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딩, 소비자의 신뢰를 쌓는 여정
샤인머스캣(Shine Muscat).
거봉, 머루, 캠벨 등 유수의 품종을 누르고 대세로 자리 잡은 포도계의 에르메스.
당도가 17~22 브릭스에 달하며, 향과 식감이 좋아 명절 선물로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2017년경 등장하여 2018년부터는 과일 검색어 2위에 올랐고, 현재는 농산물 전체 검색어 1위에 올라있을 정도로 인기가 좋습니다. 5년 전 '포도'가 과일 인기 검색어 50위권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대중의 반응은 가히 폭발적입니다.
7년 전보다 재배면적은 약 19배 증가할 정도로 대다수의 포도 재배 농가에서는 샤인머스캣에 집중하였고, 이로 인해 소매가격은 전년 대비 약 42% 낮은 가격에 판매되고 있습니다. (22년 11월 기준, 출처=KAMIS농산물유통정보 https://www.kamis.or.kr)
소셜미디어에서 대중이 ‘샤인머스캣’에 대해 느끼는 금년도 긍정/부정어를 전년과 비교하였습니다.
공급이 늘어난 만큼 품질관리가 안되서일까요?
샤인머스캣 연관어에 “맛없다”가 등장하였고, 언론에서도 품질 저하에 따른 소비자 외면을 주목하기 시작했습니다.
온라인상에서는 샤인머스캣이 성조숙증을 유발한다는 근거 없는 소문이 더해지면서 각 지자체에서는 사안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품질 관리를 강화하고 당도 표시제를 운영하는 등 소비자의 신뢰를 유지하기 위한 다각도의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한 번 신뢰를 잃었을 때 다시 회복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에 대한 많은 사례가 있습니다. 만감류의 제왕이었던 한라봉이 천혜향, 레드향의 등장과 함께 예전의 인기를 회복하지 못했으며, 거봉포도, 신고배 역시 일부 농가의 무분별한 출하와 맞물려 해당 품목 전체의 소비침체를 경험한 바 있습니다.
농업기술의 발전에 따라 더 좋은 품종이 등장하는 것은 장려해야 합니다. 다만 모든 농가가 한 품종에 몰려 가격이 폭락하고, 품질 관리가 안 되어 선량한 농가가 피해받는 것은 막아야 합니다. 샤인머스캣보다 더 알이 크고 당도가 높다는 ‘루비로망’ 의 등장으로 인해 샤인머스캣이 거봉포도의 길을 걷지 않으리라는 법이 없습니다.
반짝 인기 후 사라지는 품목이 아닌, 꾸준히 지속 사랑받는 품목을 만들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요?
안동 찜닭, 대왕 카스텔라(이하, 대만식 카스텔라)와 같이 한 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가 한 순간에 인기가 식어버린 품목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공통적으로 과다경쟁에 따른 일부 업소의 품질 저하 문제가 있었고, 차별화 없는 맛에 소비자는 외면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럼에도 꾸준히 사랑받는 대만식 카스텔라의 사례는 존재합니다.
‘미스터 카스테라’는 전국 20여 백화점에 입점하여 판매 중인 대만식 카스텔라 업체입니다. 모든 조리과정을 오픈하고, 패키지와 매장 고급화를 전략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빵을 들고 있는 사람 모양의 로고를 통해 브랜딩을 하고 있고, 활발한 소셜미디어 활동 없이도 매장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복숭아 브랜드 ‘햇사레’는 '풍부한 햇살을 받고 탐스럽게 영근'이라는 의미를 지닌 경기 장호원, 충북 음성 지역의 8개 농협이 연합하여 출하하는 공동 브랜드입니다. 원래 각 지역별로 개별 판매하던 것을 브랜드를 만들어 패키지를 통일하고, 동일한 기준의 품질로 운영을 합니다.
장점은 많습니다. 대형 유통업체와의 직거래 물량을 원활하게 대응할 수 있습니다. 농가 입장에서는 안정적인 판로 확대를 통해 소득이 보장되며, 소비자 입장에서는 브랜드를 보고 '믿을 수 있는' 구매가 가능해집니다.
현재 약 1,700억 원 이상의 가치를 지닌 브랜드로 성장하였으며, ‘햇사레’ 브랜드를 알고 있다는 소비자 인지율은 80%에 달합니다.(출처=2016 농수축산신문) 이렇게 구축한 ‘햇사레’의 브랜드 파워는 복숭아 시장의 우월적 지위를 유지하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브랜딩’을 통한 농산물의 가치 향상과 소비자 신뢰 쌓기는 검증된 성공방정식입니다.
세계적인 키위 브랜드 ‘제스프리(Zespri)’는 뉴질랜드의 키위 협동조합입니다. 전 세계 키위 매출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글로벌 브랜드로서 생산에서 소비자에 이르는 모든 과정을 관리합니다. 전문 마케터가 캐릭터 ‘키위 브라더스’를 통해 꾸준히 소비자와 소통하며, 다양한 레시피와 영양에 대해 알기 쉽게 설명해줍니다.
생산은 농민이, 품질은 제스프리 조합에서 관리하며, 브랜딩과 패키지 등은 전문 마케터가, 전체 운영은 전문경영인이 맡고 있습니다. 여기서 핵심은 ‘브랜드’라는 우산 아래 각 분야별 최고의 성과를 낼 수 있는 구조로 운영된다는 점입니다.
우리나라의 각 지역 농협도 비슷한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강제성이나 브랜딩 측면에서는 차이가 많이 납니다. ‘햇사레’ 브랜드의 성공 비결 중 하나가 ‘APC(농협산지유통센터)’를 소유하지 않은 마케팅 전문법인으로 운영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생산자와 품질담당과 경영의 분리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세계적인 농산 브랜드 돌(Dole), 델몬트(Del Monte). 해당 기업의 품질기준에 맞지 않는 수확물은 과감히 포기하며, 전문 마케터가 다양한 농산가공품을 연구하고 개발합니다. 주스, 젤리, 디저트의 개발을 통해 원물의 안정적 활용이 가능해집니다. 신뢰를 바탕한 브랜드는 지속 가능한 성장의 시작과 끝입니다.
이전 글에서 언급했던 ‘전통시장’의 나아갈 방향과 우리 ‘농산물’의 나아갈 방향은 궁극적으로 일맥상통합니다.
해결책은 “소비자 신뢰쌓기”입니다.
브랜드는 보증(Endorsement)의 역할을 합니다. 낮은 품질의 제품과 나를 구분하고 소비자로부터 선택받기 용이해집니다.
공산품과 달리 동일한 품질이 보장되지 않는 농,수,축 신선 카테고리야 말로 브랜드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러한 ‘인돌싱 브랜드(Endorsing Brand)’는 소비자에게 품질과 유통에 대한 신뢰를 주어 타 농산물과 차별화를 이루어 낼 것입니다.
샤인머스캣이 프리미엄 이미지를 유지하고, 지속적으로 사랑받기 위한 방향성은 분명합니다. 상주 샤인머스캣, 김천 샤인머스캣을 넘어서야 합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는 각 ‘지역’이 인돌싱 브랜드 역할을 했습니다. ‘제주’감귤, ‘성주’참외, ‘나주’배 등 산지가 여전히 훌륭히 브랜드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품질관리가 되지 않는 일부 농가 리스크로부터 보호와 흔들림없는 더 큰 성장을 위해서는 반드시 “브랜드”가 필요하고 “브랜딩”이 필요합니다. 이를 통해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하여 사랑받는 우리나라 농산물이 많아지길 소망합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