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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니 May 31. 2022

전학 온 아이

초등학교 2학년 1학기까지 섬에서 자랐다. 2학기  부산으로 이사와 전학을 하면서 엄마옷과 신발, 가방을  새로  주셨다. 학교에 가니 아이들이 나를 ‘전학  아이라고 했고 가방과 신발이  거라며 수군거렸다. 나는 전학  아이답게 조심스럽게 학교생활을 했고 아이들을 관찰했다.  결과 고향 아이들과 이곳 아이들은 크게  가지가 다르단  알게 되었다.


첫 번째, 책 읽는 방식이다. 고향에서는 다 같이 합창이라도 하듯 음을 실어서 책을 읽었는데 이곳에선 그냥 줄줄 말하듯이 읽는 거다. 문화충격이었다. 책 읽는 방식이 다를 줄이야. 내가 만약 이 교실에서 고향에서 하던 방식으로 책을 읽으면 웃음거리가 될 것 같았다.

국어시간이었다. 내 앞자리 친구가 서서 책을 읽고 있을 때 내 가슴은 쿵쿵쿵 방망이질을 했다. 얼마 후 선생님이 그만이라고 말하자 앞자리 친구가 앉았고 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 뛰는 가슴을 억누르고 천천히 글을 읽어나갔다. 나는 노래하듯 읽지 않았고, 친구들과 같은 방식으로 읽었다. 그동안 아이들의 책 읽는 소리를 주의 깊게 관찰했기 때문이다.


두 번째, 말이다. 내 고향은 경상남도 중에 서부 경남에 속한다. 서부 경남은 주로 지리산 자락과 가까운 시골이다. 서부경남은 억센 말투를 쓰는데 투박하고 무뚝뚝한 게 꼭 뚝배기 깨지는 소리와 비슷하다.

또한 ‘~~했답디더’ ‘가시시더’, ‘오시시더’ 라는 사투리를 쓴다. (했답니다, 가세요, 오세요)

고등학교때 고향이 지리산 근처였던 국어 선생님이 ‘뭐라쿠네’란 말을 자주 써서 아이들을 웃겼다. 난 이런 사투리는 쓰지 않았기에 별 문제가 없었다.

억양도 다른 점이 있지만 특이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 다만 단어의 악센트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 고향 말은 주로 앞에다 강세를 둔다. 예를 들어 가방이라는 단어를 말할 때, 부산 아이들은  ‘방’에다 강세를 둔다면 고향에선 반대로 ‘가’에다 악센트를 둔다. 이 부분은 미처 아이들과 다르단 걸 빨리 알아채지 못했다.

중학교 때 친한 친구가 내가 ‘가방’이란 말을 하면 깔깔깔 웃었기에 비로소 알게 되었다.


세 번째는 아이들이 화장실에 갈 때 친구를 데려간다는 사실이다. 남자아이들보다 여자아이들이 그랬다. 이것 또한 내겐 충격이었다. 화장실에 쉬 싸러 가는데 친구를 왜 데려갈까. 물론 같이 쉬 싸러 가는 거면 모르겠는데 그렇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같이 가는 거다. 이상했다. 그래서 난 혼자서 화장실에 다녔다.

여자아이들은 친밀감의 표시로 화장실도 같이 다닌다는 걸 서서히 알게 되었다. 여전히 친구한테 화장실에 같이 가잔 말은 잘 안 나왔지만, 친구가 요청하면 같이 따라가 주는 수준으로 적응하게 되었다.


이제 학교를 졸업한 지도 오래되었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전학 온 아이’인 듯 세상을 관찰한다.  ‘세상’이란 것은 따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곧 ‘사람’이다. 나와 다른 생각, 다른 행동, 다른 방식들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본다. 세상은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으니 당연하다. 존중할 건 존중하고 따라가야 할 것은 따라가야 한다.


그런데 이제 좀 지겹단 생각이 든다. 내 멋대로 살아보고 싶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말이다. 다시 그 초등학교 교실로 돌아간다. 내 차례가 되면 큰 소리로 노래하듯 책을 읽는다.

웃음보를 터트린 친구들에게 ‘이게 바로 내 고향의 방식이야, 예~압‘라고 하며 래퍼처럼 말한다. 상상만해도 재밌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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