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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유경 Mar 22. 2024

다른 건 이상한 것? 아니 당첨이지

8살부터 12살까지 동화 속에나 나오는 아름다운 숲속에서 할머니와 둘이서 지냈습니다.

어느날 어린 여자아이가 할머니에게 말합니다.

 “학교 친구가 너는 이상한(変な, 헨나) 애라고 그랬어” 

그러자  여자아이를 보며 할머니는 “잘됐네. 그건. 칭찬이야” 그러면서 상자 속 모양이 다른 쿠키 하나를 발견해 꺼내 보입니다. 

아이는 “이건 실패작인데”? 라고 말합니다.  할머니는 “아니 이건 당첨(当たり)이지”. 

“이것만 형태가 다른데?”

“그러니 당첨이지. 가지고 태어난 걸 다른 사람에게 맡기거나 바꾸면 안 돼. 그건 네가 가지고 태어난 것에 충실하다는 의미니까.”


이건 일본의 유명한 각본가, 사카모토 유지의 작품으로 2018년, 일본의 국민 여동생 ‘히로세 스즈(広瀬すず)’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드라마 〈아노네(あのね)〉에 나오는 대사입니다. 알바로 생계를 유지하며 인터넷 카페를 전전하는 19살의 츠지사와 하리카는 그곳에서 알게 된 친구들에게 자기 이름을 ‘하즈레(外れ)’, 그러니까 ‘꽝’이라고 말합니다. 사람들은 그녀를 ‘하즈레’라고 부릅니다.



변할 ‘변(変) 자’를 쓰는 일본어 [헨(変)], [가왓데루(変わっている)]는 주로 ‘이상하다’라고 번역되지만, 좀 뉘앙스가 다릅니다. 〈이상하다〉의 사전적 의미는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다.’, ‘의심스럽다’, ‘색다르다’ 등의 의미인데 헨(変), 가왓데루(変わっている)는 한자 ‘変’처럼 ‘좀 다르다’의 의미에 가깝습니다.



앞의 대사는 하리카가 SNS로 알게 된 ‘카논’이라는 아이디를 가진 남자와 나눈 대화 내용입니다. 몸이 아파 바깥세상에 나갈 수 없는 ‘카논’에게 하루에 있었던 다양한 이야기를 SNS로 전해주는 ‘하리카’의 메시지는 늘 “아노네(あのね, 있잖아, 근데 말이야)”라고 시작합니다. '아노네'는 아주 친한 사람들에게 자기 이야기를 할 때, 말을 걸 때 사용하는 감동사(感動詞)입니다. 하리카는 '카논'에게 소중한 추억은 버팀목이 되고 부적이 되고 기댈 곳이 된다며 어린 시절 따뜻하고 이해심 많은 할머니와 살았던 숲속의 트리 하우스에서의 즐거운 날들을 이야기하지만 사실 하리카의 위의 기억은 아주 많이 왜곡된 겁니다.



숲속에는 학교도 공부도 없었습니다. 어른 말을 잘 듣는 남동생과 달리 어릴 적부터 질문도 많고 다루기 힘들었던 ‘하리카’를 그의 부모는 커다란 풍차가 있는 마을을 지나 숲속 깊은 곳에 있는 교육시설로 보내버립니다. ‘하리카’의 기억과 달리 8살부터 12살까지 지낸 그곳은 각종 학대가 자행됐던 시설로 지옥 같은 곳에서 같이 도망친 아이가 바로 ‘카논’이라는 아이디를 쓰는 아이였던 겁니다. 이후 아동학대가 발각되어 폐쇄된 이 시설은 하라카의 텅빈 마음처럼 지금은 쓰러기더미의 폐허가 되어버렸습니다. ‘하리카’의 기억은 ‘버팀목’이 되고 ‘부적’이 되고 ‘기댈 곳’이 되길 바라며 어른들에게 듣고 싶었던 말들이었던 겁니다.



포기하듯 모든 인간관계에서 고립된 삶을 살던 ‘하리카’에게 손을 내밀어 준 것은 ‘아노네(あのね)’라는 이름을 가진 여성이었습니다. 그녀의 남편은 위조지폐를 만들고 있었는데 남편이 죽자 위조지폐를 처분하기 위해 해변에 갖다놓았는데 우연히이 돈가방을 발견한 ‘아노네(あのね)’친구들이 이게 진짜 돈이라고 생각하여 훔치려고 하다가 ‘아노네(あのね)’을 만나게 된 겁니다. 병원에 입원중인 '카논'은 얼마남지 않은 생을 붙잡고 있는 아이로 이를 고치려면 막대한 수술비가 필요하다는 걸 알게된 '하리카'가 이 돈을 훔치려했던 겁니다. 그리고 이 돈을 탐낸  또 다른 사람들이  ‘아노네(あのね)’집에 있던 '하리카'를 유괴해 돈을 요구하고 하자 기꺼이  ‘아노네(あのね)’씨는 '하리카'를 위해 돈을 내고 그녀를 구출합니다. 알바를 해서라도  돈을 갚겠다고 하자  '하리카'를 ‘아노네(あのね)’씨는 자기 집에 살아도 된다는 제안을 합니다. 이상한 동거의 시작입니다.





‘아노네(あのね)’씨는 죽은 남편이 밖에서 데리고 들여온 아이를 정성껏 키웠지만, 그 딸은 자신이 생모가 아니라는 걸 알고 가출하였습니다. 딸을 10년이 넘게 찾아다니다가 우연히 가출한 딸을 찾았지만 이혼하여 혼자 아이를 키우고 있던 집 나간 딸은 바람 핀 남편에 대한 복수심으로 자신을 양육한 거라며 엄마에 대한 원망을 쏟아내며 절연을 선언합니다.


그녀의 남편이 위조지폐를 만들게 된 건 5살밖에 되지 않은 호기심많은 손자가 우연히 켠 라이타에 화재가 나고 그로 인해 옆집 아저씨가 죽었는데 그걸 우연히 알게된 남자가 그녀의 남편을 찾아와 위조지폐를 만들지 않으면 이 사실을 폭로하겠다고 해서 만든 겁니다. 이 방화사건의 진실은  아이도 딸도 ‘아노네(あのね)’씨는 알지 못합니다. 딸의 아들 또한 ‘하리카’와 마찬가지로 학교에서 이상한 질문 공세로 선생들을 곤란하게 하고 학급 아이들에게는 외계인 취급을 받는 아이였습니다.



수많은 상처로 얼룩진 ‘아노네(あのね)’는 과자 상자 속 다른 모양을 한 손자와 ‘하리카’를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받아들이며 가족이 됩니다. ‘아노네(あのね)’라는 말을 편하게 꺼내도 어색하지 않은 ‘아노네(あのね)’씨는 무슨 말이든 받아들일 것 같습니다. “아노사, 여기 내 집이야?. 언제든 돌아와도 돼?”라고 묻는 ‘하리카’에게 ‘아노네(あのね)’씨는 “그럼 여긴 네 집이야”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하리카’는 이제까지는 버려진 혼자였지만 지금부터는 내 의지로 새로운 만남을 꿈꾸며 혼자 살아보겠다고 합니다. 언제든 ‘아노네(あのね)’라고 말하면 답해주는 ‘아노네(あのね)’씨가 있어 이제 ‘하리카’의 홀로서기는 슬픈 이별이 아닌 새로운 만남을 기대하는 봄의 설렘입니다.




이 드라마를 보면서 우린 아이들에게 뭘 기대하고 있는지 되돌아보았습니다. 내 아이가 좀 특별했으면 합니다. 평범하게 그렇고 그런 대학을 나와 그렇고 그런 사람을 만나 그렇고 그런 직장을 다니다 일생을 끝내는 자본주의의 부분같은 삶을 사는 아이가 아니길 바랍니다. 


 어떤 아이돌은 잠도 안자고 춤과 노래연습을 했다고 한다, 어떤 파아니스트는,  어떤 발레리나는,  어떤 그 어떤 또 그 어떤 아이들의 이야기를  하면 특별했으면 합니다.  



그러면서도 남과 다른 생각을 하고 남과 다른 길을 가려는 아이는 싫습니다. 똑같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름 이름있는 대학을 나와 남들이 아는 직장에 다니길 바랍니다. 나의 아이가 실패한 아이가 되길 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 세잎 클로버 중에서 네입 클로버, 특이한 색으로 변이한 동물들은 희귀종으로 엄청난 사랑을 받습니다. 남들에게는 없는 희귀템은 무한정 가치가 올라갑니다. 하지만 우린 유독 모양이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인색합니다. 그걸 알기에 우린 아이들의 특별함에 눈을 감아버리며 과자 속 다른 모양을 실패작이라고 낙인을 찍는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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