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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리펀트 Feb 13. 2022

첫 출근, 맨 땅에 헤딩

신규의 막막함

가장 기억에 남는 해는 2015년, 

교사로서의 첫 해이다.


임용에 합격하고 학생에서 교사로 변신하는 데 주어진 시간은 불과 한 달. 사실 정확히는 4주도 채 안 되는 기간이었다. 더더군다나, 내가 어느 학교에 발령 나는지, 몇 학년을 맡게 되는지 알게 된 건 첫 출근 4-5일 전이었다.


요즘은 신규발령이 2월 초~중순에 나는 것 같은데 그때만 해도 2월 말, 개학 직전에야 알려주어 몸과 마음이 준비되지 않은 채로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사실 대학 4년 동안 교사가 되기 위한 준비과정을 거친 것이나 다름없지만, 실제 현장에서 마주하는 각종 실무들과 어려움은 대학 때 배운 것의 반에 반에 반에 반에 반도 되지 않았다.


그냥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 그 자체였다.


2015년 2월 마지막 주 어느 날.

교육청에서 임명장을 수령했고, 나를 맞이하러 와주신 학교 선생님께서 예상치 못하게 꽃다발을 주셨으며, 그분들과 함께 학교로 갔다. 점점 가까워지는 학교를 바라볼 때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너무나 언덕배기에 있었고, 생각보다 굉장히 작은 학교였던 탓이다. 라떼만 해도 한 학년에 8반까지 있는 건 기본이고 한 반에 40명은 넘었는데 이곳은 3학급에, 20명대라니!


6학년을 맡게 되었다는 소식도 그날 처음 들었다. 그때만 해도 6학년이 선생님들이 기피하는 학년인지 잘 몰랐기에 다소 무덤덤하게 받아들였다.


우리 반 교실을 안내받고 먼지투성이의 텅 빈 교실을 마주했다. 춥고 공허하고 아무것도 없는 교실에서, 서랍을 열어보니 몇 가지 쓸만한 것들이 있었다. 아마 지난 선생님이 교실을 덜 치우고 가신 듯했다. 지금 같으면 학년이 바뀔 때 전임자가 교실을 제대로 안 치우고 떠나면 좀 속상할 텐데, 그때는 가뭄에 단비처럼 아무것도 없는 내게 도움 되는 것들을 추릴 수 있었다. 칠판에 붙일 학습문제와 날짜 자석 파일, 몇 개의 펜과 필기도구 등등..


하지만 역시나 갑자기 한 반을 운영하기에는 터무니없이 아무것도 없는 상태였고, 궁금증만이 가득했다. 압정으로 뒤판을 꾸미고 싶은데.. 압정은 어디서 구하지? 사비를 들이는 건가? 시정표는 어떻게 되지? 첫날은 몇 교시 수업이지? 1교시는 그냥 대뜸 시작하는 건가? 줄은 어떻게 세우지? 음악은 교과라는데 음악실은 대체 어디지? 종례 인사는 어떻게 하지? 모르는 것 투성이었다. 방학 중이었기에 출근하신 선생님이 많지는 않아서 물어보기도 마땅치 않았다. 그리고 정말 사소한 것들이란 생각이 들어 묻기에 민망하기도 했다. 그렇게 첫날은 내 교실이 어딘지 확인하고 맡게 될 아이들의 출석부를 확인하는 정도로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 이후 개학 전 틈틈이 학교를 나가 교사로서의 생활을 준비했다.


이제 막 대학교를 졸업한 20대의 나는, 부모님의 눈에는 마냥 어린애였나보다. 부모님은 딸의 첫 직장과 첫 출근이 기대되고 걱정되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극구 사양했음에도 개학 전 주말에 함께 학교로 와서 교실 청소를 도와주셨다. 사실 혼자서는 하기 힘든 양이기도 했다. 1년간 쌓인 구석구석의 먼지가 가득했었으니까. 부모님 덕에 깨끗한 6학년 교실로 아이들을 맞이할 수 있었다.


주변 동료 선생님들의 눈에도 역시 나는 도움이 필요한 어린 양같아 보였나보다. 작은 학교의 묘미가 여기서 드러났다. 큰 학교는 서로 얼굴도 잘 모르고, 건물이 여러 채라 다른 건물을 사용하는 선생님과는 마주치기도 힘든 게 실정인데, 그곳은 워낙 작고 가족적인 학교라 많은 분들이 날 챙겨주고 싶어했다. 특히 내가 4년만에 온 신규라고 했으니, 정말 어려보였을 것이다. 추운 교실에서 뭐라도 해보겠다고 혼자 컴퓨터 앞에 앉아있으면 선배 선생님들께서 히터를 왜 안 켜냐며 켜주시고, 이것저것 학급 운영에 도움 될만한 것들을 주셨다. 초보 교사를 위한 학급운영 멘토링 책, 각종 수업 자료와 파일, 라벨지와 문구류 등등 소소하지만 꼭 필요한 것들을 챙겨주신 것이다. (몇 년 후 나도 똑같이 후배가 왔을 때 넘겨줬다.) 


너무나도 막막하고 안갯속을 걷는 기분으로 학교 생활을 시작했었고, 아무것도 모른 채 맨땅에 헤딩하느라 고생했다고만 생각했는데, 사실 돌아보면 맨땅에 헤딩이 아니었다.


나는 주변의 소중한 응원과 축하, 도움과 격려로 교직 생활을 시작했다. 누구보다 같이 걱정하고 힘을 줬던 가족들, 각종 응원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던 친구들, 신규의 막막함을 이해하고 뭐든지 물어보라며 하나하나 가르쳐주고 도움을 주셨던 선배님들.


그때 받은 도움의 손길은 지금도 잊히지 않고, 신규의 막막함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내가 받은 도움을 그대로 후배들에게 베풀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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