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다시피 일본어는 한국어와 어순이 거의 같습니다. 그래서 한국인들은 대개 일본어가 다른 나라 언어보다 배우기 쉽다고 생각하죠. 전혀 틀린 말은 아닙니다. 한자의 사용, 같은 어순으로 다른 나라보다 진입장벽이 낮은 것도 사실이죠. 거기에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각종 근대 언어들, 다시 말하면 조선시대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국회, 박물관, 예술, 야구, 철학 등과 같은 서구적 개념, 용어, 사물 등이 일본에서 번역되어 지금도 한국어로 쓰이고 있으니, 친숙하게 느껴지는 건 너무나 당연할 겁니다.
그런데도 일본어가 어렵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건 독특한 일본어 표현법 때문인데, 그중 하나가 수동형과 사역 수동형이 아닐까 합니다. 수동형은 문장의 주어가 특정한 행위를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당하는 상황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하는 표현법으로, 동작의 대상이 중요한 역할을 하거나 주체를 의도적으로 모호하게 하고자 할 때 많이 사용하죠. 우리나라에서도 어떤 행위를 당하는 사람의 입장이 강조되어야 하는 경우, 동사에 ‘-이다’, ‘-히다’, ‘-리다’와 같은 수동태 접미사를 붙여서 수동형을 표현합니다. 예를 들어, ‘야단맞다’, ‘태어나다’, ‘짓밟히다’, ‘비에 젖다’, ‘도둑맞다’, ‘책이 팔리다’, ‘잡아먹히다’, ‘문이 열리다’ 등으로 표현하는 거죠. 최근에는 괴롭힘이 사회문제로 대두하면서 ‘괴롭힘을 당하다’, ‘비웃음을 당하다’ 등이 많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영어도 수동형을 사용하지만, 타동사일 때에 한정하여 사용합니다. 그런데 일본어는 울다, 죽다 등과 같이 자동사인 경우에도 수동태가 사용됩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에서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행위자를 주체로 ‘선생님은 A에게 ○○을 가르치다’라고 하지만, 일본어인 경우는 ‘A는 선생님에게 ○○을 가르침 받았다/教えられる’라고 합니다. ‘선생님은 A를 부르다’를 ‘A는 선생님에게 불리어지다/呼ばれる’ 등으로 표현하는데, 이건 주어의 행위보다 그 행위를 받아들이는 쪽의 입장, 생각을 중심으로 표현하는 겁니다.
일본도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A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라고도 하지만, 일본드라마나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오야니 시나렛타(親に死なれる)’라는 표현이 자주 나옵니다. 굳이, 직역하자면 ‘부모님이 돌아가심을 당했다’ 뭐 그런 의미가 됩니다. 이런 표현은 본인도 타인도 쓸 수 있는데, ‘부모님을 일찍 여위어 (마음, 경제적 등) 어려움 속에서 자라야 했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일본어의 수동형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건 이우(言う, 말하다)의 수동형, ‘이와레루(言われる)’입니다. 쉽게 말하면 ‘한국인들은 다혈질적이라고 이와레루(言われる)’. 혹은 ‘요즘 일본의 젊은이들은 한국 음식에 관심이 있다고 이와레루(言われる)’ 등과 같은 표현입니다. 일반론을 내세워 자기 생각을 드러내는 화법입니다. 내 생각은 아니지만, 사람들이 그렇게 말한다는 겁니다. ‘이와레루(言われる)’만큼 많이 사용하는 것이 게 ‘생각하다’라는 의미의, ‘오모우(思う)의 수동형 ’오모와레루(思われる)‘입니다. 이건 그나마 자기 생각이 어느 정도 들어있는 것으로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는 거죠. 이런 식의 애매한 표현들은 일반론 속에서 자신의 책임, 혹은 생각을 숨기면서 보편성을 확보하려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일본어의 수동형
보다 더욱 곤욕스러운 것은 사역 수동형입니다. 사역형은 A가 B에게 ‘물을 가져오라’든지 ‘술을 마시라’고 한다든지 자신에게 뭔가를 시키는 거죠. 그런데 사역에 수동형이 붙여 사용하기도 합니다. 이거야말로 일본어의 독특한 표현으로 수신의 형태로 말하는 사람의 감정을 표현하는 겁니다. 난 하기 싫었는데 누군가가 억지로 시켜서 어쩔 수 없이 했다는 거죠. 그럴 때면 우리는 ‘억지로’라는 단어를 넣어서 자신은 원하지 않았다는 감정을 표현하지만, 일본어인 경우는 ‘시켜서(어쩔 수 없이) 당했다’고 표현합니다.
그런데 이 표현이 더욱 어렵게 느껴지는 건 때로는 겸손과 감사의 표현으로 사용된다는 겁니다. 왜냐면 일본어의 사역 표현에는 ‘허가해준다’라는 의미로도 사용되기 때문이죠. ‘어머니가 내가 좋아하는 것을 시켜 주었다’, 즉 ‘내가 원하는 걸 하도록 어머니가 허락하고 그걸 하게 했다’는 의미입니다.
‘사피어-워프 이론’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언어는 우리의 행동과 사고방식을 결정하고 주도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 나라 사람들의 세상을 이해하는 사유 방식은 언어의 문법적 체계와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영상물 속 일본인들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운명을 순순히 받아들이고 대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은 선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묻고 싶습니다. 어쩔 수 없이, 시켜서가 아니라 당신의 행동에 당신의 생각은 과연 몇 %나 들어 있냐고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