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라이
less is more’
로버트 브라우닝의 시, ‘안드레아 델 사르토(Andrea Del Sarto, 1855)’에 등장하는 이 구절은 ‘철과 유리’로 간결함의 아름다움을 추구한 건축가 미스 반 데 로에(Mies van der rohe,1886~1969) )의 건축 철학을 대변하는 말입니다. 형태는 목적이 아니라 결과라며 기능이 없는 불필요한 모든 장식을 거부한 미스의 절제된 미학은 바우하우스를 통해 전 세계로 퍼졌습니다.
사각형 평면을 여러 층으로 겹쳐 쌓아 올리고 전면 유리 벽으로 개방감을 극대화하면서 수직과 수평에 의한 기하학적 가변공간을 만들어내는 건축물은 1960년경부터 70년대 미술에서 재해석되며 모더니즘의 미술사조 중 하나인 미니멀리즘(minimalism)을 탄생시킵니다. 형태, 색채 등 장식과 기교를 최소화하고 사물의 고유한 성질(본질)을 드러내는 '덜어냄'의 미학으로 불리는 '미니멀리즘(Minimalism)이 디자인, 패션, 음악 분야까지 퍼지더니 이제는 삶의 양식을 대변하는 말이 됐습니다.
약 10년 전부터 트렌드가 된 미니멀리즘, 미니멀 라이프, 심플라이프, 최소주의는 정보 과잉, 관계 과잉 속에서 불필요한 것들을 제거하므로 삶의 여유를 되찾으려는 경향입니다. 터치만 하면 쏟아져나오는 수많은 정보로 생각할 힘조차 상실한 삶을 ‘단순하게 만들고 싶다’, ‘내가 사는 공간에서만큼은 완벽하게 자유를 즐기고 싶다’라는 욕구를 불러일으킨 것이지요.
좁은 공간에 가득한 물건들은 우리의 사유를 방해합니다. 나의 공간을 점유한 물건들과 공간을 공유한다는 것은 그만큼 나의 사적 공간이 사라진다는 의미와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비어있는 공간 사이에 사유의 틈이 생기고, 그 사유는 우리에게 자유스럽고 창의적인 시간을 허락해 줄지도 모르니까요.
물질이 풍부해져서 웬만한 건 다 손에 넣을 수 있음에도 일본에서는 주택, 자동차는 물론 사적 공간, 가구, 가전, 옷이나 가방, 침구류, 그리고 친구까지 소유하지 않고 대여하는 ‘렌탈마켓’이 급성장하고 있습니다. 이건 버블의 붕괴 이후 저성장도 한몫하고 있습니다. 공유경제라는 말은 미국에서 처음 등장하였으니 미니멀라이프의 시작은 일본이 아닌 미국에서 시작된 거겠죠.
1980년대에서90년대 급격한 고도성장을 마치고 맞이한 버블기, 고급 차, 고급시계, 교외의 그럴싸한 집을 소유하는 걸 많은 사람이 동경하고 꿈꿨습니다. 그런 것들은 결코 손이 닿지 않는 꿈이 아니라 조금만 노력하면 달성 가능한 욕망이었습니다.
하지만 버블경제의 붕괴 이후 경기침체로 인한 저성장으로 물건의 가치, 소유의 의미가 크게 변화합니다. 그 중 하나가 물건을 사지 않거나 빌리는 쪽으로 가치가 변화됐습니다. 거꾸로 이야기하면 구매할 만한 여력이 되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설상가상으로 2011년 쓰나미를 동반한 동일본대지진으로 일본인들은 한순간에 모든 것이 붕괴하는 공통의 체험을 경험하게 됩니다. 안락한 삶을 위해 건설한 최첨단 과학기술의 산물, 원전이 자연재해 앞에서 무너지면서 일본인의 삶을 한순간에 흔들어 놓은 겁니다. 이 재난을 많은 일본인이 인류와 문명에 대한 경고로 받아들이면서 종래의 안정지향형 생활방식에서 탈피해 ‘노매드 라이프(nomad life)’ 사회로의 전환이 촉진되는 계기가 됩니다. 그래서 단샤리적 삶에 대해 누군자는 지진이 바꾼 삶이라도 합니다.
단샤리(断捨離)적 삶이 본격적으로 더욱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이 시기부터입니다. 어쩌면 이대로는 안된다는 걸 동일본지진이 발생하기 전부터 사람들이 위기를 느끼기 시작했는지 모르죠. 불필요한 것을 끊어(断), 버리고(捨), 집착에서 벗어나(離) 가볍고 쾌적한 삶을 손에 넣는다는 의미의 ‘단샤리’는 요가 사상에 기인한 것으로 일본요가의 지도자, 오키마사히로(沖正弘)의 저서 『요가의 사고방식과 수련법(ヨガの考え方と修業法)』(1976)에 처음 등장합니다. 책에서 그는
断行(단행, 단교):새롭게 손에 넣을 필요한 없는 것을 끊어버린다.
捨行(사행, 샤교):오랫동안 집에 있는 불필요한 것을 버린다.
離行(이행, 리쿄):물건에 대한 집착심을 없앤다.
라고 설명합니다. 단행(断行), 사행(捨行), 이행(離行)은 요가의 수행 가르침으로 불필요한 물건(집착)을 자신의 공간에 들이지 말고 주변에 나누거나 버리면서 모든 집착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입니다.
옷장 가득 옷을 수납하고 있으면 내가 어떤 옷을 가지고 있는지 잘 몰라 사고 보니 집에 있던 옷이었다는 우스개소리를 들어보신적이 있을 겁니다. 냉장고 속 가득 한 식재료에서 유통기한이 만료된 식재료를 버리고 또 가득 채우며 죄책감에 시달리는 일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확실히 단샤리를 하면 필요없는 지출을 방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그 공복을 다른 소비로 채워겠지만 말이죠.
일본에서 이 개념이 유행하게 된 건 야마시타 히데코(やましたひでこ)의 저서 『단샤리』(2009)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부터입니다. 미니멀리스트처럼 ‘단샤리(断捨離)’적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이라는 의미로 ‘단샤리안’이라는 말까지 등장했을 정도였습니다.
다음해 정리 컨설턴트 곤도 마리에(近藤麻理恵)가 출간한 『인생이 두근거리는 정리마법(人生がときめく片づけの魔法)』(2010)까지 유행하며 ‘곤마리류(こんまり流) 정리’라는 말까지 탄생합니다. 단샤리는 그해 유행어 대상 후보에 올라갈 정도였습니다. 소유물을 줄여 인생의 여백의 공간을 늘리려는 ‘단샤리(断捨離)’적 삶의 태도는 많은 일본인의 삶의 가치를 소유가 아닌 가치를 중시하는 삶으로 변화시켰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런 움직임은 1990년대부터 유통업에서도조금씩 생기기 시작하였습니다. 상표 없는 좋은 물건을 모토로 하는 일본의 라이프 스타일 샵 '무인양품'가 서서히 부각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입니다. 이마트의 노브렌드가 이겔 벤치마킹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무인양품('무지루시료힌,無印良品)'이란 특정 ‘브랜드가 없다’, 장식이 없다의 무지루시(無印)하지만 료힌(良品) ‘품질이 좋은 제품이라는 의미로 지금은 그 규모가 어마어마해졌지만 처음에는 마치 사찰물건을 파는 가게같았습니다. 단샤리적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들이 자기 생각을 드러내는데 무인양품만한 게 없었을 거고 그 기세를 몰아 한국까지 진출한 겁니다.
비워내는 삶은 일본인에게는 새로운 가치관이 아닙니다. 일본 속담에 ‘おきて半畳, 寝て一畳(일어서면 다다미 반 장, 누우면 다다미 한 장)’라는 말이 있습니다. 살아서 돗자리 반 장, 죽어서 돗자리 한 장이면 충분하니, 필요 이상의 욕심을 부리지 말하는 말입니다. ‘나는 더는 물건이 필요하지 않아(ぼくたちに、もうモノは必要ない)’라며 ‘최소한으로 생각하자’, ‘최소한으로 살자’, ‘미니멀리즘 공간에서 살자’고 선언한 『최소한 주의(最小限主義)』의 저자, 누마하타 나오키는 (沼畑直樹)는 단샤리적 삶의 태도를 와카, 하이쿠, 히가시야마 문화 등 선(禪)의 세계관에서 파생된 것으로 보고 있는데 저도 상당 부분, 이 의견에 동의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미니멀적 가치관이 약 10년 전에 우리나라로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미니멀리즘적 삶이 유행하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미니멀라이프와는 좀 다른 형태로, 물질적으로 뭔가를 소유하는 욕망이 아닌, 어떤 것을 체험하고 느끼고 싶은 욕망에 집중하는 현상이 두드러진 것 같습니다. 고가의 물건을 구매하는 것이 아닌 해외여행, 레저, 고급레스토랑에서 고가의 식사를 즐기는 것에 가치를 두는 사람들이 늘었다는 겁니다. 이걸 누군가는 과시욕이라고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소유의 개념도 시대에 따라 변화합니다. 누군가는 많은 물질적인 것을 소유하고 하고 누군가는 좋아하는 것들 즐기는 체험 혹은 좋아하는 사람들과 공유하는 험을 소유하고자 하고 또 누군가는 많은 자격증을 소유하고자 합니다. 이처럼 시대에 따라 소유하고 싶은 대상이 바뀌는 것 같습니다. 분명한 것은 어떤 것이 유행하니까 따라해 보자는 것이 아닌, 내가 살고 싶어 하는 방향성을 먼저 생각하고 거기에 맞는 삶의 방식을 선택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누군가는 자신이 좋아하는 캐릭터가 가득한 방에서 기쁨을 느낄 것이고, 누군가는 비싼 비용으로 돈으로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시간을 체험한 경험이 더 좋을 수 있으니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