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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솝 Sep 06. 2023

회식자리 술 문화에 관하여

회사에서 술을 안 마실 수 있는 방법

주량에 관하여, 우리나라 신입사원들이 항상 하는 말이 있다. 


"주량이 어떻게 돼요?"

"소주 한 병입니다."


아무리 술을 잘 마시는 사람도 자기 주량을 '소주 한 병'이라고 한다. 


거기에는 이유가 있다. 술을 잘 마신다고 하면 술을 좋아하는 상사들이 회식 때 술을 들이 부어버리니까. 또 술 좋아하는 상사들이랑 맨날 어울려야 하니까. 그래서 처음에는 주량이 많지 않다고 내빼는 것이다. 


내 신입 동기들은 나 포함 8명인데, 그 친구들과 처음 한 자리에 모였을 때 술을 서로 잘 마시냐고 물어보며 은근 떠봤던 기억이 있다. 거기엔 전부 술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자리하고 있는 게 느껴졌다. 


또 어제, 내 친한 동기가 해외 출장을 가면서 내게 두렵다고 했다. 두려움의 근원이 무엇이냐고 물으니, '술'이라고 했다. 해외 출장을 가면 거기 있는 주재원들은 할 게 없어 술만 마신다는 게 이미 소문이 다 났기 때문이다. 




나는 술을 전혀 마시지 않는다. 


나는 입사 처음부터 "내가 싫으면 날 쫓아내라"는 식으로 술을 안 마신다고 선포를 했다. 원래 나는 술을 마시지 않은 사람이었으니까 그렇게 했다. 담배를 안 필 자유가 있듯이, 술을 안 마실 자유도 있지 않은가? 


이상하게 사람들은 담배를 강요하지 않으면서, 술은 강요한다. 내 눈엔 그게 너무 너무 이상하게 보인다. 왜 콜라는 강요하지 않으면서 술은 강요할까? 내가 어떤 음식을 싫어한다고 안 먹는다는데, 다른 건 다 용납되는데 왜 술은 안 그럴까? 


이걸 바꿀 존재는 회사 내에 딱 두개의 존재밖에 없다. CEO, 그리고 HR이다. CEO가 술을 안 마시는 걸로 유명하다면 많은 신입사원들이 그 CEO를 바라보며 '나도 술을 마시지 않고 저렇게 될 수 있구나' 하는 꿈을 가지게 될 거다. 그리고 CEO와 회식을 하는 부장들도 술을 마시기 좀 애매할테니, 아랫사람들과 술을 마실 때에도 강요하지 않는 분위기가 형성이 될 거다. 그런데 우리나라 대기업의 CEO가 술을 안 마신다는 건 상식적으로 기대하기가 힘들다. 


그래서 나는 HR의 역할을 강조하고 싶다. 술로 발생하고 있는 악영향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를, 주기적으로 사람들에게 안내하는 것이다. 필요하다면 캠페인을 해도 좋다. 나는 군대에 있을 때 술 문화에 있어서 HR이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을 직접 목도한 적이 있다. 




군대는 술 문화가 엄청 심할 거라고 생각들 하는데, 실은 그렇지 않다. 


굉장히 폐쇄적인 조직이기 때문에 사건사고가 워낙 많이 일어나서, 그걸 방지하고자 군은 술에 대해 매우, 매우 매우 엄격하다. 실제로 내 부대에서는 부대 입구 전광판에 '119 운동'을 실시하자는 메시지를 띄워놨는데, '하나의 술로, 1차까지, 9시 전에 파하자는 의미'이다. 


군에서 이렇게 엄격하게 술을 검열하는 건 어떻게 보면 지휘관의 진급과 연관이 되어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술로 인해서 하급자에게 어떤 불미스러운 일이 생기면, 잘못하다 지휘관의 모가지가 날아가는 일도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하급자의 일을 책임져야 하는 지휘관의 입장에서 술을 경계하는 건 당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회사에서의 HR은 어떻게 해야할까? 맘 같아서는 저녁 회식 횟수에 따라, 술을 마시는 횟수에 따라 진급에 영향을 미치도록 하고 싶지만, 안타깝게도 이런 독재적 사고방식은 통용될 수 없다. 


좀 더 '다니고 싶은 회사'를 만들기 위해서는 술을 경계해야 하는 건 인사 담당자들이 한 번쯤은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임은 분명하다. 특히 신입사원들이 술로 골머리를 앓고 있고, 또 술 때문에 조직을 떠나가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고려하면 말이다. 




참고로 신입사원들에게 고하는 바, 술을 먹지 않을 거라면 애초에 완전히 거부를 하자. 단 한 방울도 마시지 말라. 심지어 아주 친한 사람들과 같이 있는 자리에서도 마시지 말라. 만약 어떤 순간에 한 방울이라도 마신다면, "왜 그땐 마셨는데 지금은 안 마시냐"고 하게 되고, 그 순간 그 사람의 스탠스는 완전히 무너지게 된다. 


"못 마신다"고 하지 말고, "안 마신다"고 해야 한다. 양심의 자유를 강조하며 단 한 방울도 마시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평생 남들이 주는 술을 거부하지 못하고 그렇게 살아야 한다. 술을 싫어한다면 나처럼 해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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