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3.07. 헤어져도 좋은 사람과 함께해야 한다
일정 선 이상 친밀해진 관계에는 대부분 끝나는 시점이 생긴다. 염세적이거나 비관적이어서가 아니다. 관계란 성장기 청소년에게 입혀놓은 아동복 프리사이즈 옷과 같아서 처음 구매한 시점에만 잘 맞을 뿐 사람이 변화함에 따라 맞지 않게 되어버리고 말기 때문이다.
즉, 사람은 변하는데 관계의 구성과 작동 방식은 잘 변하지 않는다. 옷에 따라 신축성이 좋은 소재도 있을 테고, 전혀 늘어나지 않는 소재도 있을 테고, 옷이 재킷일 수도 있고 치마일 수도 있고 속옷일 수도 있겠지만 본질은 사람이 변하는 만큼 옷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 다행히도 입은 사람이 너무 많이 커버리지 않고, 다행히도 내 옷이 스판이 많이 함유된 긴 치마이기를 바라며 관계를 맺지만 그 한계를 부인할 수는 없다.
그래서인지 우정이든 사랑이든 두 사람의 관계가 영원을 넘어서서 생생세세, 내세로까지 이어지는 콘텐츠를 참 많이 좋아해 왔다. 현실에서 전혀 가능성 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하면 오히려 판타지로 소비할 때의 효용이 참 크다. 솔직히 말하면 일반적으로 결혼에서 ‘백년해로’ 같은 걸 굳이 바라진 않는다. 그거야말로 죽으면서 결론이 나는 것인데, 오늘과 나의 죽음 사이에는 변수가 너무 많다. 상대방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배우자를 처음 만났을 때는 지극히 편안하고 당연스러웠다. 내가 누구인지, 내 행동의 이유는 무엇인지, 내 생각의 서사와 맥락은 무엇이며 무슨 의미인지 하나 하나 설명하지 않아도 좋은 이는 처음이었다. 그것은 이미 평생 같이 살면서 내 인생의 모든 사건을 함께 겪은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언어의 공유였다. 너무 민감한 더듬이와 날카로운 영혼을 가져서 세상과 불화를 오래 겪은 사람이라면 이게 어떤 뜻인지 알 것이다. 기적이다.
(그러니까 나는 이렇게 쓸 데 없이 진지하고 감성적인 생각을 아주 많이 하고, 심지어 글로도 아주 길게 쓰는 자의식 넘치는 부류다. 이런 사람과 깊이 어울린다는 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마음이 더해지기 시작했다. 배우자는 사실 ‘나’ 뿐 아니라 그 누구도 필요하지 않은 사람이다. 그는 혼자서도 모든 걸 잘해낸다. 손끝은 야무지고 입성은 정갈하고 밥벌이에 유능하고 홀로 가사를 꾸리며 외로움마저 멋지게 즐길 줄 안다. 다시 말하면, 혼자서 완성되어 있기 때문에 굳이 자기자신에게 흠집을 내어 다른 사람의 존재를 들일 필요가 없다. 나는 배우자가 그런 사람이라는 걸 금세 알 수 있었고 그리하여 아무 것도 요구하지 않았다. 온전한 사람에게 불완전해지라는 요구는 타인이 할 성질이 아니다.
그런데 그가 스스로 변하기 시작했다. 고통을 이겨내가면서 관계에 알맞도록, 불완전해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삶을 꾸려나가는 능력을 버렸다는 게 아니다. 홀로 선 이들이 갖게 되는 정서적 평안함을 기꺼이 허물었으며 씨앗이 나무가 되었다거나 은이 금으로 변한 것이 아니라, 오렌지가 유리컵으로 변했다는 것이다. 그는 그렇게 자신을 연단하면서 사회적으로나 정서적으로나 내게 어떠한 희생도 요구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를 얼마간 존경하고 있다. 아마 존경의 마음은 세월에 따라 더 커질 듯하다.
이런 관계조차 언젠가 끝날 수도 있을 것이다. 사람이란 변하고, 삶이란 그런 거니까. 결혼해야겠다고 결심한 것은 사랑이 넘쳐 흘렀기 때문만이 아니다. 혹시 언젠가 이 관계가 끝나고 또다른 옷을 입고 일상을 살아가야 하는 순간이 찾아오더라도 그와 같은 옷을 입고 지낸 세월, 그리고 그에게 순전한 고마움만 남을 것이란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내게 잘해준 사람도, 도움이 된 사람도 많았으나 나의 우주를 넓혀준 사람은 그가 처음이었다. 앞으로도 그런 이는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기적은 두 번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니까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그가 처음이자 마지막인 셈이다.
이미 자신만의 세계가 있는 사람이 누군가와 함께하기 위해 자신의 세계를 확장한다는 것, 여유공간을 만듦으로써 불완전해진다는 것, 확장의 고통과 불완전함의 고통을 기꺼이 감당한다는 것, 그 고통의 탓을 남에게 돌리지 않는다는 것, 그 고통을 감당할 능력 뿐 아니라 세계를 확장하고 고통을 창조하는 방법을 아는 사람이 함께하고자 하는 이가 나라는 것. 겪어보지 못한 우주다. 이미 나의 우주도 넓어졌다. 그에 더하여 나로서는 그의 능력을 배우고 익힐 기회를 얻은 셈이다. 그래서 결혼을 결정했고, 그래서 역설적으로 백년해로란 걸 꿈꾸게 됐다. 망해도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생기고 나서야 영원히 망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싶어진다.
먼저 사랑하고 결혼한 사람들이 살짝 원망스러워질 정도다. 이렇게 나 자신을 풍요롭게 하는 일을 왜 저희들끼리만 하고 말았니. 안타깝게도 나는 영원히 가슴 속에서 불안과 분노가 들끓는 사람이 됐다. 미움도 증오도 폭력도 너무 잘 안다. 사랑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 문학이나 영화가 아니라 바로 지금 우리가 딛고 선 현실에서 사람들이 자신의 목소리로 직접 이야기 나누는 세상이었다면, 나는 아마 지금보다도 훨씬 괜찮은 어른이 되었을 터다. 이제는 가능한 한 배우자에게 오래 붙어있으면서 더 많이 사랑하는 법을 꾸준히 배워나가는 수밖에 없다.
배우자의 어느 부분이 제일 좋으냐거나 왜 사랑에 빠졌냐는 질문 많이 받는데 대답을 못 하겠다. 이렇게 길고 어렵게 말할 수도 없거니와 이렇게 말해봤자 이해할 능력이 되는 사람도 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