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유학하던 1990년대, 일본의 오에루(オーエル, OL)의 명품사랑은 유별났습니다. 일본에서는 사무실 여직원을 오피스 레이디(Office Lady), 줄여서 OL이라고 하는데, 그녀들은 명품을 사기 위해 일년치 월급을 모으고 모아 파리, 뉴욕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런 현상이 지금 우리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은 비행기 타고 해외로 나가는 대신 홈쇼핑으로, 백화점으로, 아울렛으로 명품을 사러 달려가지만 말이죠. 일본에서는 〈명품〉이라고 하지 않고 고급 브랜드 물건이라는 의미로 〈고큐브란도힌(高級ブランド品)〉이라고 하는데, 거의 같은 의미라고 볼 수 있습니다.
2024년 세계글로벌 명품브랜드 온라인인기 순위와는 약간 다르기는 하지만, 매해 11월, 명품브랜드의 가치를 평가하여 발표하는 미국 인터브랜드(Inter Brand)에 의하면 작년도 1위를 차지하는 건 어김없이 1854년에 세워진 ‘루이뷔통(LOUIS VUITTON, ルイ・ヴィトン)’이라고 합니다.
‘루이뷔통’ 하면 떠오르는 별과 꽃을 형상화한 ‘모노그램’(モノグラム柄, モノグラム,monogram) 캔버스 라인은, 루이뷔통이 사망한 뒤 ‘루이뷔통’을 물려받은 아들 조르주-루이뷔통(Georges-Louis Vuitton)이 1896년에 내놓은 겁니다. 회사 로고를 도입한 최초의 사례로 꼽히는 이 문양은 독특하면서도 모방이 거의 불가능한 패턴으로 출시되자마자 큰 인기를 끌며 ‘루이뷔통’을 세계적인 브랜드로 올려놓은 데 큰 공을 세웠습니다.
일본인들 사이에 ‘루이뷔통’의 인기는 일본인에게 친숙한 문양이라는 것과도 무관하지는 않을 겁니다. L과 V자가 겹쳐진 문양 사이 사이에 길쭉한 4개의 꽃잎이 새겨진 사각형 문양, 동그란 4개의 꽃잎이 새겨진 원 문양, 4개의 각을 가진 별 문양으로 구성된 ‘모노그램(モノグラム柄, モノグラム, monogram)’ 캔버스 라인 중 「동그란 4개의 꽃잎이 새겨진 원 문양」은 일본의 ‘사츠마번 시마즈 가문(薩摩藩·島津家)’의 문장의 영향을 받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루이뷔통’에 일본문양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루이뷔통’이 활동하던 1860년대, 파리에서 가장 인기를 끈 건 일본의 미술 공예품이었습니다. 그 계기는 1867년 제5회 파리 만국박람회로 이 박람회에 도쿠가와 막부와 함께 사츠마번(薩摩藩)도 참가하였는데 일본의 전시물 속에 붙어있던 시마즈 가의 가문이 루이뷔통의 관계자들에게 발견된 것이 아니냐고 학자들은 보고 있습니다.
‘모노그램’ 캔버스 라인 이전의 ‘루이뷔통’의 히트 라인은 흐린 갈색과 짙은 갈색의 체크 무늬로 구성된 ‘다미에(ダミエ柄)’ 캔버스 라인입니다. ‘루이뷔통’은 고가의 여행용 트렁크를 만든 회사였는데, 이 가방의 유명세에 모조품이 판을 치자 1889년에 개최된 파리 박람회에서 빈톤사로부터 금상을 받은 ‘다미에’ 문양을 사용한 ‘다미에 캔버스 라인’이 출시된 겁니다.
바둑판처럼 서로 다른 색깔이 격자로 배치된 체크 문양 또한 일본의 기모노의 문양 중 하나인 ‘이치마츠 문양(市松模様)’의 영향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치마츠 문양(市松模様)’은 에도시대 「사노가와이치마츠(佐野川市松)」라는 가부키 배우가 이 문양의 옷을 즐겨 입자, 그를 좋아하는 여성 팬들이 이 문양의 기모노를 따라 입으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이치마츠 문양(市松模様)’은 일본을 대표하는 문양으로 2020년 도쿄올림픽의 엠블린으로도 사용되었습니다.
서구에서 일본미술 공예품이 주목을 받기 시작된 건 1862년 제2회 런던박람회부터입니다. 에도막부 이름 참석한 박람회의 일본관에는 일본의 전통병풍, 부채, 기모노, 가구, 칠기, 도자기 등이 전시되었는데, 윌리엄 모리스를 중심으로 미술 공예 운동이 한 창이던 영국에서 주목을 받게 된 거죠.
일본미술 공예품이 본격적으로 서구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878년에 개최된 「파리 만국박람회」로 이때 일본 취미, 자포니슴(Japonisme)이라는 말을 탄생시켰습니다. 이후 파리만이 아니라 런던, 빈 등 유럽의 도시들을 넘어 1900년경에는 미국으로까지 퍼집니다.
일본 가문의 문장에 영향을 받은 건 ‘루이뷔통’만이 아닙니다. 분리파 화가로 유명한 클림트(G. Klimt)의 작품, 키스, 아델레 블로흐-바우어의 초상Ⅰ, 유디트키스, 부채를 든 여인 등 일련의 작품에도 일본 가문의 문장, 기모노 문양 등이 사용됐습니다.
만국박람회를 계기로 일본 정원이나 분재, 판화, 도자기 등 다양한 일본 예술 공예품과 문화가 유럽에서 유행하고 고흐나 르누아르, 모네 등의 화가에게도 영향을 주었습니다. ‘루이뷔통’의 문양 속에 일본 가문의 문장이 들어간 것도 그 때문일 겁니다.
서구의 문화예술품 속에 일본의 문장이나 문양이 들어갔다는 건 그들의 눈에 일본의 미술 공예품에 신선한 뭔가가 있었다는 의미입니다. 1700년 도쿄의 인구는 세계에서 그 예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100만이 넘는 대도시였습니다. 그에 못지않게 오사카, 교토에도 상업과 서구문명 유입으로 성숙으로 대중문화가 발전하면서 세련된 소비문화가 발전했습니다. 1700년경의 겐록시대의 경제적 발전은 예술문화를 발전시키는 밑거름이 되면서 장인문화를 발전시키게 된 겁니다. 유행은 돌고 도는 것이니 한국의 상징물이 유명 브랜드의 로고 및 장식물로 들어갈 날도 기대해봅짓 하지 않을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