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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근한 수록 Mar 30. 2022

샐쭉 웃는 버릇이 생겼다.







나는 힘들 때면 샐쭉 웃음이 나는 버릇을 노력해서 만들어냈다. 물론 첫 시작은 우연이었다. 11월의 어느 날 헬스장에서 우연히 찾아온 이 행동을 놓치지 않기로 했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유산소 운동을 하던 중이었다. 나는 러닝머신 위에 올라 뛰기 시작했다. 평소엔 보통 9 정도의 속도로 천천히 달리곤 했는데, 그날따라 괜한 호기심이 일었다.

 

'만약 내가 전속력으로 달린다면 그 스피드는 몇이지? 그리고 얼마나 달릴 수 있을까?'


이성은 말렸다. 괜한 객기 부리지 말고 지금 하던 대로 가자고. 하지만 궁금한 걸 어떻게 참더라? 위쪽을 향하는 화살표 버튼을 만지작 거리던 내 손가락은 조금씩 그 버튼을 누르기 시작했다. 속도는 어느덧 12를 넘어가고 있었다.


2분가량 쉼 없이 달렸을까, 호흡은 가빠지면서 목구멍 끄트머리에서 넘어갈듯한 숨을 뱉어내고 있었다. 바늘만한 숨구멍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산소는 내 목을 압박했고 그럴수록 숨을 꿀꺽 삼켜내는 것도, 헉헉거리며 내쉬는 것도 안 됐다.

다리는 또 어떤가. 천근만근이라는 표현을 직접 겪고 있었다. 앞으로 내딛는 발은 도무지 다시 허공으로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기계는 이런 내 사정을 모른다. 플러그를 빼지 않는 한 계속 벨트는 돌아갈 터, 나도 계속 발을 놀려야 했다. 이미 운동복은 땀으로 흠뻑 젖었고, 이마에서 시작된 땀방울은 빠르게 내려오며 두 눈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땀방울 제군들 일발 장전. 눈을 향해 발사!


인상이 절로 찌푸려졌어야 했던 그 순간, 눈가의 따끔한 감각과 함께 샐쭉 웃음이 나왔다.

마스크는 삐죽 올라갔고 광대가 팽팽해지는 걸 느꼈다.


'어라, 나 왜 웃고 있지?' 


웃음이 나오는 상황이 웃겼다. 웃음을 알아채고 나니 이번에는 이까지 드러내면서 웃음이 났다. 기계를 상대로 싸우고 있는 내 모습이 퍽 우습기도 했고, 눈에 땀이 들어가서 따끔따끔한 와중에도 멈춤 버튼을 누르지 않는 내 오기를 지켜보는 재미도 있었다. 무엇보다 이런 상황에서 웃고 있는 내 웃음이 제일 웃겼다.


그 순간이었다. 헬스장 코치님은 타이밍 좋게 우리를 향해 외쳤다.


"유산소팀~! 정신이 힘들면 몸이 지배당하는 겁니다~ 힘들다고 생각해서 힘든 거예요. 몸이 힘든 건 견딜 수 있어요. 근데, 정신이 힘들면 못 견디는 거예요. 달리세요~"


무슨 말인가 싶었다. 몸이 힘드니까 힘들다고 하는 거 아닌가? 600미터를 달리다 로잉머신으로 넘어간 나는 머신을 당기며 코치님 말씀을 곱씹어봤다. 세 번쯤 다시 생각해 봤을 때 비로소 뜻을 알아들었다. 정신이 힘들면 몸이 지배당하는 거라니. 이보다 적당한 표현은 없었다.

 

와 힘들어, 힘들다. 힘들다.라고 생각할 때는 진짜 힘들었다. 으레 말버릇처럼 힘들다 힘들다 하다 보니 내 몸도 힘들게 느껴졌고 더 하고 싶다는 마음도 안 들었다.

그런데 땀이 눈에 들어가면서 터진 웃음은 내가 조금 더 뛸 힘을 줬다. 웃기다. 재밌다. 하니까 몸에 조금 더 힘이 들어갔다. 웃으니까 또 뛰어지더라. 정신이 몸을 지배하는 게 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그러자 웃음이 계속 실실 새어 나왔다.


비밀을 알았다.

웃음이 바로 그 비결이었구나. 한 발 더 내딛게 하는 힘이 바로 그 웃음이었구나. 세상은 말해왔다. 힘들 때 웃는 자가 일류라고. 나는 힘든 걸 참고 웃기까지 해서 그 의지를 칭찬하는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아니다. 웃으면 더 할 수 있다. 그래서 일류가 되는 거다. 그래서 나는 힘들 때 웃는 버릇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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