3년간의 전문대 생활 내내 그와 함께한 것은 기숙사 방 안 코를 찌르는 담배 냄새와 밤새 끊이질 않는 키보드 소리였다. 대학 친구들의 취미는 마작, 야동, 쇼핑, 게임 정도였고, 그들에게 ‘꿈’ 같은 키워드는 과분한 고민거리였다. 인생은 그저 살아가다가 죽는 것뿐이고, 결혼해서 애 낳고 잘살면 그걸로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진으로 밥이나 먹고살 수 있을까? 인터넷 보면 나보다 잘 찍는 사람 천지던데.”

자기 자신을 믿지 못하고 스스로에게 비아냥거리던 그는 결국 평범한 길을 선택했다. 인간이란 현실과 타협하기 쉬운 존재이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생존은 보다 현실에 가깝게 서 있다. 일단 살아가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한 번은 그가 부부싸움을 했다며 청두에서 내가 있는 베이징까지 날아와 휴가를 보낸 적이 있다. 내게는 싸웠다고 말했지만 사실 화난 와이프를 피해 도망쳐 나온 게 분명했다. 퇴근 후 컴퓨터 앞에 붙어 있지 않으면 하릴없이 침대에서 뒹구는 그를 그의 와이프는 꼴 보기 싫어했다. 술을 반 병쯤 마신 그는 푸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인터넷이나 뒤적거리고, 드라마 보면서 시간 허비하고, 그러다 지겨우면 휴대폰 게임이나 하고…… 나라고 뭐 좋아서 그러는 줄 알아? 맨날 똑같은 신청서만 쓰고 앉아있는 내가 그냥 머저리 같아. 집에 와서 소파에 삐대고 있지 않으면, 뭐, 총 메고 전쟁터라도 나갈까? 저녁에 누구 좀 만나 볼까 싶어도, 누구에게 연락해야 할지 모르겠어.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거 나도 알아. 나도 한 번씩은 자기계발서나 명언집 같은 거 사서 본다고. 읽을 때는 막 의욕이 넘치는데, 자고 일어나면 또 말짱 도루묵이야. 몸보다 열정이 더 먼저 늙나 봐.”


나는 취미로 시작했다가 나중에 스튜디오도 오픈하고 전 세계를 다니며 사진을 찍는 친구, 어시스턴트로 경력을 쌓은 뒤 잡지사의 수석 포토그래퍼가 된 친구 등 화제를 사진으로 돌려보려 했다. 하지만 그의 반응은 그저 침묵뿐. 대화는 흐지부지 끝나곤 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즉각적인 결과만 바라 온 것 같다. 최선을 다했을 때 좋은 결과를 기대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변수가 존재한다. 당시의 환경과 심리 상태 등 내가 어쩔 수 없는 변수들. 장거리 달리기를 하다 보면 중간에 한 번은 위기가 온다. 이때 잠시 쉬었다가 다시 달리려고 하면 이미 페이스를 잃어 몸이 마음처럼 안 따라준다. 반면 속도가 느려져도 이를 악문 채 멈추지 않고 달리면 목적지에 도착하고, 그 후에도 다음 단계를 준비할 여유까지 생긴다. 


많은 사람이 종착점이 보이지 않는 길에서 초조해하다가 결국 그 길을 포기한다. 자신에 대한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속도도 다르고 처한 상황도 다르다. 때로는 상상보다 실천이 확실한 답을 주기도 한다. 갈림길에서 계속 고민하느니 일단 행동으로 옮겨보자. 미래에 대해 이런저런 의문이 들 때는 현재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는 거다.


50점의 그릇을 가진 사람은 50점만큼의 결과를 얻는다. 그런데 자꾸만 100점짜리 시험지를 들여다보고 있으니 괴로워 죽겠는 거다. 노력이 반드시 기대한 결과를 가져다주는 건 아니다.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잘 해내고 있는지부터 생각해 보자. 이 과정을 잘 마무리하면, 또 다른 미래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성공하는 사람들에게는 포기란 없다. 그들은 각 단계마다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안다. 그리고 그 결과가 크든 작든 겸허히 받아들인다.


이 책에 M의 이야기를 담기로 결정한 것은 며칠 전 그가 보낸 엽서 한 장 때문이다. 그가 직접 인쇄한 엽서의 사진 속에는 어떤 뚱뚱보가 책 위에 엎드린 채 잠들어 있다. 뒤룩뒤룩 살찐 볼에 눌려서 입술은 거의 숫자 8 모양이 됐다. 난 깔깔 웃으며 그를 향한 애정 섞인 욕설을 내뱉었다. 엽서 속의 그 뚱뚱보가 바로 나다.

사진의 반대 면에는 간단히 몇 자 적혀 있다. 손글씨가 꽤 보기 좋다.


누군가는 나서서 이런 흑역사를 기록으로 남겨줘야 하지 않겠냐.

나 회사 그만뒀다. 여행 떠나.


갖고 싶은 것과 이미 가진 것은 항상 정반대이다. 원하는 것은 아직 내 것이 아니고, 이미 가진 것은 이제 별것 아니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인생은 짧다. 허송세월을 보내기엔 시간이 너무 아깝다. 또한 인생은 길다. 꿈을 내 것으로 만들려면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흘러야만 한다.


‘M은 지금쯤 베트남 나짱 해변이겠지? 석양을 찍고 있으려나?’

그가 무슨 이유로 갑자기 생각을 바꿨는지는 모른다. 그런데 문득 학창 시절 사진첩을 펼쳐 그가 사진으로 남겨 놓은 유치한 추억들을 보다가 갑자기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나중에 이 사진들을 보게 될 또 다른 ‘피해자’들은 아마도 나와 같은 심정이겠지. 추억을 기록해 준 그에게 정말 고맙다. 그리고 나는 믿는다. 현재 그는 꿈을 향해 다시 활짝 피어나는 중이란 것을. 그리고 이제부터 그의 인생은 쉼 없이 힘차게 달리게 되리란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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