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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날 Jul 28. 2022

걷기의 말들

​​​​새벽 05:20 분에 알람을 맞추어두고 일어나 걷기 시작한지 두 달이 되어 간다. 모두들 잠자는 새벽에 일어나 나가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 않다. 반려견 호두가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고 일어난 나를 반기며 짖기 때문에, 그 소리에 아이들이 깨고, 너무도 당연하게 신랑을 깨워서 그이의 단잠이 방해될 까 봐 모든 걸 빠른 시간 안에 끝내야 한다. 짖는 걸 못하게 하며 말이다.


일어나자마자 양치를 하고(마스크에서 내 입냄새를 맡기 싫으니까) 눈곱만 겨우 떼고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워치를 찬다. 소음을 차단하고 싶어 이어폰을 꽂고, 마지막으로 마스크까지 쓰면 운동 준비가 빠른 시간 안에 끝이 난다.


운동하러 나가면 나를 제일 먼저 반기는 것은 아스팔트다.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시간에 공기는 살짝 시원한 정도이다. 1 층 현관을 나가 바로 오른쪽으로부터 걷도록 동선을 정해 놨다. 새벽 시간에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마스크를 내리고 걷기도 하는데, 그러다 저 멀리서 손톱 만하게 사람이 보이기 시작하면 마스크를 다시 쓸 준비태세를 시작한다. 나가자마자 마스크를 벗을 수는 없다. 분리수거장과 음식물 쓰레기통이 있기 때문이다.


땅을 밟으며 걷고 싶다. 이왕이면 산이 보이는 시골길이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현실과 이상은 역시나 다르다. 나는 그 이상을 아직 뛰어넘지 못했다. 더워지기 전에는 등교시키고 나서 아이들이 다니는 시골 초등학교 근처 흙을 밟고, 산을 구경하며 운동했었다. 그런데 이 계절, 오전 9 시는 걷기에 적합한 시간이 아니었다. 그래서 5 월부터는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를 돌기 시작했는데 1, 2 단지를 크게 면 1km 조금 더 걷게 된다. 걷는다고 해서 기분이 매번 상쾌한 것은 아니다. 걸으며 맡게 되는 생활쓰레기와 음식물 쓰레기통 냄새, 강아지 산책을 시키고 치우지 않은 배설물들 덕분이다. 교정시력은 왜 이렇게 좋은지 배설물이 눈에 너무 잘 들어와서 일부러 그쪽 위치를 기억해 뒀다가 다음 바퀴를 돌 때에는 고개를 다른 곳으로 돌려보기도 하는데, 주로 바닥을 보며 걷는 나에게는 별 수 없이 또 눈에 들어오게 된다.


새벽 운동을 하며 오며 가며 마주치는 사람들의 온기와 바이러스 감염에 대한 공포, 사람 없는 틈을 타서 얼른 마스크를 내리고 깊이 들이마시며 상쾌하다 스스로 믿는 공기들. 그 모든 불편함이 새벽 운동의 장점을 희석시키지는 않지만, 때때로 진한 담배연기로 불쾌한 마음은 단점을 부각하기도 한다. 그래도, 이 새벽에 담배 피우러 나오는 사람들과 맞짱(?) 뜰 수는 없으니까 적당히 타협해서 내가(너무나 당연하지만) 기상 시간을 앞 당겼다. 지금보다 더 더워지거나, 담배 피우러 나오는 사람이 더 늘어난다면, 새벽 5 시에 일어날 생각도 있다. 어쩔 수 없으니, 그러려니 하련다.


06:00 시면 나와서 운동기구를 하시는 주황색 바람막이 아주머니. 1,2 단지를 매일 산책 겸 돌으시며 쓰레기와 배설물을 치워주시는 할아버지, 홀연히 레이를 타고 나타나 종량봉투에 쓰레기를 주워 가시는 아주머니, '대추'라는 이름을 가진 갈색 푸들을 산책시키는 할머니. 내가 매일 만나는 아파트 이웃들이다. 마스크를 쓰고 늘 바닥을 보고 운동하는 청년, 벙거지 모자를 쓰고 운동하는 아주머니, 모자와 후드를 뒤집어쓰고 팔을 힘차게 흔들며 걷는 아주머니까지, 내가 새벽시간 만나는 이들은 늘 한결같은 모습이다. 브래지어가 답답해서 입지 않으며, 헐렁한 운동복 상의에 신랑의 노란색 바람막이를 걸쳐 입고, 내게 맞는 요가복 하의 세 개를 돌아가며 입는, 또 늘 같은 시간에 걷는 나도 그들에게는 한결같은 모습으로 비치겠지?


오늘 새벽에는 신랑이 운동을 조금 늦게 간다고 해서 어제 못한 운동을 하게 되었는데, 갈색 푸들 '대추'가 내게 꼬리를 치며 번쩍 다리를 올려 내게 기대기도 하고 냄새도 맡곤 했는데, 할머니 말씀으로는 생전 하지 않던 행동을 하더라고 하셨다. 나오기 전에 우리 집 반려견 '호두'를 만지고 나와서 그런가? 아무튼 매일 나 혼자 눈인사만 했었는데 오늘은 촉감의 인사도 나누게 되었다.

그런 대추의 모습이 좋으신지 내게 마을 건네신다.


"내가 집에서 털을 깎여주는 거야."

"얘가 생전 이러지 않던 앤 데, 희한하네. 푹 빠졌네 빠졌어. 아유 이제 그만 빠져"


할머니와 대추의 산책이 끝나도록 나도 서둘러 "안녕"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새벽마다 산책을 할 수 있는 대추는 얼마나 복 많은 강아지인가 하고 생각하며 마스크 속으로 슬쩍 웃어도 본다.


걸을수록 이렇게 매력이 넘치는데, 집 앞 편의점 가는 것도 귀찮아서 마시고 싶고 너무나 좋아하는 탄산수를 포기하기도 하고(늘 여보가 사다 주니 더 걷지 않는 게 문제), 단골 동네책방에 걸어간다는 것은 무슨 큰일이라는 듯 놀라움을 금치 못하기도 했는데, 이제 기본 1 시간씩 운동을 하니 웬만한 거리 걷는 것은, 마음의 무게와 거리가 한결 가벼워졌다.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러 가는 길이면 신발이 불편해도 참으며, 즐거운 마음에 걸음이 더 빨라지기도 하고 좋아하는 이들과 함께 걷는 길은 짧게 느껴지기만 하고 말이다.


현재는 운동을 안 한지 한 달이 거의 다 되어가는 것 같다. 이런저런 일들도 할 수 없는 형편도 있었고, 여러 가지 핑계도 있었다. 그런 것들을 모두 차치하고 운동은 내일부터!(정말 내일부터) 종목을 바꾸어서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덥디 더운 한 여름이 시작되는 현 계절에 겁을 미리 먹고, 새벽에 나가보지도 않았으면서 걷는 것을 실내에서 하기로 정해버렸다. PT 다니면서 내게 맞는 운동이라 착각하며, 덜컥 운동기구부터 구매한 이름하야 ‘스텝박스’를 할 예정이다.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며 걷기를 대신하고, 좌우로 왔다 갔다 하며 근력운동도 겸할 생각이다.


운동은 매력적이다. 그 매력을 얕게 알았다가 큰코다치는 나 자신에게, 다시 매력의 끝을 이제는 좀 알아보자고 다독여 본다. 함께 운동하는 사람들의 애플 워치끼리 연동이 되어 있어서, 내가 운동을 끝 마치고 나서 기록하면, 얼마나 했는지 실시간으로 전송이 간다. 그럼 서로 문자로 격려해주기도 하고 더 분발하려는 동기부여를 제공하기도 한다.


함께 걷는 사람들이 있어 좋다! 그것이 걷는 운동이든, 세월이든, 모두 좋다. 그리고 끝까지 베스트가 아니더라도 그래도 좋았으면 좋겠는 착각도 꿈꿔본다. 가끔은 우울하고 답답한 하루를 서로 털어놓으며, 벽돌을 깃털 같이 만들기도 하는 날들이 좋고, 그런 하루를 보내는, 지금의 나. 나도 좋다.


좋아하려고 노력하는 중이라는 말이 더 가깝지 않을까. 어느 날은 많이 별로인 나도, 우울한 나도, 슬픈 나도, 기쁜 나도, 행복한 나도. 그 모습 전부 다 내 모습이니 조금 더 예뻐해 주고 칭찬해주며 반짝이게, 빛이 나게끔 닦아내자, 무슨 방법이든 일단 해보자.

걸으라, 발로, 마음으로! 그게 뭐-든 이루어지리라, 이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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