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화니 Jul 02. 2022

언어보다 느낌!

치매노모의 우문현답

7월의 첫 날,

어제 언니들이랑 엄마를 모시고 점심을 먹었다. 엄마는 요양원에 계시는데 코로나 기간동안 외출 전면금지였다가 최근에 가능하게 되어 정말 오랜만의 외출이다.

엄마는 우리를 보자마자 반가워하며 알은체를 한다. 누군지 이름을 바로 말할 수는 없어도 낯익은, 아는 얼굴이라는 인식을 하시는 거다.

그러면 우리는 엄마한테 꼭 우리 이름을 아는지 묻고, 대답을 못하시면 이름을 말해준다. 그러면 엄마는 알고 있었다는 듯이 곧 이름을 부르신다.



엄마가 우릴 보면 반가워서 제일 많이 하는 말이 있다.

“어쩜 이렇게 인물들이 좋노.”

우리는 고슴도치도 제 새끼를 예뻐한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이렇게 대답한다.

“그럼, 누구 딸인데~!”

엄마랑 거의 똑같은 질문과 대답을 하고 똑같은 지점에서 웃는다. 하지만 엄마의 기분이 일정하지는 않아서 금방 시무룩해지거나, 텅 비어 보이는 눈빛을 한다.



엄마는 밥을 먹으면서 기분이 가라앉아 보였다. 먹는 게 하나도 즐거워 보이지 않았다.

“엄마, 맛이 없어? 세상 우울한 표정이네.” 하며 농담을 걸어보아도 별 소용이 없었다. 

고기를 잘게 잘라 백김치에 얹어 드리고, 밥을 작게 떠서 입에 넣어 드려도 계속 마다하시다가 억지로 드실 뿐 기분이 나아보이지 않았다. 언니는

"다음에는 엄마 좋아하는 생선구이집으로 가자."고 했다.

엄마의 우울한 기분이 우리 탓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우리가 좀 더 세심하지 못했나싶은 후회가 들었다.




날은 덥고, 분위기 전환도 할 겸 우리는 시원한 카페로 갔다. 숲 전망이 좋은 카페에 앉아 시원한 음료를 마셨는데 엄마는 음료를 입에도 대지 않으려고 하셨다.

조금만 마셔보라며 억지로 권해서 한 모금 입에 댄 엄마는 인상을 잔뜩 찌푸리면 잔을 밀어냈다. 

그래도 편안한 분위기와 창밖으로 보이는 푸른 자연이 좋은지

“아이고, 누구 집인데 이리 좋노, 참 좋다.”라고 하셨다.

엄마는 다시 눈빛에 생기가 돌아와 우리를 보고 또 인물이 좋다고 연거푸 말씀하셨다. 엄마 기분이 다시 좋아진 듯했다. 엄마는 당신이 가만히 우리를 바라만 보고 있는 게 안타까운지

“이럴 게 아니라 우리 집에 가서 먹을 거라도 챙겨주고 해야 하는데.”라고 하신다.

그래서 엄마 집이 어디냐고 물으니 고향집 주소를 읊으신다. 딸의 이름도, 사물의 이름도 흐릿해진 엄마가 가장 잘 기억하는 건 바로 고향집 주소다.

그 기억 속에 엄마는 아직 돌봐야 할 아이가 있고 할머니가 살아계신다. 그 시간과 공간이 가장 행복했던 때일까 싶어서 마음이 아프다.



카페에 앉아 있다 보니, 사람들도 점점 더 많아지고 엄마도 지쳐 보였다. 이제 일어나야 할 시간이다.

“엄마, 우리가 누구야, 이름이 뭐야.”

우리는 엄마가 우리의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영영 잊지 않았으면 한다.

“이름은 생각 안 나도 잘 알고 있지, 좋은 사람!”

우와 멋진 대답이다.

어쩌면 언어보다 느낌의 기억이  더 중요할 수 있겠구나~!

엄마의 대답 덕분에 우리는 마음까지 환하게 웃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늙은 대추나무집에 혼자 산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