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양고양 Jul 06. 2022

찐컬렉터의 애장품 컬렉션 구경기

석파정 서울미술관

미술품 컬렉팅을 하다 보면 가장 많은 참고가 되고 재미가 있는게 오랜 시간동안 미술품을 모아온 선배 컬렉터들의 컬렉션을 구경하는 것이다. 이런 컬렉션들을 보다 보면 공통적인 작가들도 등장하고, 대표적인 도상들도 겹치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공부가 많이 된다. 나도 이런 작품들을 나중에 기회가 되면 꼭 컬렉팅 하고 싶다는 컬렉팅 목표도 생기게 된다.


그렇지만 개인컬렉션을 구경하는 기회는 매우 희귀하다. 주변에서 미술품 컬렉팅을 하는 사람을 만나기도 쉽지 않고, 미술품 컬렉팅을 한다 한들 그 사람 집에 초대받아서 그림들을 구경하는 것이 왠만한 친분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만약 기업가들이 사회 환원 차원에서 본인들의 애장품을 전시하는 기회가 있다면 반드시 가보기를 추천하고 싶다. 그분들은 정말 찐컬렉터인데다가 보통 미술사에 대한 지식, 미술품을 보는 안목이 일반인보다 훨씬 뛰어나다. 특히 컬렉션에 필요한 작품은 반드시 손에 넣을 수 있는 재력과 인맥이 있으신 분들이다. 그러므로 이런 귀한 컬렉션을 볼 수 있는 기회는 절대로 놓쳐선 안된다!


이곳 석파정 서울미술관은 40년동안 미술품을 컬렉팅해온 안병광 유니온제약 회장의 애장품이 자주 전시되는 곳이기 때문에 종종 전시스케쥴을 체크해보고 방문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금번에는 특히 가장 아끼는 작품들을 한 곳에서 볼 수 있는 전시회가 열린다고 해서 아이와 남편과 방문해보았다.






두려움일까 사랑일까,
찐컬렉터의 40년 세월이 담긴 컬렉션


이 "두려움일까 사랑일까"라는 전시는 한국 유니온제약 안병광 회장이라는 40년 찐컬렉터의 세월이 담긴 컬렉션이라고 해서 큰 기대를 갖고 왔었는데, 기대 못지 않게 훌륭한 컬렉션이었고 눈호강을 제대로 했다.


강익중, 고영훈, 곽인식, 권영우, 김기창, 김상유, 김창열, 김태호, 김환기, 도상봉, 류병엽, 문학진, 박생광, 박서보, 박수근, 서세옥, 손석, 유영국, 이건용, 이대원, 이왈종, 이우환, 이응노, 이중섭, 임직순, 전광영, 정상화, 천경자, 최영림, 한묵, 황영성..


이 모든 작가들이 다 한 사람의 컬렉션에 포함되어 있다니 정말로 놀랍고 충격적인 일이었다~! 그리고 정말로 부러운 일이었다. 나는 사실 중학교때 브리트니 스피어스 이후 아무도 부러워본적이 없는 사람인데, 이 회장님이 진심으로 부러웠다.


유모차 탄 아이에게 한점 한점 보여주는 것도 참 즐거운 일이었다. 특히 워낙 거장들의 그림이 많다 보니 색채감이나 묘사가 남다른 작품들이 많았고, 아이도 즐겁게 구경하는 모습을 보았다. 남편과 둘이 나는 이 그림이 좋다 취향을 공유하는 것도 정말로 즐겁고 행복한 일이었다. 그리고 "나도 부자되면 이거 갖고 싶어" 행복회로 무한 돌리기 ㅎㅎ


유영국 화백의 그림 앞에서

나도 유영국 화백꺼 언젠가 갖고 싶은데, 남편은 너무 색채감이 강한 작품은 싫다고 했다. 보기만 해도 행복해지는 색채의 향연..


남편과 나의 탑픽은 도상봉 화백


우리는 나중에 만약 부자가 되면 도상봉 화백의 우아한 꽃이 있는 정물화가 갖고 싶다는 결론을 내렸다. 역대 옥션 결과들을 찾아보니 몇천에서 억도 가뿐히 넘어가는 금액대에 깜짝 놀랬다. 하지만 이런 금액이 아쉽지 않을 정도로 만약에 부자가 된다면 꼭 소장하고 싶을 정도로 매료됐다고 하면 과장일까?


도상봉, 국화(1973)

옥션 프리뷰에서도 본 적 있고, 뮤지엄산 작년 전시회에서도 봤던 도상봉 화백의 꽃이 있는 정물. 실물을 보면 백자 달항아리에 꽂혀 있는 우아한 정물에 넋을 잃게 된다. 아름다운 꽃을 화병에 꽂아 두면 그 아름다움이 시들기 때문에 무척 아쉬운데, 그림 속의 꽃은 영원히 남아 우리 곁에서 여러가지 이야기들을 전해 준다. 마치 셰익스피어가 소네트 18번에서 연인의 아름다움이 시간이 지나면서 저물어가는 것을 두려워하며 그의 시에 영원히 남긴 것처럼, 이 아름다운 꽃들도 화폭 안에 머무르는 행운을 얻으면서 1973년의 시간이 아닌, 지금 2022년의 우리와 함께 호흡하게 됐다.


역시 도상봉 화백의 그림은 이 도상이 가장 대표적인 도상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긴 하다. 뮤지엄 산에도 있었고, 이건희 컬렉션에도 있다고 알고 있다. 그래서 만약 정말 우리가 부자가 된다면, 도상봉 화백의 꽃이 있는 정물은 꼭 하나 소장하고 싶어졌다. 이렇게 와서 보는 것만으로는 충족이 안되는 느낌이 있다. 꼭 내가 소장해야지만 느낄 수 있는 기쁨.


무려 박수근의 조선미술전람회(선전)
수상작을 볼 수 있다니!


양구 박수근 미술관도 다녀온 바 있지만, 이 컬렉션에 포함된 박수근 작품들의 퀄리티도 못지 않았다. 특히 박수근의 선전 수상작을 볼 수 있다는 것은 매우 큰 기쁨이었다.

박수근, 우물가(집)(1953)

한국적이고 정감있다는 표현이 잘 어울리는 작품세계다. 사실 박수근의 작품들을 어릴때 미술 교과서에서부터 봐서 그런지 화풍이 친숙하고 익숙하다. 그렇지만 질리지 않는다. 그게 박수근 화백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그간에 이곳 저곳에서 만났던 다른 작품들도 참 좋았지만, 이 작품은 그간에 봐왔던 박수근 화백의 작품들보다 크기가 커서 더 눈에 확 들어오는 느낌이었다. 


운보 김기창의 화려한 작품세계


나는 사실 동양화에 별 흥미가 없어 옥션 프리뷰에서도 슬렁슬렁 넘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이번 전시에서 운보 김기창의 화려하고 세밀한 필치를 감상하고 나니 새롭게 관심이 생겼다. 양적으로도 질적으로도 충실한 전시라서 운보 김기창의 매력을 아낌없이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전시회의 숨겨진 재미는 바로 설립자 안병광 회장이 작품을 수집한 경위가 담긴 "수집가의 문장"을 읽어보는 데에도 있었다. 너무 재밌어서 이 수집가의 문장을 한데 모은 도록을 안내준게 아쉽게 느껴질 정도였다. 이 운보 김기창의 그림들이 IMF 때에 매물로 나왔는데, 이 때 고심끝에 빌딩 두채를 팔아 이 컬렉션을 완성했다고 한다. 나는 화가들이 평생을 바쳐 미美를 탐구하고 구求하는 것에 대한 깊은 존경이 있다. 하지만 이 미美를 알아보고 이를 탐하고 수집하는 컬렉터들 역시 존경스럽다.


사실 예수의 일대기 시리즈가 더 많은 주목을 받고 있었지만, 나는 이 세련된 여인의 모습이 더 눈에 들어왔다. 예전에 만들어진 물건들은 시간이 지나면 다 그 빛을 바래고 시대에 뒤떨어진 촌스러운 물건들이 된다. 하지만 예술품은 놀랍게도 시간이 지나도 특유의 빛과 아름다움을 잃지 않는다. 지금 이렇게 입은 여인이 겨울에 거리를 지나간다 생각해도 하나도 촌스럽지 않고 오히려 도회지적이고 아름답게 느껴진다. 그러니 참 신기한 일이다.



이중섭의 소, 너 여깄었구나!

이중섭 컬렉션 역시 훌륭했다. 가족을 주제로 한 이중섭의 특유의 화풍을 감상할 수 있는 그림들이 여러점 있었다. 특히 은지화도 몇 점 있었기에 가까이서 들여다보는 기쁨을 누렸다. 이 찐컬렉터님은 고은 시인이 "이중섭은 지우개가 필요 없는 작가다"라고 하신 말씀을 듣고 1991년에 500만원의 거금을 내고 은지화를 수집하는 것으로 이중섭 컬렉션을 시작하셨다고 한다. 소비자물가지수를 이용해서 2021년 기준으로 금액을 환산해보니 약 1,200만원 정도의 거금이다.


그런데 가장 신기했던 것은 황소였다. 교과서에서만 보던 작품을 실제로 보다니, 정말로 신기하고 신기해서 앞을 떠나지를 못했다. 그리고 그 기시감이 가시고 나면 힘찬 필치로 그려진 황소를 보면서 정말 잘 그린 그림이다, 그림 그린 사람의 예리한 관찰력과 자신만만함이 느껴진다는 생각을 했다.

이중섭, 황소, 1953




한없이 사람을 작아지게 만드는
김환기 화백의 그림들


개인적으로 이 수집가가 가장 애착을 가진 것 같다고 생각한 아티스트는 바로 김환기 화백이었다. 컬렉션 하나하나에서 애정이 많이 묻어나기도 했고, 이 "십만개의 점"을 위해서는 따로 전시공간을 마련하기까지 했다.


십만 개의 점, 1973

이 작품은 수많은 점으로 화면이 가득 채워져있고, 특히 푸른색의 음영이 모두 다르면서도 깊이가 있어 실제로 보면 사람이 그 안으로 들어가 우주의 일부가 되는듯한 느낌을 줬다. 정말 보면 볼수록 매력이 넘치는 작품이라고나 할까.


수집가의 문장에 따르면, 이 작품을 소장하고자 마음을 먹었을때 100억이 넘어가는 가격 앞에서 망설이셨다고 한다. 하지만 이 작품이 외국 컬렉터에게 소장되면 영영 볼 수 있는 기회가 없어진다는 생각에 다른 소중한 소장품들을 팔아서 거금을 마련해 소장하셨다고 한다.


눈이 밝아지게 하는
곽인식 화백의 그림

얼마전 이건희 컬렉션에 다녀오신 분께서 곽인식 화백의 그림을 보고 눈이 밝아진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RM도 비슷한 감동을 느꼈는지 이건희 컬렉션의 곽인식 화백 그림 한점을 인스타에 올려 화제가 되었다. 아마 서명 부분을 확대해서 찍어둔 걸 보니 나중에 소장을 염두에 둔 거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었었다.


이 컬렉션에도 곽인식 화백의 그림이 한 점 포함되어 있었다. 곽인식 화백의 그림을 실물로 보는건 처음이었는데 사진보다 훨씬 세밀하고 아름다운 터치를 느낄 수 있었다.

곽인식, Work 88-LW, 1988

이 사진에 자세히 보면 아기를 안고있는 내 모습도 함께 찍혀있다. 아들이 갑자기 유모차에서 떠들기 시작해서 달래려고 얼른 들어서 안고 다니며 함께 그림을 감상했다. 그림을 빤히 쳐다보는 아들의 맑은 눈동자가 평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이 외에도 수없이 많은 대가들의 엄선된 작품들이 있었고, 정말 감사하게도 이 작품들을 바라보며 남편, 아들 세 가족이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특별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석파정에 얽힌 이야기들


이곳 석파정 서울미술관은 안병광 유니온약품그룹 회장이 사재를 털어 만든 곳이다. 석파정은 흥선대원군의 소유로서 흥선대원군의 호가 석파였고, 이곳에서 그림을 그리고 산수를 즐기며 노닐던 곳이라고 한다. 아름다운 계곡과 산수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인데 사실 이런 풍광을 즐기려 보통 교외로 나가는데, 서울 한복판에 이런 보물같은 공간이 있다는 것이 감사할 따름이다.  흥선대원군 사후에는 흥친왕, 영선군, 이우가 세습하여 사용하다가 이후 다양한 소유자들을 거쳐 지금의 소유자의 품에 오게된 셈이다.

석파정에서 바라본 아름다운 풍광이다. 아기자기한 맛이 있고 바람도 불어와서 시원했다. 나같이 그림 못그리는 사람도 이런 곳에 있으면 그림을 그리고 싶어질 정도로 아름다운 곳이었다.


멋진 작품들을 보고 나온 여운에 젖어 멋진 소나무와 잘 어우러지는 한옥 대청마루에서 잠시 쉬어갈 수 있었다.



아이와 함께 가시는 분들을 위한 정보

정기휴무: 매주 월, 화요일

석파정 입장권 가격: 성인 15,000원/학생(초중고) 12,000원/우대, 어린이(36개월 이상) 9,000원(2022.7                              월기준)

주차: 평일 2시간/주말 1시간 30분 무료주차(이후 10분당 1,000원)


일단 주차가 매우 어렵고 공간이 협소하다는 점을 알고 가는 것이 좋다. 아이가 좀 크다면 그냥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부암동의 맛집이나 좋은 카페들 역시 주차가 어려운 곳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하루를 비우고 코스를 짜서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방문하는 것을 추천한다.


우리처럼 유모차를 가지고 온 사람들은 계단 위로 유모차를 들고 가기가 어렵기 때문에 아이를 안고 올라가야 한다. 그러므로 꼭 아기띠나 힙시트를 챙겨 올 것. 아이와 들를 수유실이나 간식을 먹일 공간이 마땅치 않긴 했지만 그래도 그런 수고로움을 감수하고 와볼만한 가치가 충분한 공간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그저, 미술품이 좋아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