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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니 Jun 22. 2022

음악의 기억

헤어지는 것은 슬픈 일이 아니다.  다만 잊는 게 슬픈 일이다.


난 음악을 좋아한다. 한때는 클래식도 제법 들었는데 요즘은 팝송을 많이 듣는다. 가요도 좋지만 일부러 듣는 노래는 별로 없고 우연히 흘러나오는 노래를 듣는 게 좋다. 그나마 요즘 신곡이랄 수 있는 장기하의 <부럽지가 않아>, <가만있으면 되는데 자꾸만 뭘 그렇게 할라 그래>가 독특하면서도 담백해서 담아놓고 듣는다.



여고 시절, 팝송을 너무나도 멋들어지게 부르시던 선생님이 계셨다.

1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신데, 젊고, 재미있고, 진솔하셨기에 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나도 선생님을 무척 좋아했다.

얼굴을 한 번 더 볼 수 있을까, 말을 걸어 주실까 싶어서 수업을 모두 마친 후, 집에 가는 것을 미루고 친구와 함께 교무실을 기웃거렸다. 그러면 꼭 선생님은 자리에 안 계시고 다른 선생님이 무슨 일이냐며 말을 걸어오셨다. 그러다가 교무실로 들어서는 선생님을 발견하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부끄러워 막상 선생님께 말도 제대로 못 했던, 벌써 30년도 더 지난 일이다.



선생님과 관련해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빨간 티셔츠와 노래다.

소풍 때, 선생님은 청바지에다 빨간 티셔츠를 입고 오셨는데  젊고 멋져 보였다. 멋진 모습은 그뿐이 아니었다.  

장기자랑 시간에 선생님이 노래를 한 곡 부르셨는데 생전 처음 들어보는 팝송을 부르셨다.

선생님은 진지한 얼굴, 낮은 음성으로 노래를 시작하셨다.


When you’re weary

Feeling small

When tears are in your eyes

I will dry them all



누군가 팝송을 부르는 걸 듣는 건 처음이었지 싶다. 그때 가사가 의미하는 게 무엇인지 몰랐지만 확실한 끌림이 있는 노래였다. 노래가 계속되자 선생님 주위의 모든 배경과 사물은 흐릿해지고 선생님의 모습과 노랫소리만 또렷해졌다.

노래의 절정이자 후렴 부분인 ‘Like a bridge over troubled water'에 이르러서는 선생님의 등 뒤로 후광이 비쳤다.

난 선생님이 부른 팝송 원곡을 찾아서  듣고 또 들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때부터 팝송을 좋아한 게 아닌가 싶다.



선생님 수업시간은 늘 설렜다. 공부를 잘하는 학생보다, 조용한 학생이나 반항아의 이름을 많이 불러주셨다.

난 조용한 학생이었는데, 수업시간에 내 이름이 불리면 친구들의 시선이 몰려 주인공이 된 느낌이 싫지 않았다.  선생님은 유머러스하게 말을 건넸기 때문에 이름이 불렸을 때 재미있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선생님은 학교에 오래 머물지 못하셨다. 그때 당시 선생님은 전교조 합법화를 위해 싸우셨는데, 인정받지 못했으며 결국 퇴직을 당하셨다.

우리는 전교조가 무언지 사회에서 왜 합법으로 인정하지 않는지 정확한 이유는 몰랐지만 선생님 편에 섰다.

교장실 앞에서 '아침이슬'을 부르며 선생님들을 퇴직시키지 말라고 드러누웠으며 교육청까지 찾아갔다. 하지만 우리의 힘은 너무나도 작었다.



선생님 아버님은 어부라고 하셨다. 순진한 촌로가 자기 아들이 전교조를 하고 빨갱이 취급을 받는 것에 대해 ‘니 나쁜 짓 하는 거 아니제, 그라믄 됐다’라고 하셨다는 말씀을 하셨을때, 맨 뒷자리에서 늘 잠만 자던 반항아가 울면서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교실 분위기는 더욱 비감해졌지만 선생님은 차분하게 노래를 부르셨다.



푸른 물결 춤추고 갈매기 떼 넘나들던 곳

내 고향 집 오막살이가 황혼빛에 물들어간다..

어머님은 된장국 끓여 밥상 위에 올려놓고

고기 잡는 아버지를 밤새워 기다리신다….

그리워라 푸른 물결 춤추는 그곳

아아 저 멀리서 어머님이 나를 부른다…. 

                                               <어부의 노래>



선생님의 노래는 엄숙하고 뜨거웠다. 어느새 교실은 아이들의 훌쩍임으로 가득 찼다.  선생님은 우리를 위로하듯 이런 말씀을 하셨다. 

 '헤어지는 것은 슬픈 일이 아니라 다만 잊는 게 슬픈 일이다.' 

 해직 당시 선생님은 기혼자셨으며 어린 자녀 세 명을 두고 계셨다. 그 일이 있은 지 약 10년 후 전교조가 합법화되었는데 복직을 하셨는지 모르겠다.



작년에는 Oasis의 ‘Don’t look back in anger’를 참 많이 들었다. 출근을 하며 고3 딸을 학교에 내려주고 나서 10분도 안 되는 거리를 달리는 동안 꼭 이 노래를 들었다.

학교가 있는 동네에서 빠져나와 직장으로 향하는 큰 다리를 건널 때 하늘을 쳐다보며 이 노래를 들으면 마치 자동차가 하늘을 나는 듯 가벼운 기분이 들었다.



슬리핀사이디아여뷰어마인드

돈츄노유마이파인

아베러플레이스투플레이

(Slip inside the eye of you mind

Don’t you know you might find

a better place to play)



처음부터 지르는 듯한 목소리로 시작하는 직설적인 느낌이 좋다. 노래의 뜻을 몰라도 리듬이나 느낌 자체가 좋다. 그래도 듣다 보니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걸까 알아봤더니 충격적이었다.


So I start a revolution from my bed


침대에서부터의 혁명이라니!!!

다른 건 몰라도 이 부분에서 너무나도 강한 인상을 받았다. 침대라는 은밀하고 사적인 공간과 혁명이라니 전혀 어울리지 않는 단어의 조합이다. 무슨 뜻일까, 알 듯 말 듯 아리송한 게 좋았다.



수능이 얼마 남지 않은 어느 늦은 밤, 딸을 태우고 집에 거의 다 왔을 무렵 이 노래를 듣게 되었다. 그대로 지하주차장으로 들어가면 크게 따라 부르진 못할 터였다. 딸이 노래를 다 듣고 들어가자고 했다. 그러자 나는 바로 오케이를 하고 집 주변을 빙빙 돌면서 딸과 함께 이 노래를 큰 소리로 따라 불렀다.



So sally can wait

she knows it's too late

as she's walking on by



'셀리는 기다릴 수 있다'라는 가사는 요상하지만 둘이서 박자 맞춰 쏘우~~~~하면서 내지르는 부분이 참말로 속 시원했다. 그렇게 잠시나마 수험생 스트레스와 직장인 스트레스를 훌훌 날려버렸던 추억이 있다.



난 마음이 지치고 힘을 얻고 싶을 때 음악을 듣는다. 청소를 할 때도 음악을 들으면서 하면 좀 더 수월하다. 

음악과 관련한 추억 중에는 아직까지 고등학교 때 선생님이 부르신 ‘Like a bridge over troubled water'이 제일 크게 남아있다.  그때 선생님이 꾸었던 꿈과 진심이  오롯이 느껴져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그대 지쳐 작게만 느껴지고,

눈에 눈물이 고이면

내가 그대 곁에서 눈물을 닦아 줄게요.

힘든 시기가 닥치고 친구 하나 없을 때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 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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