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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연 Jan 28. 2024

걷기 이야기

2주 전부터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출퇴근을 하고 있다.

집에서 지하철역까지 은근 거리가 있어 20~25분 정도 걸어야 하지만,

사실은 이 걷는 시간을 위해서 지하철을 이용하는 것이다.


2017년 추석 무렵이었다. 나에게 차가 생긴 건.

초보운전 딱지를 커다랗게 차 꽁무니에 붙여 놓고, 출퇴근 도로를 콩닥거리는 마음을 달래 가며 점점 운전에 익숙해지자, 무언가 이상했다.

평상시에 입는 옷들이 쫌 딱 맞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당연하게 이야기이지만 살은 3~4킬로가 더 쪄있었다. 더 먹은 것도 없고 퇴근 후 체육관에서 운동도 하고 있었지만, 그것들과는 상관없는 거였나 보다.


그렇게 몸의 부피가 조금 늘어났지만 행복했다.

차가 주는 편리함에 취해 오히려 더 빨리 마련하지 못함에 아쉬워했을 정도였다.

종종거리면서 버스 배차 시간표를 봐가면서 달리지 않아도 되고

(물론 조금 더 일찍 나가면 되지만 항상 딱 맞춰서 빠듯하게 집에서 출발하게 된다.)

테이크커피 한잔 사서 차 안에서 홀짝이며 노래를 틀어놓고 출근하는 그 여유!!

사람들이 집은 없어도 차는 있어야 한다는 말이 이런 거였구나 싶었다.


점점 그렇게 차에 익숙해져 갈 무렵, 나의 걷기 스킬을 점점 퇴화하기 시작하여 지금은 그 흔적조차 찾기가

힘들어졌다.

도보 30분 거리는 예사거리로 여겼던 예전의 나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집 앞 샐러드 가게를 다녀오기 싫어서 배달어플을 이용해서 주문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정말 코앞이라 5분이면 다녀올 거리인데

그게 싫어서 더 먹지도 못할 거면서 최소주문을 맞추고 배달비를 내가면서 주문하고 있었던 것이다.

라면도 집 앞 마트에서 사 와 직접 끓여 먹으면 될 것을 그게 싫어서 새벽배송으로 주문을 시켜놓고

다음날 끓여 먹었던 적도 있었다.


처음에는 이러한 행동들을 하는 내가 단순히 퇴근하고 피곤해서,

다른 일 하느라 바빠서 그러는 거라 여겼지만

어느새 내 일상에서는 걷는다는 행위 자체가 점점 사라져 가는 기분이 들었다.


"아 이래서는 안 되겠구나."

따로 시간을 내서 걷지 말고 그냥 출퇴근 시간에 걷는 것이 좋겠다 싶어 2주 전부터 지하철을 이용하고 있다.


4일째는 어찌나 피곤하던지 저녁밥을 먹자마자 바로 곯아떨어져버렸다.


출퇴근 왕복 시간 합쳐 한 시간 정도 걸어줬다고 일주일도 못 가 뻗어버린 것이다.

나름 따로 시간을 내어 운동을 하는 것이 있어 체력만큼은 꽤 괜찮은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나의 착각이었다.


지금 걷기 시작한 지 2주 차를 끝내고 3주 차에 접어든다.

정말 놀랍게도 이제는 집 근처 가게는 배달을 이용하지 않고 포장으로 직접 다녀오기 시작하게 되었다.

체력이 붙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걷는 게 익숙해져 나머지 다른 행동에도 점차 영향을 주기 시작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오늘 30분 거리에 있는 도서관을 걸어서 다녀온 걸 보면

잃어버렸던 걷기 스킬이 점차 회복되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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