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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저녁에는 Oct 11. 2023

이혼 후 처음 맞은 명절

부쩍 아빠가 보고 싶다고 하는 아이

이혼 후 처음 맞은 명절


이번 연휴는 왜 이리도 긴지. 대체공휴일 지정으로 6일이나 되어버린 연휴가 너무 부담스러웠다. 원래 이번 추석연휴에는 남편과 내가 친정 부모님을 모시고 일본 여행을 갈 계획이었다. 절대 취소하지 않으리라는 다짐으로 표값은 저렴하지만 취소 수수료는 사악한 ZIPAIR를 예약해 놨었는데 결국 속전속결 이혼으로 100만 원 손해를 봐야 했다. 이혼으로 무산된 일본여행도 속 쓰리지만 일본여행도 안 가니 꼼짝없이 6일 연휴를 친정에서 버텨야 할 내 상황이 더 답답했다.


내 이혼 사실을 친척들은 알고 있을까? 적어도 왕래가 잦은 외가 삼촌네와 이모네에는 엄마가 말하지 않았을까? 그냥 터 놓고 엄마한테 물어보면 될 일이지만 왠지 그런 것을 물어보는 것조차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하지 못한 말들이 가슴에 가득 차있어서 인지 연휴 시작 일주일 전부터 가슴이 답답하고 불안하고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나는 겉으로는 강하고 의연한 척 하지만 실은 예민하고 걱정 많은 사람이다. 연휴 때 만날 친척들이 나에게 "유서방은 안 왔어?"라고 묻거나 "유서방은 잘 지내지?"라고 물으면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답답하고 우울한 이유는 또 있었다. 엄마는 아빠가 여자가 있다며 수상한 행동들을 자꾸 나에게 보고했는데 내 마음도 이렇게 시끄러운 통에 엄마와 아빠 문제까지 얹힌 그 상황이 부담스러워 피하고 싶었다. 이번 연휴에 내려가면 그 사태에 대해서 뭔가 해결을 봐줘야 할 것 같은 부담감이 있었다. 연휴 첫날, 그런저런 생각에 친정에 가기 싫어 미적대다가 우울과 불안을 가득 안고 고향으로 향했다.


다행인지 어쩐지 연휴가 길어서 친가나 외가 쪽에 해외여행을 떠난 가족이 많았다. 그래서 부담스러운 친척들 모임은 없었고 어찌 대답해야 할지 몰라 당황했던 순간도 없었다. 엄마도 더 이상 아빠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연휴 내내 침울했고 기운이 없었고 불안했고 의욕이 전혀 생기지 않았다. 그저 그 시간이 지나가기를 버티고 버텼다. 나는 4일째 되는 날 도망치듯이 아이와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와서도 내 불안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아이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몇 밤이야?" 아들은 몇 밤을 자야 아빠가 오는 거냐고 자주 묻는다. "아빠는 엄마집이랑 아빠집이랑 왔다 갔다 해" 이 말을 할 때 아들의 표정은 좀 침울했다. "아빠 보고 싶어" 아들은 나한테 혼이 나면 꼭 울면서 아빠가 보고 싶다고 한다. "아빠 보고 싶어" 어떨 땐 혼이 나지 않더라도 아빠를 찾는다. 이번에는 부쩍 아빠를 찾았다. 전. 남편은 면접일에 태풍이 오면 못 올 수도 있다고 했다. 아들은 며칠 전부터 몇 밤 남았냐고 자꾸 물었다.  면접일 날씨가 맑자 아들은 아빠가 있다며 너무 좋아했다. 


면접일에 아들은 전. 남편과 키즈카페에 가서 신나게 놀고 들어왔다. 전. 남편은 함께 저녁을 먹었고 아이와 자동차 놀이를 하고 책을 읽어주었다. 샤워를 시키고 셋이서 함께 누웠다. 나와 남편은 잠자는 시늉을 한다. 아이가 잠들면 남편은 일어나 맨 끝방으로 갈 것이다. 그런데 나와 남편 사이에 누워있던 아들이 내 왼쪽 손을 끌어당기더니 남편 손에 포개 손잡게 한다. 그리고 슬며시 나와 전. 남편이 맞잡은 손 위에 자기 손도 올리고 눕는다. 아이고 아들아. 이 사랑스러운 아들아. 아들은 이 가족이 해체되었음을 느꼈을까?


아들은 아빠를 그리워하지만 그렇다고 아빠와 헤어질 때 가지 말라고 울거나 매달리지 않는다. 오히려 "잘 다녀와"라고 힘차게 이야기한다. 그러면 지질한 전. 남편은 울먹이며 나간다. 나는 그저 아들의 뒷모습을 보고 있다. 나는 아들의 마음이 너무 시릴 것 같아 속상하다. 그리움과 슬픔, 또 그것을 다스리는 방법을 너무 일찍 배우게 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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