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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 Luna el Sol May 29. 2024

엄마가 있는데 무슨 상관이야


기억을 잃은 남편과 아픈 아들을 혼자 돌보는 엄마는

어린 내가 보기에도 너무 대단했다.


나는 그저 나만은 엄마에게 짐이 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그것이 내가 울분을 토하지 않고 묵묵히 도움을 줄 수 있는 최선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바르게 자라려고 노력했다.

항상 평균 이상의 성적을 유지하려고 노력했고,

등록금이 비싸지 않은 '국립' 대학교를 선택했다. 

그리고 4년 내내 장학금을 받았다.

집안의 경제적 부담을 덜기 위해 종종 아르바이트도 했다.

그러면서 스스로를 참 대단하다고 생각했고, 엄마에게 당당했다.


엄마를 위한 행동이었을까?

아니, 결국은 나를 위한 선택들이었으리라.

하지만 나는 이런 것들을 무기 삼아 엄마를 아프게 하기도 했다.


"내가 대학 다니면서 손 한 번 벌려본 적 있어?"

"엄마가 나한테 해준 게 있긴 해?"


가시 돋친 말을 하면서도 나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

엄마가 없었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는 것을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딱 1년 간은 취직에 매진하지 않고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것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어렸을 때부터 꿈꾸던 아나운서가 되기 위해

아카데미도 등록하고 몇몇 방송국에 오디션도 봤다.


그날은 탈락의 고배를 몇 번 마시고, 모 방송국 면접에 가던 날이었다.

우리는 지방에 살고 있었고 방송국은 서울이었다.

엄마는 나를 집에서 차로 40분 거리에 있는 기차역까지 바래다주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엄마는 정말 나를 많이 바래다주었다. 심지어 아르바이트하러 다닌 곳이 집에서 한 시간 정도 거리에 있었는데, 멀다는 이유로 아르바이트하러 갈 때도 바래다준 적이 꽤 많다. 시간 여행을 하면 할수록 엄마에게 받은 게 많이 생각난다. 


어쨌든 방송국에 면접을 받으러 가던 날은 대학을 졸업한 뒤 1년이 훌쩍 지났는데도 취직을 하지 못하고 있어 조바심이 난 상태였다. 5만 원이 넘는 KTX 비용이 너무 부담스러웠고, 나를 위해서 쓰는 돈은 여전히 푼도 아까워하지 않는 엄마에게 미안했다.


"엄마 나 이번에도 떨어지면 어쩌지? 지금 가는 게 무의미한 일이 아닐까?"

"아니 엄마가 있는데 무슨 상관이야? 몇 번을 떨어져도, 계속 떨어져도 괜찮아"

"자꾸 차비만 낭비하는 것 같아서 엄마한테 미안하네"

"아니 그러니까 엄마가 있는데 무슨 상관이냐고 다 괜찮아. 괜찮아"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아 혼났다. 울면 안 될 거 같아서 정말 안간힘을 다해 눈물을 참았던 것 같다. 그래도 흐르는 눈물은 절대 들키지 않으려고 창밖만 바라보았다.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 취직은커녕 꿈만 좇고 있는 나 자신이 미안해서 눈물이 났다. 내가 어떤 결정을 하건 묵묵하게 응원만 해주는 엄마에게 고마워서 눈물이 났다. 아직도 그날을 떠올리면 눈물부터 나온다.


그날의 대화는 내가 힘이 들 때마다 또 안 좋은 일이 생길 때마다 다시 일어날 힘이 되어줬다.

"엄마가 있는데 뭐가 걱정이야"

"나는 엄마가 있어!"


엄마와의 과거 일을 되짚어 보기로 했을 때 이 일이 가장 먼저 생각난 걸 보면 엄마에게 고마운 마음이 마음속 깊이 자리 잡고 있긴 한 것 같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가만히 생각해 봐야 엄마에게 고마운 줄 아는 지독한 불효녀인 내가 엄마와의 과거 여행을 끝내고 난 뒤에는 든든한 버팀목이 될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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