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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씨 Feb 09. 2023

건축 안하기가 아닙니다

00 투병기

작년 초부터 열이 나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오 분도 못 걷고 주저앉을 만큼 체력이 약해졌다. 대학병원을 밥 먹듯이 드나들던 지난봄, 이런저런 검사 끝에 약을 먹기 시작했지만 열은 여전히 내리지 않았고 몸은 회복과 악화를 반복하며 좀처럼 전으로 돌아갈 생각이 없어 보였다. 가을이 다 되도록 현대의학에서 별 답을 못 찾은 나는 전통의 힘을 믿어보기로 했다. 한의사 선생님이 진맥을 해보더니 내 건강은 건물로 말하자면 지하 2층쯤 된다고 말했다. 조바심이 났다. "요가를 하면 도움이 될까요? 어떤 운동을 해보면 좋을까요? 기 수련이나 명상이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하던데.." 젊은 한의사 선생님이 날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대답했다.

"뭘 자꾸 하려고 하지 말고 뭘 하지 않는데 좀 익숙해져 보세요."



뭘 하지 말라니? 생각지도 못한 말에 놀라서 헛웃음마저 나왔다. 뭘 안하는 게 해결책이 될 때도 있는 걸까? 나를 오랫동안 보아온 친구는 내가 언제나 뭔가 일을 벌이고 새로운 건수를 찾아 헤맨다고 얘기했었다. 뭔가를 해야 몸이 더 좋아질 것 같은데, 뭘 하지 않는 것은 어쩐지 노력과 의지가 부족한 것처럼 느껴졌고 이는 익숙한 죄책감과 무력감으로 다가왔다. 생각해보면 나는 언제나 뭘 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건 아플 때도 마찬가지라 불안함과 조급함이 생길 때마다 나는 인터넷을 뒤지며 계속 이런저런 운동이나 새로운 거리를 찾아 헤맸다.


약도 먹고 침도 맞으러 다니며 나는 의사 선생님이 말한 뭘 하지 말라는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 말은 무언가를 계속 더 하기만 하는 것이 언제나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또 해야 할 때와 하지 말아야 할 때를 구분하라는 얘기였을 것이다.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지만, 아파서 힘이 없을 때 억지로 새로운 운동 같은 걸 하기보단 몸을 잘 쉬게 하며 보살피는 것이 더 중요하다. 하지만 자꾸만 뭔가를 해야 할 것처럼 느끼는 버릇을 쉽게 버리기는 어려웠다. 그러다 문득, 나는 뭔가를 하는 것 만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라고 믿는 내 버릇이 내가 사는 세상의 논리와도 무척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흔히 무엇인가를 만들고,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해결책이라고 쉽게 믿곤 한다. 이러한 논리는 건축이나 도시설계에서도 다르지 않다. 더 좋은 도시를 만들려면 새로운 건물, 새로운 도시 계획, 새로운 마스터 플랜, 또 새로운 랜드마크가 필요하다고. 하지만 이제는 누구라도 이런 식의 성장과 개발유일한 답이 될 수 없다고 마지못할지언정 인정하는 시대가 되었다. 특히 환경을 보면, 끊임없이 무언가를 더해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방식이 어느 정도 한계에 다다랐다는 것이 더 분명히 다가온다. 예로, 플라스틱 쓰레기를 해결하기 위해 플라스틱을 분해하는 새로운 버섯이나 벌레에 대한 연구가 한창이지만, 아무리 새로운 기술도 플라스틱의 생산과 소비를 줄이지 못하면 궁극적인 해결책이 되지 않는다. 또 전 세계 탄소배출의 8%를 차지하는 콘크리트로 인한 피해를 줄이기 위해 탄소 저감 콘크리트가 활발하게 개발되고 있다. 하지만 불필요한 공사나 건설을 계속한다면 어떤 탄소 저감 기술이나 친환경 기술을 사용한들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지 못하지 않을까? 그러니 '뭘 좀 하지 않는 것', 즉 생산하지 않고 짓지 않는 것이 더 간단한 답이 될 때도 있는 것이다. 물론 이를 실천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고, 지금으로선 개인이나, 기업, 국가에게도 넘어야 할 산이 많지만 말이다.


'하지 않는 ' 단지 휴식이나 방치, 게으름을 의미하진 않는다. 생산, 개발, 성장을 위한 활동이 적극적으로 무엇인가를 '하는 '이라면 여기에 속하지 않는, 흔히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활동들이 있다. 무엇인가를 돌보고 유지하고 길러내는 일은 언뜻 보기에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가 생활을 지속하기 위해 정말 중요한 힘이 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이러한 일들을 위해 집안을 돌보는 누군가, 공원을 돌보는 누군가는 언제나 열심을 다해야 한다. 또 때에 따라서는 다른 누군가를 위해, 혹은 무엇인가가 자신의 의지대로 성장하고 뜻을   있도록 조용히 관찰하고, 필요한 공간과 자유를 주는 일이다. 그리고 때로는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아야 한다. 의미 있는 말을 하기 위해서는 때로는 침묵이 필요하고 음악이 되려면  사이의 정적도 필요한 것처럼 말이다. 장자가 말한 쓸모없음의 쓸모랄까?


앞으로 써보려 하는 글들은, 이렇게 '하지 않기'의 관점에서 생각해보는 건축과 도시의 이야기이다. 이는 단순하게 짓는다 혹은 짓지 않는다는 이분법적 선택지가 아니라, 무언가를 지음으로써 정의 되는 건축가의 일이, 어떻게 관찰하고, 돌보고, 그대로 두고, 함께하는 것으로 연결되고 확장될 수 있는가 살펴보는 일이다. 하지 않기는 우리가 더 풍요롭고 자유롭게 살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우리가 다른 종들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 꼭 필요하다. 또 이를 위해서는 특별한 종류의 성실함이 필요하다. '하지 않기'는 사실 도시 재생과 탈성장에 대해 활발한 토론이 오가는 지금 시대에 전혀 새롭지 않은 이야기일 것이다.


나는 여전히 한의원을 다니고 있고, 뭘 하지 않는 것은 아직도 어렵다. 그러니 지금은 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 무엇인가를 열심히 써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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