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그늘에서 책읽기
요즘 종종 나무 밑에서 전자책을 읽는다.
부피감이 있는 종이책 말고 간편하게 폰만 꺼내 들면 되니까 아주 편하다.
공원을 한 바퀴 쓰윽 산책한 다음 나무그늘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는다.
7월 중순이지만 바람이 불어주는 날, 나무 그늘이 시원하다.
에어컨 바람 짱짱한 카페보다 훨씬 낫다.
넓게 뻗은 가지에서 이파리들이 증산작용을 하는 그늘은 그늘 밖보다 체감온도가 낮다.
작은 이파리들이 빽빽하게만 자리하는 게 아니라 사이사이 틈이 있어
햇살이 들어오니 갑갑하지 않다.
바람이라도 불어주면 얼마나 시원하고 고마운지 일어나기가 싫어진다.
내가 앉은 곳에 그늘을 만든 나무는 팽나무다.
느티나무와 닮았지만 이파리가 좀 더 동글하고 딱지처럼 나무껍질이 벗겨지는
느티나무에 비해 수피가 깨끗하다.
고향 마을 어귀에는 커다란 팽나무가 있었는데 '포구나무'라고 불렀기에
그나무가 팽나무라는 걸 안건 얼마 안 됐다.
한자이름 '팽목'에서 팽나무가 되었단다.
대나무 종류의 하나인 이대로 만든 팽총에 열매를 넣고 쏘면 팽~~하고 날아간다고
팽나무가 되었다고도 하고, 폭~하고 날아가서 폭나무라고도 한다.
팽나무는 예부터 마을의 정자나무, 당산나무로 많았다.
사람에게 쉬는 공간을 베풀고, 기도(이야기)를 들어주는 수용적인 존재다.
신령이 깃들어 있는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사람들이 왜 나무에 신령스러움을 보는지 이해가 된다.
길어야 100여 년인 사람의 일생보다 훨씬 오래 산 고목나무는
오랫동안 한자리를 지키며 사람들의 많은 것을 지켜봤을 터다.
마을의 잔치와 제사, 역병, 전쟁 등을 함께하며 그 자리를 지켰고
개인의 소망을 가만 들어주는 수용의 미덕,
오랜 세월 동안 한결같이 우뚝 선 묵묵함이 있다.
무한히 사랑을 베푸는 아버지, 어머니같고, 할머니, 할아버지 같고, 조상같고
그리고 신선같다.
게다가
푸르고 무성하던 잎 다 떨구고 맨 몸으로 겨울을 견뎌내고,
봄이면 여린 가지와 잎을 다시 틔우는 새로움이 있다.
지키기만 하는 게 아니라 싹 버리고 새로 시작할 줄 아는 의연함이
사람을 고개 숙이게 만든다.
한자리를 묵묵하게 지키며 베풀고 수용하는 미덕도,
버리고 완전히 새로 시작하는 용기도 사람에게는 제일 어려운 일이다.
큰나무 그늘은 사람을 넓게 품어준다.
너무 가까워서 숨 막히는 품이 아니라
적당한 거리 사이로 공기가 통하도록 산듯하게 품어준다.
나무 품에서 책 읽는 시간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