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험생 가족을 두지 않은 집들도 뭔가 어수선한 기분이 느껴지게 하는 수능일입니다. 오늘은 군사훈련도 중단되고 수험생들의 교통 편의를 위해 출근 시간을 늦추는 것도 모자라 주식 시장 개장도 한 시간 늦춰지는 그야말로 시험 하나로 대한민국이 ‘셧다운’되는 날입니다.
이처럼 나라 전체를 멈춰 세우는 한국의 수능을 외신들이 주목하는 건, 이런 신기한 방식의 대학선발 방식이 다른 나라에는 없기 때문이죠.
‘학업성취도 위주 문화’를 가진 우리만큼은 아니어도 꽤 아이들 교육과 입시에 민감하다는 일본의 입시제도는 어찌 보면 단순하고 어찌 보면 복잡합니다.
우리나라에도 경쟁이 치열한 유치원, 초등학교는 있지만 그래도 중학교는 평준화죠. 하지만 일본은 중학교부터는 시험(中学入試)이 있으니 이때부터 서열화가 시작되는 겁니다.
하지만 우리와 달리 명문 중학교나 고등학교는 사립학교보다 공립학교가 더 많습니다. 그러니 공부 잘하는데 돈이 없어 특목고를 못 가는 그런 기현상은 일어나지 않는 거죠. 중학교와 고등학교 입시를 거치면 대학은 어느 정도 범위가 좁혀집니다. 그런 의미에서 명문고에서 추천으로 대학에 입학하는 입시제도가 생긴 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유명 학원가가 있는 지역의 집값이 올라간다는 건 우리 사회만이 가진 진풍경일 겁니다. 일본에서는하지만 일반적으로 사교육 시장은 그다지 발달하지 않았습니다. 사교육시장이라는 말이 없어 가끔 한국의 입시열풍이 소개되기도 합니다. 기껏해야 영어나 수학 학원 정도이고 그나마도 다니는 학생이 그렇게 많은 것도 아닙니다. 거꾸로 어릴 때에는 구몬학습 같은 학습지는 거의 모든 아이가 하는 것 같습니다. 일본에서는 동경대가 있는 문경구가 좀 그런 경향이 있지만, 이건 입시학원이 몰려있어서가 아니라 사회적 지위가 있는 사람들이 거주하는 곳으로 외부인들이 쉽사리 들어가기 어렵다는 인식 때문입니다.
제가 일본교육에서 가장 부러운 것 중의 하나는 지방의 국공립대학이 여전히 도쿄의 명문 사립보다 명문으로 인식된다는 겁니다. 메이지유신 이후 건립된 교토(京都)·도호쿠(東北)·규슈(九州)·홋카이도(北海道)·오사카(大阪)·나고야(名古屋) 등 7대 제국대학은 도쿄의 명문 사립보다 높은 평가를 받는 곳이 대부분입니다. 그만큼 국공립대학 입시는 사립대학보다 입시 과목도 많고 어렵습니다.
실제로 일본의 과학 부문 노벨상 수상자 78명의 출신학교는 교토대 21명, 도쿄대 14명, 나고야대학 12명, 홋카이도대학 3명, 도쿄공업대 3명, 도쿠시마대학 3명 오사카대학 2명, 오사카공립대학 1명 등 전원이 다 국공립대학입니다.
이건 그만큼 국가라는 게 권위가 있다는 의미입니다. 일본 지방자치제의 역사가 길고, 나라가 운영하는 학교라는 것 자체가 이미 권위를 부여받은 학교라는 거죠. 그래서 지방의 국립대학을 졸업한 학생들은 그 지역에 취직하는 경우가 많은데, 지방 도시에 본사를 둔 회사들도 많습니다. 우리나라도 서울로만 몰리지 않고 예전처럼 지방의 국립대학 평가가 좋아져 더 많은 학생이 자신이 사는 지역에서 다양한 공부를 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어쨌든 수험생 여러분, 고생 많았습니다. 최근 유명을 달리한 고(故) 송재림씨는 2018년 수험생들에게 ‘시험지보다 많은 질문과 답이 있지만, 오답도 없는 사회에 나온 걸 축하한다’, ‘당신이 정답이니까요’라는 해시태그를 덧붙였습니다. 제발 인생을 정의하는 시험이 아니길 바라며, 당신들이 쓴 것들이 모두 정답이었기를 바라봅니다. 이제 시작입니다. 첫 발음을 크게 내딧지 않아도 됩니다. 살다보니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