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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구루 Sep 20. 2022

반짝이는 라스베가스

Part2. 여행자의 시간 I : 겨울에 떠나는 미국 서부 로드 트립



미국 입국 후 3일간 생활을 위한 기본적인 셋팅을 마치고 라스베가스로 출발했다. 시차 적응도 채 되지 않은 상태였지만 크리스마스 시즌에 아파트에 남아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았다. 1년의 거주기간을 생각했을 때 남편과 아이가 학교에 다닐 기간을 제외하면 방학을 이용해 여행을 할 수 있는 기간이 많지 않았기에 조금 무리일지라도 우리는 입국 4일 차에 떠나는 서부 로드 트립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집이 위치한 팔로스버디스에서 약 4시간을 달리자 광활한 사막을 지나 반짝이는 라스베가스가 보이기 시작했다. 남편은 어렸을 때 부모님과 함께 방문한 적이 있다고 했지만, 아이에게도 내게도 라스베가스는 처음이었다. 지루할 정도로 반복되던 사막의 풍경과는 달리 라스베가스로 들어서자 높게 솟은 건물과 네온사인이 가득한 상반된 풍경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체크인을 하기 위해 들어선 호텔 코스모폴리탄은 초입에서부터 화려한 카지노가 눈을 사로잡았다. 라스베가스에 위치한 호텔들의 주 수입원은 숙박이 아닌 게임에 있는 만큼 깔끔하고 쾌적한 컨디션에 비해 숙박비는 저렴한 편이어서 며칠간 쌓인 피로를 풀기에 만족스러웠다. 해가 저문 뒤 라스베가스의 밤은 더 화려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초코와 마음이에게 리드 줄을 채우고, 배낭에 마실 물을 넉넉히 담아 밖으로 나갔다.



밤의 축제가 시작된 것 같았다.



한쪽에서 화려한 분수쇼가 끝나면 다른 한쪽에선 불꽃놀이가 시작됐다. 우리는 다리가 아픈 줄도 모르고 밤의 라스베가스를 걸었다. 반짝이는 라스베가스의 밤은 너무 예뻐서, 연신 사진을 찍게 됐다. 한참 동안 아이들의 사진을 찍다 벨라지오 호텔의 분수쇼, 미라지호텔의 화산쇼, 플라밍고 호텔의 플라밍고들, 패리스 호텔의 에펠탑과 개선문까지 모두 돌아본 후에야 배가 고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나 아이들과 저녁을 먹기 위해 미리 후기를 확인하고 고심해서 찾아간 레스토랑에서 예상치 못한 난관에 봉착했다. 야외 테라스가 있는 식당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애견 동반 식사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찾는 레스토랑마다 번번이 반려견 출입은 제한된다는 답을 받다 보니 우리의 질문은 자리 있나요? 에서 애견 동반 가능한가요?로 바뀌었고 레스토랑의 후기와 상관없이 야외 테라스에 한해 애견 동반 식사가 가능하다는 한 햄버거 집에 앉아 겨우 메뉴를 주문할 수 있었다.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겨우 찾은 식당에서 테라스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자마자 세찬 바람과 함께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입국 4일 차에 시차 적응도 안된 상태에서 4시간을 넘게 달려온 우리는 사막에서 내리는 비를 맞으며 추위 속에 첫 저녁식사를 마쳤다. 고맙게도 초코와 마음이는 우리가 식사를 마칠 때까지 테이블 밑에 배를 엎드리고 앉아 얌전히 기다려 주었다. 이제 겨우 여행의 첫날이 시작되었을 뿐인데 혼이 다 빠져나간 듯했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식사를 마치자 세차게 내리던 비가 멈췄다.



늦은 저녁 식사를 마친 시간은 저녁 9시가 다 된 시간이었지만 왠지 바로 호텔로 돌아가고 싶지가 않았다. 라스베가스의 밤을 더 걷고 싶은 마음에 저녁을 먹은 후에도 거리의 음악가가 들려주는 노래와 기타 연주를 한참이나 듣다 자정이 다 되어서야 호텔로 돌아왔다. 많이 걷고 지친 탓인지 따뜻한 물로 샤워를 마치고 침대 위에 눕자마자 아이들은(서연이, 초코, 마음이) 약속이나 한 듯 코를 골며 자기 시작했다. 자정이 다 된 시간 창 밖으로는 벨라지오 분수쇼의 마지막 공연이 시작되고 있었다. 며칠 전만 해도 한국에서 출근을 하고, 출국 준비에 발을 동동거리며 정신없는 일상을 살고 있었는데 팔로스 버디스에 살림을 꾸리고, 라스베가스로 여행을 와 있다니 마치 순간 이동을 한 듯 모든 것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몸은 피곤했지만 이상하게 신이 났다. 아주 오랜만에 느껴보는 설렘이었다.




<미국 입국 4일차 반짝이던 라스베가스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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