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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유경 Apr 12. 2024

벚꽃엔딩에 주먹밥을 동반하자

거리마다 공원마다 벚꽃이 만발입니다. 이상기온으로 벚꽃이 초고속으로 만발하면서 지난 주말부터 이번 주가 절정이라고 합니다. 꽃잎이 매우 얇아 바람에 쉬 떨어져, 길어봤자 일주일밖에 가지 않는 벚꽃을 아직 만나지 못했다면 어서 서둘러야 할 겁니다.


벚꽃 잎이 흩날리는 거리를 걷기에 어디가 좋을까요? 사는 곳이 서울과 가깝다면 여의도, 경복궁, 석촌호수 등이 좋다고 하는데 그 어디든 나가보시죠. 내년에 피는 벚꽃은 결코 올해의 벚꽃은 결코 아닐 테니까요. 나가려면 우선 도시락부터 챙겨야겠죠?




도시락에 뭘 넣을까요? 우리나라 분들은 아마도 김밥을 많이 싸실 겁니다. 김밥 외에도 다양한 것들을 도시락 속에 넣어 참으로 풍성하게 싸는데 일본의 도시락은 아주 조촐합니다. 도시락의 주인공은 바로 주먹밥입니다. 하얀 밥에 소금으로 양념하고 짭짤한 연어, 다시마, 명란 마요 등을 넣어 만든 이 주먹밥을 일본에서는 ‘오무스비(おむすび,結び)’, ‘오니기리(おにぎり, 鬼切り·握り)’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두 호칭의 차이는 뭘까요. 결론 일본인들도 ‘잘 모른다.’입니다. 그러면서도 다양한 설은 존재합니다.


‘주먹밥’ 하면 어떤 모양이 생각나세요. 양손으로 꾹꾹 눌러 만든 ‘주먹밥’? 먼 길 가는 사람이나 야외에서 밥을 먹어야 하는 사람을 위해, 소금과 참기름을 조금 넣은 밥을 단단히 뭉쳐 만든 이 주먹밥에 관한 우리나라의 문헌 기록은 남아있지 않은데, 너무 간단한 음식이라 굳이 기록에 남기지 않은 것이 아닐까요? 최근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김으로 싸인 주먹밥은 일본에서 온 것으로 원통 모양도 있지만, 삼각 모양이 대부분입니다.



‘오무스비(お結び)’, ‘오니기리(鬼切り·握り)’의 명칭을 형태, 지역, 용도에 따라 분류되기도 합니다. ‘오무스비(結び)’는 원통 모양(俵形) 혹은 공 모양, ‘오니기리(鬼切り·握り)’는 삼각형(三角形)으로 도쿄지역(관동지역)은 삼각형, 오사카지역(관서지방)은 원통 모양 또는 공 모양 등과 같이 분류되는데 이 또한 정확하지 않습니다. 거기에 일본에서도 편의점의 삼각김밥이 너무 대중화되어 명칭에 의미를 부여하진 않는듯합니다.



일본의 가장 오래된 역사서, ‘고사기’(712)에 '니기리이이(握飯'라는 말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오니기리’의 어원은 밥을 꼭 쥐는 동작에서 유래한 거로 봐야 할 것 같습니다. 학자들은 니기리이이(握飯)라는 말은 이후 니기리메시(握り飯)로, 그리고 여성어 오니기리(おにぎり)로 변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지금 일본의 주먹밥은 찹쌀밥을 손으로 타원형으로 만들어 귀족들이 아랫사람들에게 나눠줬던 헤이안 시대(794~1185년 무렵)의 돈지키(屯食)에서 유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후 ‘오니기리’는 전쟁터나 여행 등 집을 떠날 때 도시락용으로 만들어졌는데 ‘오니기리’에 김을 붙이기 시작한 건 겐로쿠 시대(1688~1704년)부터라고 합니다.



‘오니기리(鬼切り·握り)’는 지금은 한자 손 쥘(握) 써서 ‘오니기리’라고 하지만, 귀신 귀(鬼)자와 자를 절(切)자는 것을 써서 ‘오니기리(鬼切り)’라고도 합니다. 종교계에서는 ‘오니를 자른다(鬼を切る).’라는 한자적 의미를 살려 액운 퇴치의 의미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지금도 ‘오니기리’는 초상집에서 밤새는 사람들의 식사 대용으로 만들어지곤 하는데, 삼각형의 오니기리의 한쪽은 죽은 이를 위해, 또 한쪽은 조상을 위해, 나머지 한쪽은 남겨진 사람들을 위한 거라고 합니다. ‘오니기리’에 망자를 애도하고 남아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는 의미가 깃들여있다고 생각하니 괜스레 숙연해집니다.



한편 ‘오무스비(お結び)’ 또한 결(結)자의 의미를 살려 ‘사람과 사람과의 좋은 인연을 맺는다’, ‘좋은 인연(縁)을 만든다’는 의미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오무스비(お結び)’의 연결(結)과 생산(産)이 묘하게 연결돼 좋은 인연을 맺어준다고 생각하는 거죠. 좋은 인연을 맺고 싶은 사람들에게 ‘오무스비(お結び)’를 건네며 마음속으로 ‘난 너와 좋은 인연이 되고 싶어’라고 빌어보는 거죠. 미처 알아채지 못해 그저 벚꽃엔딩으로 끝나버려도 입안 가득 퍼지는 맛있는 주먹밥의 맛은 기억해 줄지도 모르죠.



‘오무스비(お結び)’를 ‘고사기’에 등장하는 만물이 낳은 농업의 신, ‘무스비의 신(정확하게는, 高御産巣日神: 타카미무스비의 카미)’으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무스비의 신(産巣日神)’은 이름에는 ‘낳은 산(産)’자가 들어있어 만물을 낳은 신으로 추앙받는 신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벼에 머물러 있다고 알려져 ‘농업의 신’으로도 받들여지고 있습니다. 일본신화 속에서 쌀은 아마테라스가 지상으로 내려오는 자신의 손자, 니니기노미고토에게 인간을 위해 들려보낸 것으로 쌀은 그야말로 신의 내려준 가장 고마운 음식입니다. 쌀을 신의 주신 선물로 인식하는 건 쌀을 주식으로 하는 동양에서는 거의 보편적 생각으로 우리 역시 제사나 차례를 지낼 때 쌀로 밥을 짓고 술을 빚어 상에 올리는 겁니다. .그러니 누군가와 연결시켜주는 무스비의 신이 농경의 신이기도 한다는 건 누군가 밥을 같이 먹어야 인연을 쌓을 수 있다, 그야말로 식구가 될 수 있다는 의미일 겁니다. 



 ‘오무스비(お結び)’라는 표현은 에도시대까지 문헌에 등장하지 않아 이러한 해석은 근대 이후에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하지만 주먹밥 하나로 마음을 전할 수 있다면 발렌타인 초콜릿만큼이나 설레는 음식이 되지 않을까요. 그러니 원하는 쪽으로 주먹밥의 이름을 불러보시면 좋을 듯합니다.


그런데 일본의 주먹밥은 거의 다 삼각형일까요? 신의 힘을 빌리기 위해 밥을 산 모양으로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일본의 신들은 하늘과 가장 맞닿은 산에 살고 있습니다. 일본인들은 산에 머무는 신들을 자신들의 마을, 신사 등으로 불러들이기 위해 신을 태우는 신차(山車,だし) 앞에 삼각형 모양의 장식을  달아놓는 창을 세우기도 하는데(山鉾) 여기서 삼각형은 산의 모형을 본뜬 신이 깃드는 모양인 셈입니다. 



그러니 신이 머무는 산 모양인 삼각형 김밥을 먹는다는 건 신의 영험함을 통해 건강과 복을 얻을 수 있다는 거지요. 대표적인 산신은 바로 벚나무로, 가득 피운 벚꽃을 보며 신이 주신 쌀로 만든 삼각김밥을 먹는다면 눈호강 몸호강.  그 순간만큼은 아무것도 부럽지 않을 겁니다.



삼각형이 신적인 의미가 있다면 원통 모양 주먹밥의 용도는 야외 도시락, 여행 도시락 등 도시락용일 겁니다. 지금도 역에서 파는 원통 모양의 주먹밥을 파는 것은 그 흔적입니다. 그런데 벚꽃놀이에 삼각형 주먹밥은 없을까요? 아니요. 드라마에서 보면 주로 삼각형 주먹밥을 먹는 장면도 많이 나오는데 이제 일본에서도 주먹밥의 모양의 의미가 중요하지 않게 된 것 같습니다. 


내년을 기약하며, 사랑하는 가족, 연인, 친구, 지인들과 삼각형, 원통 모양, 별 모양, 하트모양 등의 주먹밥을 먹으면서 아쉽지만, 이제 벚꽃엔딩을 고해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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