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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아월 Nov 25. 2022

모티프원

실컷 책이나 읽다가 잠들려던 로망 대신 더 좋은 것을 얻어가게 된 곳

나의 성격을 표현하자면 선택적인 경주마라고 하고 싶다. 하고 싶거나, 해야 한다 생각하거나, 하면 좋을 것 같은 게 생긴다면 그 즉시 해치워야 하는 성격이다. 나쁘게 말하면 성급하고 서두르는 성격이다. 그래서 그런지 내게 대게 업무적으로 주어지는 일은 속도감 있고 책임감 있게 끝내야 하는 일들이 많이 떨어진다.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면 나는 그 즉시 실행한다. 이는 사실 기억력이 나빠서가 크다... 당장 생각날 때 하지 않으면 몇 분 지나지도 않아 까먹기 때문이다. 그래서 운전할 때 해야 하는 것들이 머리에서 맴도면 빨리 노트에 적지 못해 안달이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그날도 그랬다. 우연히 홀연히 떠날 휴가 계획을 세우던 중 이번 년이 다 지나가기 전 책을 실컷 읽는 하루를 만끽하리라 다짐했다. 이것저것 찾아보다 발견한 곳이 있다. 파주 헤이리 마을에 위치한 모티프원이라는 북 스테이. 북 스테이라는 개념이 있는 줄도 처음 알았지만, 파주에 있는 모티프원에 대한 설명을 읽자마자 '여긴 가야 해'라고 생각했다. 당연히 바로 예약을 했다. (히이잉)


혼자 가도 상관이 없었지만 어쩌다 보니 우연히 아주 아끼는 친한 언니와 동반하게 되었다. 각자 자기 일에 열중하고 목표의식이 강한 성격이라 나만의 시간에 큰 영향을 받을 것 같지 않았다. 실제로도 방해하면 내가 했겠다 싶다... 동반을 통해 더 귀중한 휴식이었다.


11월 24일 오후에 도착하여 하루가 고단했는지 나는 책을 읽긴커녕 귀중한 오후 시간을 낮잠 자는데 홀라당 소비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낭비했다. 그래도 그 덕인지 저녁 10시에 예정되어 있던 카타르 월드컵 대한민국 출전 첫 경기는 또렷한 정신으로 관람했다. 그렇다, 그 새벽까지도 나는 완독을 한 책 한 권이 없었다. (자랑이다)


어찌어찌 조금이라도 책을 읽어보려 했지만 활자가 눈에 아른거리더니 불을 꺼야만 한 상황이 와 그냥 잠을 청했다. 그렇게 나는 아침까지도 완독을 한 책 한 권 없이 북 스테이의 퇴실시간을 거의 마주 했다. 아침에 일어나 서둘러 준비를 마치고 책을 좀 읽다 물을 마시러 내려갔다. 헤이리 마을의 촌장님이시자 모티프원의 주인이신 이안수 작가님과 담소를 나눌 기회가 생겼다. 내가 위층에서 일어나 준비할 시간 동안 먼저 운을 띄워 말을 트고 바통 터치를 해준 언니 덕에 말꼬가 터 작가님이 손수 내려주신 커피를 마시며 대화를 나눴다.


작가님의 희고 긴 수염만큼 그의 단어 선택 하나 하나와 온화하신 목소리에 품위와 깊이가 느껴졌다. 나는 지난 몇 달간 마음속 꾹꾹 눌러 담은 내면의 답을 찾지 못한 질문들을 꺼내어 보았다.



나에 대한 배경을 잠시 이야기하자면,


어릴 때부터 지속 가능하고 평화롭고 공정한 세상을 추구했다. 내가 더 갖은것에 대해 으스대거나 내가 덜 갖은것에 대한 불평을 하는 것이 싫었다. 국제학교를 다녔지만 부유한 아이들 사이에 사교육을 받고 돌아오는 하굣길엔 건축물을 짓는 외국인 노동자분들의 임시 거처를 지나쳐야 했다. 같은 시대, 같은 나라, 그리고 나이마저 비슷해 보이는 그들과 나의 삶이 다른 것을 보며 많은 생각을 했다.


어찌어찌 결국 지금 내가 추구하는 길은 기후위기를 위해 최전선에서 최선을 다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아주 감사하게도 나는 현재 그런 열정과 비전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에 둘러 싸여 일을 하고 있다. 그렇지만 때론 선택적인 경주마인 나도 숨이 가빠올 때가 있다. 비록 1년 채 되지 않은 실무경험이지만, 어릴 때부터 그려온 이상적인 세상과 내가 두는 가치를 쫒는 일에 회의감과 허망함이 살짝 찾아오고 있었다.


기후위기를 위해 파리협정 (제21차 유엔 기후변화 협약에서 채택된 산업화 이전 수준 대비 지구 평균온도가 2℃ 이상 상승하지 않도록 온실가스 배출량을 단계적으로 감축하는 협정)을 지켜 나아가야 하고, 이를 위해 단계적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 탄소 배출을 감축해야 하고, 이를 위해.... 하여튼 꼬리의 꼬리를 물어 큰 그림에 아우르기까지 아직 우리는 넘어야 하는 장애물들이 많아, 세부적인 것부터 시작하여 그의 영향을 끼치기까지의 일들을 현재 하고 있다.


귀중한 기회를 통해 나는 금년도 11월 초중에 열린 제27회 유엔 기후변화 협약 당사국총회 (COP27)를 직접 참석할 수 있었다. 이를 가기 전엔 나와 같은 열정과 희망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구체적이고 다양한 논의를 할 수 있을 거란 설렘이 있었다. 기대와 비례하게 실제로 많은 사람들을 만나 배움을 얻을 수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이렇게나 많은 지적이고 권위가 있는 사람들이 모여서 각기 다른 노력을 해오고 있지만, 한 발짝 나아가면 얼마 지나지 않아 두 발짝 물러나는 범세계적인 현황이 나를 조금은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서론이 너무 길고 나에 대한 TMI가 다분하지만, 이를 설명해야 나의 고민들의 흐름에 이해를 조금이나 도움이 될까 싶어 주저리주저리 남긴다. 이것도 나름 짧게 설명하려 한 것...


그래서!!! 작가님께 자문을 구해본 고민은 다음과 같다.


꿈과 열정으로 환경과 기후위기를 위해 열심히 일을 하고 있지만, 숲을 헤쳐나갈수록 마주하는 벽이 더 많습니다. 이럴 때마다 제 스스로가 낙담하게 됩니다. 이럴 땐 어떤 마음 가짐을 가져야 하는지 여쭙고 싶습니다.


작가님은 조금의 머뭇거림도 없이 운을 띄우셨다.


모든 혁명은 어려움이 가득한 장벽을 마주한다. 이는 혁명을 위해 넘을 벽이다. 그 벽을 허물다 보면 비로소 변화가 찾아오는 것이다. 이러한 벽은 두 가지가 존재한다.


욕망의 벽

인간은 편리와 편안함에 익숙해지고 속기 십상이다. 현시대는 모든 걸 빠르고 편리하고 쉬운 것들을 추구하게 조장한다. 사용하기 쉬운 일회용 플라스틱, 쉽게 먹고 해치울 수 있는 음식, 오랜 정성으로 키워야 하는 작물보다는 도축하여 섭취하기 쉬운 육류를 소비한다던지. 세상엔 너무 우리의 욕망을 자극하는 것들이 많다.


변화와 혁명을 위해서는 본인 스스로의 욕구를 이길 줄 알아야 한다. 자기 스스로가 마주하는 담을 넘을 담대함이 필요하다. 무수한 공부를 통해 진실을 통찰할 수 있는 시각이 생긴다면, 우리는 비로소 그를 통해 더 옳은 결정을 해야 한다. 우리의 욕구를 절제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동물은 우리처럼 살아 숨 쉬는 생명이기에 우리가 그를 아무 문제의식 없이 욕구와 욕망에 눈이 멀어 나를 위해 희생된 것에 대한 경각심이 없으면 안 된다. 우리를 위해 희생된 것들에 대한 경량의 미덕을 갖아, 우리의 욕망을 절제하여 희생을 해야 한다. 그래야 지만 비로소 우리는 배려로 생명이 공존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균열을 통해 무너지는 벽

불편함을 감수하는 것에 대한 반발들이 있다. 이는 현재 더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기에 변화로 인한 더 많은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는 자의 반발이 더 큰 법이다. 혁명을 위해선 수많은 사회적인 벽을 부딪치는 것이다.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장벽들 말이다. 요컨대 관료적인 체계라는 벽은 끊임없는 현안과 진실을 깨우치는 두드림을 통해 무너뜨려야 한다. 이는 단번에 해결 가능한 것은 아니기에 더더욱 지속성을 요한다. 이런 작은 두드림들이 모여 균열을 만들고, 균열이 틈을 낸다.


댐은 한 번에 무너지지 않는다. 작은 균열들이 모여 어느 순간 하나의 tipping point로 인해 무너지는 것이다. 나의 지금의 노력이 어떤 두드림 일지, 나의 작은 날갯짓이 어떤 나비 효과를 만들지 기대하며 노력을 지속해야 한다는 것이다. 변화는 물과도 같다. 99.9도까지의 기점에서도 끓지 않는다. 다만 그 작은 0.1도의 더함으로 인해 100도를 넘는 순간 끓는 것이다. 그러므로 균열을 위한 노력은 지속되어야 한다. 모든 성장과 변화는 계단식이다.

우리는 너무나도 철저하게 현재의 생활을 신봉하고 살면서 변화의 가능성을 부인하고 있다. “이 길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어.” 하고 우리는 말한다. 그러나 원의 중심에서 몇 개라도 다른 반경을 가진 원들을 그릴 수 있듯이 길은 얼마든지 있다. 생각해보면 모든 변화는 기적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 기적은 시시각각으로 일어나고 있다.  - <월든> 중에서

맞습니다. 관료의 벽을 허물어 변화를 이끌기 위해선 그러한 노력이 필요하겠습니다. 다만 제가 훗날 권위나 영향력이 커진 위치에 도달하였다면 저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까요? 그때는 저만의 고집이 생길까 우려되는데 그땐 어떤 자세로 변화를 맞이해야 할지 여쭙고 싶습니다.

시대라는 것은 늘 변하게 되어 있고 변화가 찾아온 시대는 그 시대를 맞이하는 세대의 것이다.  그 시대에 맞는 세대가 이끌어 갈 수 있도록 그들이 내뱉는 창조적이고 창의적인 생각을 귀기우려 들을 수 있는 기성세대가 되어야 한다. 열린 마음으로 그들이 새로운 자리매김을 할 때 박수를 쳐주며 자리를 내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오늘 모든 사람들이 진리라고 받아들이고 묵과한 것이 내일에는 거짓으로 판명될지도 모른다. 들에 단비를 내려줄 구름으로 믿었던 것이 한갓 견해見解라는 이름의 연기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드러날지 모른다. 노인네들이 불가능하다고 한 일도 여러분은 시도해서 이루어내고 있지 않은가? 옛사람들에게는 옛 행위가 있고 새 사람들에게는 새 행위가 있다. 옛사람들은 새로운 연료로 불을 지피는 방법을 몰랐지만, 새 시대의 사람들은 솥 밑에 마른나무 몇 쪽을 태워서 새처럼 빠르게, 그야말로 노인네들을 치어 죽일 만큼 빠른 속도로 지구를 도는 것이다. - <월든> 중에서

제 다양한 고민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매일이 혼란스러운 마음이었는데 이제야 조금 소용돌이가 잦아든 듯합니다. 언제쯤 이 마음속에 소란스러움은 멈출지 궁금합니다.

혼란이라는 것은 좋은 것이다. 인간은 혼란을 통해 고찰을 하고 끊임없는 고찰이 비로소 변화를 만드는 것이다. 편안한 상태는 그만큼 힘든 것이 없다는 것이다. 가치를 만드는 변화는 늘 불편하고 어려운 것이다.


출구는 앞에 보이지 않은 어두움만 있을 때 비로소 나타난다. 모든 게 다 끝났다고 생각할 때 설루션이 보인다. 새벽은 가장 어두운 시점에 동이 틈으로 찾아오는 것이다.


.


이곳을 오기 전 나는, 지금까지 늘 열정이 있던 것들에 미지근해지고 있던 과정이었다. 내 안에 타닥타닥 따듯하게 온기를 풍기던 벽난로는 열기가 식어가고 있었다. 연기로 자욱해 가려진 시아처럼 줄곳 내가 해내고 있는 일에 대한 명쾌한 마음이나 만족도가 흐려졌다. 다만 꺼저가던 불씨에 바람이 다시 불었다. 나의 마음의 벽난로에 새로운 점화가 이뤄졌다.   


아침부터 드립으로 내린 카페인 때문인지 아니면 다시 점화된 나의 마음에서 온 설렘인지 심장이 두근거리고 손끝이 찌르르 떨려왔다. 두근거리는 심장을 부여잡으며 점화를 이룬 온기를 채우기 위해 다음을 기약하며 감사 인사를 드리고, 서둘러 짐을 챙겨 언니와 다음 행선지로 떠났다.


작가님과 언니와 한컷.
따듯함이 가득한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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