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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유경 Jul 03. 2024

일본은 원래 혼밥문화이야

한국의 MZ세대들은 일본의 어떤 면에 이끌리는 걸까요? 그건 이른바 MZ세대의 문화로 자리 잡은 ‘혼놀 문화’와 무관하지 않을 겁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혼자 밥을 먹으면 “같이 밥 먹을 친구가 없어서 혼자 밥을 먹나?”라는 따가운 시선을 받아야 하는 부끄러운 일로 여겨졌는데요. 혼밥(혼자 밥 먹기), 혼영(혼자 영화 보기), 혼여(혼자 여행 가기), 혼사(혼자 사진 찍기), 혼놀로그(혼자 노는 브이로그), 혼콘(혼자 콘서트) 등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즐기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예전부터 혼자 노는 문화는 존재했지만, MZ세대들은 이런 문화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며 즐기고 있습니다. 공시생이나 취준생 등 혼자 지내야 하는 사람들이 늘어난 현실적인 이유도 있겠지만, 수시로 울리는 스마트폰 알림 신호, 문자 등 쉴틈없이 타인과 연결된 상태가 지속되는 가운데 혼자 있는 시간이 그만큼 가치 있게 느껴진 것도 이유 중 하나입니다.



‘오타쿠 문화’, ‘혼놀 문화’하면 일본이니 MZ세대가 일본문화에 관심을 두는 건 자연스러운 일일 겁니다. 처음 일본 유학을 같을 때 공원에서 혼자 주먹밥을 먹고 캔 커피를 마시는 회사원들을 보고 적잖이 놀랐습니다만, 점심시간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하고 싶어서라는 이유도 있다고 합니다. 일본에서는 식당에서는 모르는 사람들과 합석하거나 카운터에서 혼밥, 혼술을 하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습니다.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에는 혼자 들어오는 손님에게 “혼자세요?”라고 묻는 장면이 없습니다. 옆에 앉은 사람과 아무 말을 나누지 않아도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저는 늘 혼자 밥을 먹는 ‘고독한 미식가’ 속 배우 마츠시게 유타카(松重豊) 씨를 보면서 가끔은 누군가에게 “맛있지?”하고 공감하며 먹고 싶지 않을까? 아무리 맛있어도 혼자 먹으면 식사가 아니라 그냥 공복을 채우는 것 같던데 ‘아줌마의 오지랖’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마츠시게 씨는 안 그러세요?”라고 물어보고 싶어지기도 합니다.



갈비탕, 순댓국, 냉면, 짜장면 등을 파는 우리나라 식당들은 식당의 규모가 커서 큰 테이블에서 혼밥을 하는 건 좀 부담스럽습니다. 이에 비하여 일본 음식을 취급하는 식당들은 작은 공간에 아담한 나무 장식 테이블과 의자, 테이블 몇 개. 딱딱하여 오래 앉아 있기조차 불편하지만 그래서 더 혼밥하기에 편안합니다. 거기에 덮밥, 돈가스, 우동 정식, 일본 라면 등은 반찬이 많이 나오지 않아 혼자 먹기에 전혀 부담스럽지 않기 때문일 겁니다.



MZ세대가 일본 음식을 선호하는 이유 중 하나는 우리나라 음식은 다양한 식자재가 들어가 1인분은 주문도 안 되는 요리가 많아 좀 부담스럽다는 것도 있을 겁니다. 전골, 불고기, 보쌈, 낙지볶음, 고기와 거기에 딸려 나오는 푸짐한 반찬들은 혼자 먹기에는 양이 좀 많죠. 때론 중국집에 혼자 혹은 두 사람이 가서 짜장면이나 짬뽕 등 단품 식사 외에 탕수육이나 군만두 등을 시키고 싶어도 너무 양이 많아 시키기가 부담스러워 그냥 단품 하나만 시키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왜 일본은 이런 식으로 음식이 나오는 걸까요? 중국도 커다란 접시에 많은 양의 음식이 나오고 그걸 각기 먹고 싶은 만큼 덜어 먹는데 말이죠. 그래서 일본에서 한국여행가이드팁으로 일본과 달리 한국의 식당은 2인분을 시켜야 하는 곳이 많으니 혼자 2인분을 다 먹을 수 없다면 꼭 누군가를 동반해서 가라는 설명이 들어 있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일본은 다릅니다. 일본요리는 거의 1인을 기준으로 하고 있어 부담스럽지 않습니다. 돈부리(덮밥), 돈가스, 카레 같은 단품만이 아니라 스키야키도 1인분으로 팝니다. 거기에 반찬이 거의 나오지 않아 좀 섭섭하기는 하지만 양에 대한 부담은 없습니다. 


한국의 일식집에서 코스로 시켜도 회든 튀김이든 생선이든 여러 사람이 함께 먹게 나오고 마지막 식사에서만 개별음식이 나오지만, 일본에서는 코스를 시키든 정식으로 시키든 1인분씩 나옵니다. 한 그릇에 담아 나올 때는 개수를 맞춰서 자기 분량을 알도록 합니다.



일식, 중식. 한식 할 거 없이 일본식당에선, 단품 요리가 아닌 밥과 메인 요리가 따로 나오는 돈가스, 우동 정식 등은 모두 일인용 오젠(お膳)이라고 하는 조그만 쟁반에 담아서 줍니다. 특히 중식당에는 세트메뉴가 많은데, 탕수육 정식에는 탕수육에 밥, 계란탕, 원하면 만두 세트까지 다 들어 있어 뭘 시킬지 고민할 필요가 없습니다. 마치 급식처럼 한 쟁반에 혼자 먹을 만한 양을 이것저것 담아내는 겁니다.




일본은 언제부터 1인용 식사에 익숙한 걸까요? 정확한 해답은 알 수 없지만, 600년경, 나라 시대부터 일본인은 1인용 식탁에서 식사하기 시작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30cm 정도 높이의 다리가 달린 1인용 식탁을 오젠(お膳)이라고 하는데, 헤이안 시대(平安時代)부터는 여럿이 식사를 할 때도 각기 1인용 식탁에서 각기 떨어져 앉아서 혼자 식사를 했습니다.



에도시대에는 오젠을 아예 상자 모양으로 만든 하코젠(箱膳)에서 식사를 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상자에는 서랍이 있어 개인용 그릇과 젓가락이 들어있는 거죠. 단, 서민들은 개인용 오젠이라도 다리가 달리지 않은 작은 쟁반 같은 곳에서 밥과 국, 반찬 3가지로 식사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오젠(お膳)에서의 식사 메뉴는 신분과 지위에 따라 식탁에 올라가는 것이 다릅니다. 이건 가족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버지는 특히 반찬이 달랐으니 가족이라도 평등하게 식사를 한 것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이건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이 근대화가 된 이후에는 큰 테이블에 함께 식사는 하지만 여럿이 식사를 할 때도 식당처럼 한 사람씩 밥과 국, 메인 반찬을 다 따로따로 차려줍니다. 그리고 식탁 가운데에 샐러드나 절임음식(츠게모노), 그리고 혹여 그날 메인 요리 외의 특별음식이 있다면 그건 가운데에 놓고 덜어 먹도록 한다는 거 정도가 달리진 풍경일 겁니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일본에서는 한국음식점이 유행합니다. 단품 요리 외에도 삼겹살, 부대찌개, 감자탕, 해물파전 등 여럿이 나눠 먹어야 하는 음식이 인기가 있다고 합니다. 도쿄에 점포를 낸 한국의 유명식당은 일본처럼 1인분부터가 아닌, 한국처럼 2인분부터를 고집하는데도 일본인들이 몰리는 걸 보면 사람은 늘 자기에게 없는 것이 부러운가 봅니다. 일본인들은 한국식당에서 주는 많은 반찬과 리필에 놀라움을 금치 못합니다.



혼자가 아닌 누군가와 식사를 하고 싶을 때, 어쩔 수 없이 2인을 시켜야 하는 한국식당에서의 식사가 따뜻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겁니다. 그래서 혼자지만 혼자가 아닌 ‘심야식당’에 일본사람들이 열광했나 봅니다. 누군가와 식사를 함께한다는 건 그 누군가를 자신의 세계로 받아들이는 일이기도 하니까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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