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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유경 Feb 23. 2024

한일 관계가 ‘아이 러브 유’처럼만 되길 바라며

올해 1월 23일부터 일본 TBS에서 방영 중인' Eye Love You (아이 러브 유,アイラブユー)'라는 TV드라마가 현지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합니다. 사고로 다른 사람과 눈이 마주치면 머릿속 생각을 읽을 수 있게 된 일본 여성이 연하의 한국인 유학생과 사랑에 빠지는 판타지 러브스토리입니다. 그래서 Eye Love You인 겁니다. 일본 민영방송의 골든타임에 한국인 배우가 주인공으로 발탁된 드라마를 내보내는 건 처음이라고 하네요. 이 드라마의 여자 주인공은 오키나와 출신으로 영화 ‘인간 실격’(2019)의 주인공을 맡았던 '니카이도 후미(二階堂ふみ)'입니다.


아무리 일본의 10대와 20대들에게 한국 문화가 인기를 끌고 있다고는 하지만, 이정도가 하는 생각이 들정도로 드라마에는 한국어만이 아니라 다양한 한국 요리, 한국문화, 한국어가 쓰인 굿즈 등이 엄청나게 등장합니다. 


여주인공 유리(侑里)는 배가 고프면 몹시 짜증이 나는 타입으로 그녀는 퇴근과 동시에 한국 음식을 배달 시켜 먹습니다. 한국 음식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는 태오는 늘 손님들에게 감사의 손편지를 음식과 함께 넣어놓는데 태오는 유리에게 맛있게 먹었다는 감사의 답장을 받고는 뛸듯이 기뻐합니다.  손님에게 답장을 받는 게 처음이었거든요. 이처럼 태오가 유리에게 음식을 배달하면서 만나고 친해지는 설정인 이 드라마에는 태오의 한국어로 혼잣말을 하는 장면이 나오기도 하고, 태오의 한글 메모, 그가 배달하는 비빔밥, 순두부, 일본인들은 먹지 않는 조기 등과 같은 한국 음식이 매회 등장합니다.





한국어도 종래의 '감사합니다', '사랑해요' 만이 아니라 '아이참', '누나', '파이팅', '--님', '혼밥', '밥 먹었어요' 등 일본에 소개된 적이 없던 한국말이 나오는가 싶더니 갑자기, 유리에게 '오다 주웠다'며 꽃을 건네는 장면에서는 그야말로 빵 터졌습니다. 그리고 ‘한국에선 남자가 여자에게 아이스크림을 먹자는 건 단 둘이 있고 싶다는 의미’라는 설명에는 ’그런가? 나만 모르나?’하는 생각도 했습니다만 나중에 물어보니 인스타용어라고 하는군요.



그 모든 걸 떠나 이 드라마의 특이한 방송 방식이 화제를 모으고 있는데, 바로 태오가 하는 한국어가 일본 본방송에서는 일절 자막처리가 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물론 재방송이나 다시 보기 스트리밍 서비스 등에는 자막처리가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한국어를 모르는 일본 시청자가 본방송 사수를 하려면, 굳이 태오가 하는 말을 알아들으려면 한국어를 할 줄 아는 사람과 같이 봐야 합니다. 실제로 일부 시청자 중에는 한국어가 가능한 지인들과 시청을 즐긴다는 댓글을 달고 있다고 합니다. 일종에 놀이가 된 거죠. 드라마에 나오는 소품들이 굿즈로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하느데 특히 태오가 전공하는 것으로 알려진 멸종동물 해달캐릭터가 인기를 끈다고 하네요.




그런데 TBS는 왜 이런 식으로 방송을 하는 걸까요? 그건 이 드라마의 여주인공이 타인의 마음을 읽는 능력의 소유자이기 때문입니다. 작은 초콜릿 벤처회사를 운영하는 여주인공 유리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덕에 사업은 번창하지만, 그 탓에 연애에 관한 생각을 접은 지 오래입니다. 그런 그녀 앞에 낯선 언어로 말하는 다정다감한 한국인 유학생 태오가 등장한 겁니다. 태오는 다니는 대학연구소에서 '스나오(素直, 솔직하다), '노텐키(能天気, 너무 해맑아 앞뒤 생각이 없다)'하다는 평을 들을 정도로 밝고 따뜻한 청년입니다. 거기에 요리도 너무 잘하고 마음 씀씀이도 배려심도 매우 좋은 호감형 청년입니다.


드라마를 보면서 일본 여성들이 원하는 「한국남자상」이 저런 거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지난겨울 일본인 아내와 어린 자녀 둘을 데리고 서울행 비행기를 탄 옆자리에 앉아있던 한국 남성이 떠올랐습니다. 비행기가 이륙하자 자리가 불편했는지 3살 된 아들은 울고 보채기 시작하였고, 주변 탑승객에게 연신 죄송하다고 하면서 아이에게는 싫은 표정하나 없이 동화책을 읽어주고 게임을 하는 등 자상하게 돌보던 젊은 아빠가 떠올랐습니다. 그런데 일본여성들이 한국남자가 다 이렇다고 생각하면 곤란한데 라는 생각도 살.....짝 해보았습니다. 일본여성에서 한국남성에게 끌리는 요인으로 추진력, 박력있는 모습, 배려심 등을 꼽더라고요. 주인공인 채종협씨는 최근 일본 여성들이 보고 싶어하는 한국남성의 이상적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다시 드라마 이야기로 돌아가보죠. 유리가 태오에게 끌리게 된 것은 그녀가 태오의 마음을 읽을 수 없어서였습니다. 그녀가 마음을 읽을 수 있는 건 일본어를 하는 사람에 한정된 것으로 한국어로 생각하는 태오의 마음을 그녀는 전혀 읽을 수가 없었던 거죠. 사랑하면 그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나에 대하여 어떤 마음인지 알고 싶은 법인데 알 수 없어서 사랑한다니 아이러니하죠? 하지만 내 마음을 상대방이 다 알아버리는 것도 좀 싫을 것 같기도 합니다. 내 머리속 생각이 다 나의 마음은 아니니 말이죠. 태오가 생각하고 말하는 것을 전혀 알아듣지 못해 답답해하는 여주인공 유리와 같은 경험을 하게 하려고 그런 설정을 한 거라는데. 한국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몰입도가 떨어지겠지만, 한국문화에 관심을 둔 사람들에게는 이 드라마를 통해 한국어를 더욱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할 것 같습니다.



이렇게만 한일관계가 흘러가면 좋겠다고 생각해 보기도 했습니다. 태오와 유리의 사랑처럼.... 편견 없는 마음으로, 못 알아들어도 무슨 말을 하려는지 열심히 들어보려고 노력하고, 상대방의 언어와 문화를 이해하려고 다가가다 보면 그 속에서 좋아하는 것들이, 사람이 생기고, 그러다 보면 그 나라에 관한 관심이 생기고, 호감도 생기고 그러면 자연스럽게 정치인들의 선동에 동요하지 않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 말이죠. 



그럼에도 저는 일본의 젊은이들이 일본이 저지른 과거사를 알기를 바랍니다. 경성 스캔들이든 뭐든 드라마를 통해서든 책을 통해서든 알기를 원합니다. 한국드라마, 한국영화, K-POP 등 한국 콘텐츠에 호감이 있다면 좀 더 한국에 일본이 저질렀던 과거도 직시하고 그러면서 향후 발전적인 한일관계를 어떻게 만들어낼지도 함께 생각해 보길 바라는 것이 저의 너무 욕심일까요? 그래야 다시 정치적 사안으로 한일관계가 악화돼도 흔들리지 않고 믿어주고 지속해서 서로에게 관심을 두지 않을까 하는 노파심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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