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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니 Jun 07. 2022

우리는 살면서 가끔 천사를 만난다



왁자한 분위기 속에서 살짝 알딸딸한 기분은 너와 나를 구분 짓는 벽을 허물고 세상에 비밀은 없는 듯

무슨 말이든 하게 한다. 그것도 큰 소리로 말이다.

야외 마스크와 술집 등 영업시간 통제가 해제되면서 모처럼 거리에는 활기가 돈다.

우리가 앉은 치킨집도 사람들로 가득 찼다. 우리는 닭똥집을 안주 삼아 소주잔을 기울이며 이야기를 나눈다.


J는 30대의 한 남자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그녀보다 스무 살 넘게 어린 남자를 저녁 독서 토론에서 만났다.

독서 토론을 마치면 J를 비롯한 회원 몇은 가볍게 뒤풀이를 했는데 젊은 남자가 참석했다. 그 자리에서 그가

J의 아랫집에 사는 이웃이란 걸 알게 되었다.


젊은 남자에겐 아내가 있고 J는 이들 부부와 함께 친하게 지냈으니 나이를 뛰어넘는 로맨스 이야기는

아쉽게도 아니다. 그 남자에게 J를 비롯한 회원들은 다들 연상이다. 그 남자는 누님들을 모시고 야외로 소풍 가는 것을 좋아했고 한 번은 기타를 들고 와서 노래를 부르기도 했단다.


“우와 낭만적이네요. 젊은 남자가 그러기가 쉽지 않은데요.” 내가 말했다.

“그렇지, 그때 내가 개인적으로 좀 힘들었을 땐데 이야기를 들어주고 함께 했던 참 고마운 사람이야.

근데 이사 가고 소식이 끊어졌어.”

J의 말을 들으니 나도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내가 힘들 때 천사처럼 잠시왔다 간 사람이 생각나서

“우린 살면서 가끔 천사를 만나나 봐요.”라고 말하자 J의 얼굴이 활짝 펴지며 잔을 높이 들었다.

“그래 그 말 맞다, 짠~~!”


난 내가 만난 천사를 떠올렸다. 지난해 계약직으로 취직을 했을 때. 새로운 업무와 사무실 분위기를 익히느라

진땀을 흘리고 있을 때다. 직원들의 키보드 치는 소리가 공간을 채우는 적막한 사무실에서 막 한 달을 지나고 있을 때, 지사 직원이 본사에 발령받아 첫 출근을 했다. 그녀가 내 옆자리에 앉으며 먼저 말을 걸었다.


“집이 어디세요?, 아! 나랑 같은 동네 주민이네요. 반가워요. 히히. 나는 아줌마예요. 애는 없어요. 히히.

하얀 덧니를 드러내고 웃으면서 거침없이 내게 말을 건네는 그녀의 등 뒤로는 밝은 광채가 났으며

그 얼굴은 마치 천사 같았다.


점심시간이면 그녀와 함께 산책을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주로 상사에 대한 불만, 싸가지 없는 직원과 관련한 하소연을 나누었다. 우리에게 이 시간은 꿀처럼 달콤했다. 가슴이 답답할 때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소리칠 대나무밭만 있어도 속이 시원할 텐데, 우린 함께여서 더 좋았다. 함께 걷고, 말하고, 들어주는  덕분에 힘든 시간을 버틸 수 있었다.


그런 그녀가 본사에 온 지 6개월 만에 회사를 그만두었다. 그녀는 비록 정년이 보장되긴 하지만 적은 월급과 차별 때문에 힘들어했다. 힘들어도 1년은 버텨봐야겠다고 말했는데 그렇게 빨리 그만둘 줄 몰랐다.

너무 서운했지만 새로운 직장을 찾아 떠나는 그녀에게 응원을 보냈다.

난 그녀가 없어 많이 허전했지만 남은 시간을 잘 버티고 계약 기간을 다 채운 후에 그만두었다.


내가 그만두고 나서 그녀와 한 번 더 만나긴 했지만 이제 우리 인연이 예전처럼 끈끈하지 않다는 걸 안다.

그녀는 자기 일이 있고, 난 내 길이 있으니까 말이다. 우리를 이어주던 못된 직원의 이야기와 하소연이 더는

생겨날 일도 없으니까 말이다. 그래도 그 힘든 시절에 만난 그녀가 언제까지나 고마울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추억의 노래 중에 이런 노래가 있다.

‘당신은 천사와 커피를 마셔본 적이 있습니까’그렇다. 천사는 한 사람에게만 오래 머무르지 못하기에 인연이 짧다. 하지만 천사를 만났던 기억은 마음속에서 오래 남는다.


우린 살면서 정말로 가끔 천사를 만난다. 힘들 때 옆에서 이야기를 들어 주는 것,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누군가의 천사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천사는 자신이 천사인 줄 모른다. 그게 그렇게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리도 누군가의 천사였던 적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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