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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날 Mar 21. 2022

어쩌다, 술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에서는 초등학교 입학을 대비해서 한두 가지 준비를 시키고 있다. 시계 보는 방법과 알림장, 그림 일기장인데 매주 목요일에 그림일기장을 나눠주면 주말 동안 일기를 써오는 방식이다. 주말 이틀을  써와도 좋고 하루만 적어와도 된다고 한다. 그렇지만 일기의 내용은 6줄을 넘겨야 한다고 한다. 정해져 있는 방식이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초등학교 그림일기는 어떻게 적으라고 알려주는지 정보가 없으니 원에 방법을 따를  밖에는 없다. 주말이 지나고 돌아오는 월요일에는 친구들 앞에서 발표를 한다. 코로나 때문이기도 하고 날씨가 추워서, 아니면 내가 외출하고 싶지 않아서 집에 있게 되면 아이가 일기에  내용이 없을 텐데, 그러면 아이가 발표하면서 실망하거나 친구들을 부러워하면 어쩌지 하는 생각도 처음에는 했었다. 아이도  내용이 없으면 어떡하냐고 여쭸는데, 특별한 일이 아예 없을 수는 없다고 선생님이 말씀하셨다고 한다. 동생과 앉아서 블록놀이를 하는 것도 피아노를 치는 것도 일기에 적으면 된다. 주말에  특별한 이벤트가 있어야  필요는 없다. 일기를 쓰기 위해 어딘가를 놀러 가거나 음식을 만들 필요도 없으며 아이가 일기를 쓰기 싫어한다면 그대로 등원하게 하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 아이가 스스로 선생님과  약속을 지키기를 바란다. 그로 인해 얻게 되는 감정을 아이가 스스로 알게 되고 성장하기를 바란다.


아이들이 하원 차량에서 내려서 집으로 바로 들어오지 않으면 200프로 아빠와 함께 편의점으로 향하는 거다. 그런 날은 한껏 신이 나서 집으로 돌아온다. 아이들의 치아가 걱정되지만 원하는 것을 고르고 먹는 그 기쁨으로 아이들에게는 만족감이라는 게 생기면서 행복해지고 자존감도 올라갈 것이다. 너무 거창하려나. 아이들의 분노는 좌절감에서 온다고 한다. 1, 2년 전까지만 해도 아이들의 간식은 무조건 친환경 매장에서만 사줬다. 가끔 어린이집에서 마트에서 파는 과자를 친구가 가져와서 나눠먹게 되면 우리 아이들은 주지 말라고 원에 부탁했었다. 얼마나 먹고 싶었을까. 못 먹게 하니까 그 욕구가 강해져서 큰 아이는 아직도 초콜릿을 먹을 때 엄청 엄청 아껴서 먹는다. 다 먹고 나면 엄마가 또 안 사줄까 봐 아껴서 먹는 것이다. 아직도 마트에 모든 과자를 먹게 하지는 않지만, 아이들도 먹어보질 않았어서 마트에 가면 고르지 못하고 한참을 서있는다. 그럴 때면 딱한 마음이 들어서 먹어보지 않은 과자를 권하기도 하는데, 아이들을 결국 본인이 먹어본 것 중에서 고른다.


그날은 아빠와 편의점에 다녀온 이야기를 쓰려고 해서 집 앞에 있는 편의점 사진을 인터넷에서 찾아 휴대폰으로 보여주고, 그림으로 그리게 해 줬다.


카톡이 울린다.


아이가 묻는다.


“엄마! ‘술이 술술 들어가요’가 뭐야?”

 

보낸 이는 000


남동생이 집에 와서 술을 마시고 있는데 술이 술술 들어간다는 카톡.

아이는 어리둥절하고 나는 웃느라 아무 설명도 하지 못했다.

행복했다. 이런 소소한 일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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